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월의 칼바람이 서초동 언덕의 법원을 휘몰아치던 날이었다. 대법정에는 노태우대통령과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나란히 서 있었다. 검사가 이건희 회장에게 물었다.
“왜 대통령에게 250억이나 되는 거금을 주었습니까?”
“3공화국 때부터 관례 비슷하게 돈을 주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돈을 정치자금이라고 불렀습니다. 일 년에 의례 껏 한 두 번은 청와대에 정치자금을 냈습니다. 기업을 하는 저희에게는 그것은 당연하고 관례같이 생각이 됐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기업이 어떤 뎁니까? 아무 관련도 없이 그런 거금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겁니까? 삼성이 상용차 사업을 추진하는데 편의를 봐달라는 취지가 들어있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기업에 대해서 권력이 해코지를 하고 부당하게 손해는 나지 않게 해달라는 목적은 있었습니다. 그게 더 강했어요. 3공 때부터 피해를 제일 많이 본 것이 저희 삼성입니다. 그런 것들이 일종의 세금같이 생각됐습니다.”
검사의 신문이 끝나고 재판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물었다.
“왜 돈을 줄 때 꼭 돈세탁을 해서 줍니까?”
“돈세탁을 하지 않으면 받지를 않아서 주고받는 측에서 피차 편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통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엄청난 금액인데 영수증 한쪽 받지 않고 줍니까?”
“3공화국 때는 청와대에서 전화를 하면 돈 달라는 거고 5공 때는 영수증을 줬어요. 6공 때는 ‘이심전심’으로 했습니다.”
화두 같은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알쏭달쏭했다. 심리가 종결되고 변론을 할 때였다. 한 변호인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니까 이 법정이 생긴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 법정이 열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뼈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심리가 종결됐다. 그 다음날 텔레비전 뉴스에는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샴페인 잔을 부딪치는 이건희 회장의 미소 짓는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그 얼마 후 선고법정이었다. 재판장은 이렇게 판결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이건희 피고인의 경우 뇌물의 액수가 크지 않고 국가 경제정책과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한 공이 큽니다. 또한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고 초범인 점을 참작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용서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재판장이 불쑥 한마디를 덧붙였다.
“전직대통령이 뇌물죄로 처벌되는 마당에 그걸 준 재벌회장이 비록 그룹경영에 지장이 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용서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돈을 받은 대통령도 사면이 됐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다. 아버지 대가 끝이 나고 경영권을 승계 받은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이 똑같이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죄로 법정에 섰다. 이재용 부회장측은 독대를 할 때 대통령이 역정을 내서 돈을 주었다고 했다. 권력의 비위를 거스르면 기업이 해코지를 당한다는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 일심재판부는 ‘이심전심’으로 대통령과 이부회장사이에 묵시적 부정청탁을 주고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이십년 전 아버지 이건희 회장도 ‘이심전심’이란 말을 했었다.
정말 마음과 마음이 통해 돈을 준 것일까. 재벌은 단 한 푼이라도 쉽게 돈을 내놓지 않는다. 그게 기본체질이다. 돈을 쓰면 몇 백배의 이익을 노린다. 그게 비즈니스 마인드다. 권력의 ‘갑질’에 빼앗긴 것이다. 해코지 당해 그룹이 해체되어 공중분해 된 경우도 있다. 이왕 돈을 줬으니까 본전을 톡톡히 뽑아야겠다는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심전심은 단순하지 않고 양면성을 가진 복잡한 심리다. 이십년전 재판장은 대통령을 유죄로 하는 마당이어서 삼성회장도 유죄로 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순서가 거꾸로 된 것 같다. 삼성회장이 유죄니까 박근혜 대통령도 유죄라는 예측이 나온다. 권력이나 그 측근들이 끊임없이 기업들의 목을 조이면서 돈을 뜯어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낸 회고록에서 돈에 대한 문제는 변명도 할 수 없는 그의 허물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 재벌은 정말 피해자이기만 할까.
정관계 법조계 언론계에 속속들이 인맥을 형성하면서 돈을 풀어 그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은 것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권력과 돈의 끈질긴 관계가 끊어졌으면 좋겠다. 특혜 없는 돈은 없다. 대통령이 재벌과 인연을 끊는 게 사회의 양극화를 좁히는 첫걸음이 아닐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