“보복성 2차 폭행” 아이들 더 잔혹해져
부산 여중생 폭행 당시 주변 CCTV 화면.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지난 1일 밤 부산 사상구 목재 공장 앞 공터에서 중학교 2학년생이 3학년 선배 2명과 동급생 2명에 의해 집단 구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학생은 뒷머리와 입안이 찢어져 병원서 수혈을 받는 등 치료를 받고 있다. 부산 사상경찰서는 이번 사건을 주도한 중학교 3학년 A 양(15)과 B 양(15)에 대해 지난 6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보복상해, 특수 상해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또 A 양과 B 양에 비해 폭행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진 C 양(14)과 D 양(13)도 불구속 입건됐다. 다만 D 양의 경우 만 13세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로 소년부로 송치될 전망이다.
당초 가해 중학생들은 경찰조사에서 “피해 여중생과 이날 처음 만났고 태도가 불량해 폭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해학생의 가족은 지난 6월 A, B 양에 당한 폭행에 고소한 데 따른 ‘보복폭행’이라고 주장했고 이후 가해 학생들도 보복 폭행에 대해 일부 시인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에 경찰은 A 양, B 양과 함께 있던 E 양(14)과 F 양(15) G 양(15)을 공동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로써 지난 6월과 9월 두 차례 벌어진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의 가해자는 모두 7명이 됐다.
경찰과 사건 관계자들을 통해 드러난 이번 폭행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경찰에 따르면 1차 폭행은 지난 6월 29일 오후 2시쯤 가해 학생 5명이 피해학생을 사하구 장림동 한 공원으로 불러내며 시작됐다. 당시 가해 여중생들은 슬리퍼로 피해학생의 얼굴을 때리고 노래방으로 끌고 가 마이크와 주먹 등으로 폭행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 폭행 이유는 가해자 중 한 명의 휴대전화로 걸려온 가해자 남자친구의 전화를 피해학생이 받았기 때문이다. 피해학생이 가해자의 남자친구와 전화통화를 한 것이 가해 여학생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알려졌다.
이후 두 달여가 흘렀다. 폭행 장소는 엄궁동의 외진 공장 앞 공터로 바뀌었고 잔혹함은 더욱 심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8시 30분쯤 가해 여학생들은 피해학생과 그의 친구가 함께 있던 패스트푸드점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피해학생과 그의 친구를 인근 골목길로 데려갔으며 1시간 40분가량 100여 차례 폭행을 범했다. 피해학생은 철제 의자에 쇠파이프, 소주병 등으로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고 가해 학생들은 자리를 떴다. 이후 지나가던 행인이 쓰러져 방치된 피해학생을 보고 119에 신고했고 병원으로 긴급후송 됐다.
이후 A 양과 B 양은 범행 2시간 뒤인 오후 11시 50분쯤 엄궁동 치안센터로 찾아와 자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자정 학장지구대로 임의 동행해 조사를 벌였으나 2일 오전 1시 A 양과 B 양의 부모가 방문해 경찰에 신원보증을 한 뒤 집으로 귀가했다. 하지만 폭행 직후 A 양이 피투성이가 된 피해학생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지인에 보냈고 지인이 이를 소셜 미디어에 공개하며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를 벌이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피해학생 가족에 따르면 이들이 다시 A 양을 불러내 폭행을 가한 이유는 ‘보복성’ 때문이다. 1차 폭행 다음날인 6월 30일 오후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이것이 2차 폭행의 빌미가 됐다는 게 피해학생 가족의 주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고소장 제출 이후 피해 학생이 가출한 상태라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아 당시 사건 진행이 막힌 점도 있다”고 해명했다. 현재 피해학생은 사건 이후 병원에 이송돼 수혈을 받는 등 치료를 받고 있다. 피해학생 어머니는 “입 안이 다 터져 몇 바늘 꿰매고 머리가 3군데까지 깨지고 상처가 깊어 수혈을 받으며 입 안 다물어지니 밥도 제대로 못먹는 상태”라고 밝혔다.
사상구와 사하구, 강서구 일대 학교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찰에 입건된 가해자들은 대부분 부산 사상구와 사하구 일대 3~4개의 중학교 학생들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가해 학생들 일부가 과거 다니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강제 전학조치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하구에 위치한 가해자의 소속 학교 한 학생은 “과거 학교에서 학폭위가 몇 번 열릴 정도로 문제를 일으켜 대안학교로 강제전학 조치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사상구의 또 다른 학생은 “가해자들은 대부분 다른 학교 소속이지만 징계 받고 학교 안 나갈 때 주로 알게 된 사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이 벌어진 엄궁동의 한 목재공장 앞 골목에 남겨진 핏자국.
실제 이 일대 학교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찰에 혐의가 입증된 가해자 중 일부는 학교 부적응 문제 등으로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 가해자의 소속 학교 관계자는 “학교 폭력 때문에 대안학교로 강제전학 간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올 3월 학교 부적응 문제를 이유로 부모님 동의하에 대안학교에 위탁교육을 맡겼다. 학교를 옮긴 후에도 반에서 1등을 하는 등 성적이 좋다는 평도 들어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폭행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폭행 사건으로 입건된 7명 가운데 1차 폭행에 가담한 5명 모두 강서구와 중구 일대의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또 1차 폭행에 가담한 가해자들은 모두 원 소속 학교 측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서구 학교 측에 따르면 1차 폭행에 가담한 5명의 소속 학교 4곳이 공동으로 피해학생의 학교에서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었다. 이에 학교 측은 이들 5명에 노인요양원 등 시설에서 각각 3~5일 가량 사회봉사 활동을 하도록 처분을 내렸다. 한 학교 관계자는 “이는 분명 교육현장에서 정해진 학교폭력 프로그램 매뉴얼에 따른 것”이라며 “학교전담경찰관도 학폭위 당시 참석했고 아이들도 시설에서 사회봉사를 충실히 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1차 폭행 사건을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경찰과는 많이 다른 행보다.
법무부가 운영하는 보호관찰소와 경찰, 학교 당국의 공조도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A 양과 B 양의 경우 지난 4월과 5월부터 각각 절도와 폭행 혐의로 보호관찰을 받고 있었으나 보호관찰소는 학생들의 폭행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경찰은 2차 폭행사건 이후에야 가해자들 일부가 보호관찰소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경찰 관계자는 “보호처분은 법무부 관련 사항이라 가해자들이 폭행사건으로 조사받기 전 보호처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여중생 폭행 사건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다른 기관과 TF팀을 꾸려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은 “서부산권에 공립형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부산시, 부산경찰청, 청소년·아동복지 단체 등 외부전문가, 학부모 등으로 TF팀을 구성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시스템을 재점검해 보완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학교별 자체 점검팀을 구성해 부적응 학생이나 장기 결석학생도 상담하도록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부산지검 서부지청은 지난 7일 검찰 시민위원회를 소집해 사상경찰서가 구속영장을 신청한 가해자 2명 가운데 1명인 A 양에 대해서만 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현재 B 양은 부산보호관찰소의 요청으로 동일 범죄에 대해 부산가정법원에서 소년 재판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구속 등 형사재판절차를 별도로 개시할 경우 이중처벌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법원에 B 양 사건을 이송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아울러 검찰은 피해자와 가족에게도 치료비 지원 및 긴급 경제적 지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갈수록 잔혹해진 청소년 범죄에 고개드는 ‘소년법 폐지론’ 지난 1일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시작으로 강릉 여고생 폭행 사건, 서울 여중생 사건이 연달아 터진 가운데 10대 청소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소년법’ 폐지 관련 청원은 8일까지 25만 명이 동참했다. 이 청원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미성년자인 걸 악용해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성인보다 더 잔인무도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며 “경미한 폭행이나 괴롭힘도 더 세분화해 징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국회에서도 최근 불거진 청소년 범죄와 관련해 ‘소년법’ 관련 개정안이 쏟아지고 있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일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이후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총 4건의 소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외에도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년법 개정안을 발표며 특강법 조항을 고쳐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에게 법정 상한형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내놨다. 이번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만 12세인 초등학생이 강력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원은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형사 미성년자’ 최저 연령을 만 14세에서 12세로 하향조정하는 것과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러도 형량을 완화해 적용받는 소년법 적용연령을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것, 마지막으로 소년범에 적용하는 최대형량을 징역 15년이 아닌 20년으로 강화하자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무작정 소년법 개정이나 폐지를 외치기보다 이럴 때일수록 법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류여해 자유한국당 의원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칼로 과일 깎다가 손 베었다고 칼을 없애진 않는다”며 “소년법을 아예 폐지한다거나 일부 사항만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 개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생기면 포퓰리즘 식으로 없애자고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깊이 있게 고민하고 얘기해야 할 사안인 만큼 더 공론화시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년법 개정 등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과 교수는 “부산 폭행 사건만 봐도 경찰의 대응이 안이해 부실 수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법무부와 경찰, 교육 당국의 협조 미비로 관리 소홀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며 “관계당국의 형식적인 학교폭력 대책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