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롯데호텔에서 그 분께 밥을 샀지. 이제 팔순이 넘은 그 분이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고 감사하다고 깍듯하게 인사를 하시더라구.”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변호사가 그 말을 받아 인물평을 했다.
“그 변호사님은 박정희대통령 때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때 두 번이나 감옥에 들어갔어요. 평소에 글을 쓰시는데 정권에 저항하는 글이 문제가 된 거지. 전두환 대통령때는 그 분이 쓴 시가 문제가 됐어. 합수부에서 잡아넣고 변호사도 해 먹지 못하게 했지. 당시 내가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는데 그 분을 살려내기 위해 환경을 살펴본 적이 있었지. 그 양반 지독히 가난한 집 아들이더라구. 지방의 명문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서울대에 다닐 돈 조차 없는 거야. 학비도 문제지만 먹고 잘 하숙비 자체도 댈 수 없었던 거지. 그렇다고 개인 가정교사 자리가 흔하게 있던 시절도 아니고. 그래서 그 분은 서울대를 포기하고 지방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했지. 그 양반이 감옥에 있을 때 옆방에 대학생들이 들어왔어. 그 분은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속옷을 대학생들이 있는 방으로 보내줬다는 거야. 그 양반은 당시 옆방에 어떤 학생들이 있었는지 모르고 그랬는데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쓴 책을 보니까 그 내용이 나와 있더라구. 그 양반 늙은 어머니를 모시면서 변호사업을 했는데 늦게까지도 재래시장 골목의 초라한 집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어.”
변호사사무실 간판만 달아놓으면 여유로운 삶이 보장되던 시대였다. 야간의 큰 소리만 치면 가난한 사람들이 전제보증금이라도 빼서 변호사에게 바치던 때였다. 그 돈으로 요정에서 변호사와 판사들의 질탕한 파티가 열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분 김대중 정권에서 감사원장을 했잖아요?”
내가 물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선배가 대답했다.
“그 양반 감사원장의 월급이 얼마냐고 먼저 물어보더라는 거야. 그리고 자기가 매달 갚아야 하는 빚이 있는데 그 월급 가지고는 힘들겠다고 하면서 벼슬을 전혀 반가와 하지 않더라는 거지. 그렇게 감사원장을 했지. 나중에 하는 말이 자기는 감사원장을 했어도 정부 내에서 또 비주류였다는 거야. 노무현 대통령 측근의 386세대가 실세고 자기는 외곽이었다는 거지.”
“그래도 그 양반 감사원장을 마치고 큰 로펌의 고문으로 들어갔잖아요?”
내가 다시 물었다. 감사원에 걸린 사건의 로비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양반 성격에 로비를 할 사람이 아니지. 그러니까 로펌에서도 의례적인 대접만 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
그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작은 눈이 쑥 들어가고 볼이 움푹하게 패인 주근깨가 가득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자기는 유머를 전문으로 공부하고 있다면서 공책에 각종 유머를 써서 외우고 다닌다고 자랑했다. 그는 진열장에 내놓은 화려한 도기가 아니라 뒷골목 음식점 찬장에 포개진 뚝배기 같은 인상이었다. 퉁명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높은 관직에 있었어도 그만두고는 다시 허름한 집에 살면서 낡은 변호사 가방을 들고 다시 법정을 드나드는 이런 변호사가 반들거리는 사기꾼 변호사보다 많아야 하지 아닐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