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무죄판결 받았지만…진범 패터슨 “에드워드에 협박받았다” 옥중 고소
하지만 최근 진범 패터슨 측이 공범 에드워드 리(38)를 위증 및 협박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패터슨 측은 대법원 판결에도 여전히 20여 년 전 무죄판결을 받은 에드워드 리를 진범이라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지난 12일 서울 서초동에서 에드워드 리 씨의 아버지 이 아무개 씨(63)를 만나 20여 년간 이어진 사건의 전말과 사건 이후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 아무개 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징역 20년이 확정된 아더 존 패터슨. 연합뉴스
—에드워드 리의 근황이 궁금하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이번 패터슨 재판 때 잠시 한국에 왔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현재는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상당히 힘들어 한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수감 생활 후 대인기피증,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증세 등 많이 힘들어 해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 미국에 있고 나만 혼자 한국에 나와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재미교포인 에드워드 리가 한국에 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74년도에 미국으로 이민 갔고, 에드워드도 그 후 미국에서 태어났다. 나는 미국에 있을 때 야채가게를 하다가 90년대 한국에 들어와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때(사건 당시)도 우리 가족 모두 한국에 지낼 때였고 에드워드만 혼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잠시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와 있던 때였다.”
—에드워드 리와 패터슨은 어떻게 알게 됐나.
“패터슨은 미8군 소속 군인의 아들로 미8군 고등학교를 다녔다. 에드워드가 중학교 때 같이 놀던 여자친구를 통해 패터슨과 알고 지낸 것으로 안다. 에드워드도 (패터슨과) 같은 학교를 다니긴 했는데 학교 적응 문제로 에드워드 혼자 미국으로 보냈다. 그래서 방학 때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것이다. 사건 당시 있던 친구들도 패터슨과 잘 알던 친구들이다.”
—사건 이야기를 해보겠다. 처음 에드워드 리의 범행 연루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나.
“나는 4월 6일 밤 한국에 들어왔고 7일 뉴스를 보고 사건을 알게 됐다. 자는 에드워드를 깨워 물어보니 자기는 아무 죄가 없다고 했다. 아이 엄마한테 물어보니 셔츠랑 운동화에 피 묻은 게 있다고 했다. 그래서 8일 변호사를 선임하고 자수를 했다. 그땐 나도 에드워드가 현장에 같이 있으니까 어쨌든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드워드 리는 1심 무기징역, 2심 20년 형을 선고 받았으나 대법에서 무죄취지 파기환송심, 1998년 9월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검찰이 에드워드 리를 살인죄 피의자로 특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故) 조중필 씨 키가 176cm고 패터슨이 172cm 정돈데 에드워드는 키가 183cm에 100kg 넘는 체형이다. 당시 재판에서 부검을 한 이윤성 서울대 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해 ‘키가 크면 유리하다’는 소견을 냈다. 이게 결정적이었고 거짓말 탐지기에서도 에드워드는 거짓 반응이 나왔는데 패터슨은 진실 반응이 나왔다.”
—그 결과 검찰이 에드워드에 대해 유죄라고 확신한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둘 다 말이 안 되는 게 피해자가 소변을 보고 있던 상태였고 소변 볼 때 구부정해지지 않나. 패터슨도 충분히 범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거짓말 탐지기 조사 때 에드워드는 한국말로 물어봤다. 에드워드는 당시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 법적 용어를 어떻게 알아 듣나. 그런데 패터슨한테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할 땐 통역을 시켜서 영어로 물어봤다.”
—처음에는 경찰과 미국 범죄수사대 CID 등은 진범으로 패터슨 쪽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검찰 가서 뒤바뀐 이유가 뭔가.
“패터슨은 사건 직후 미국 범죄수사대 CID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당시 수사관들은 패터슨이 찔렀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해 경찰과 검찰에 다 넘겼다. 그런데 이는 묵살됐고 검찰은 국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또 경찰도 공동정범으로 둘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는데 검찰은 에드워드만 피의자로 기소했다.”
—처음부터 에드워드가 무죄라고 확신했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에 경찰조사 받을 때 변호사와 함께 에드워드한테 ‘네가 그랬으면 깨끗하게 자수하라’고 권고했다. 그랬더니 ‘내가 죽이질 않았는데 왜 내가 하느냐’고 화를 내더라. 그리고 CID 조사 서류도 보고 그때부터 에드워드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에드워드도 잘못한 게 있다. 패터슨을 말리지 못한 것과 둘째는 신고를 하지 않은 거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일어나 말리지 못했다고 하고 신고 안 한 것은 차마 친구라서 신고를 못했다고 했다.”
—1심, 2심을 뒤짚고 무죄 판결을 받게 된 배경은 뭔가.
“일단 패터슨이 피범벅이 됐을 정도로 혈흔이 묻어 있었고 그에 반해 에드워드는 옷과 신발 일부에 묻어 있었다. 칼도 패터슨의 것이고 패터슨이 증거인멸을 시도하려했다는 점, 패터슨의 진술은 앞뒤가 다른 데 반해 에드워드는 일관성이 있던 점 등 때문에 무죄로 본 것이다.”
최근 패터슨 측이 에드워드 리를 위증 및 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고소장엔 2015년에 현장검증할 때 거짓말하지 말라는 패터슨의 한국말을 리가 알아듣고 욕설과 함께 협박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은 2011년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검찰이 이태원 살인사건 현장을 재연한 화장실. 연합뉴스
—20년이 지나 올 초 대법원에서 패터슨을 진범으로 확정하고 20년 형을 선고했다.
“에드워드가 1심에서 무기징역 나왔지 않나. 소년법에 보면 최대 형량이 15년이고 최대 20년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당시 검찰은 그것도 모르고 사형을 구형하고 1심 재판부에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렇게 무능하다. 97~98년 당시 검찰은 CID의 최초 수사도 무시한 채 이미 에드워드가 범인 아니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범인으로 몰았다. 검찰도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이번 패터슨 재판에서도 검찰은 에드워드 리를 기소하지 않았지만(일사부재리 원칙상 처벌 불가) 에드워드 리를 단순 목격자가 아닌 살인죄의 공범이라고 언급을 했다. 공범으로 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제 생각에는 에드워드를 공범으로 묶어놔야 패터슨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검찰에 있던 것 같다. 피해자 가족을 생각해도 딱히 이에 대해 할 말이 없다. 다만 98년도 공범으로 마땅한 벌을 받고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오히려 무죄 받고 나온 게 지금은 더 가혹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20년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인 패터슨 측이 에드워드 리를 위증 및 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고소장엔 2015년 현장검증 당시 거짓말하지 말라는 패터슨의 한국말을 에드워드 리가 알아듣고 욕설과 함께 협박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에드워드한텐 (고소당했다고) 말도 안했다. 이미 재판에서도 패터슨 측 오병주 변호사가 수차례 주장한 내용이다. 한국말을 잘 아는데 재판과정에서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척했다는 것인데 앞서 얘기했듯이 법적용어와 일상용어는 다르지 않나. 그렇게 따지면 한국말은 패터슨이 더 잘한다. 협박을 했다는 것도 전혀 사실 무근이다. 그리고 대법원에서도 진범이라고 확정 판결을 냈는데 지금 와서 위증·협박했다고 주장하는 건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에드워드도 분명 잘못한 게 있다. 피해자 가족 분들에게도 진심을 담아 사죄의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20년 전에 검찰에서 수사를 제대로 해서 마땅한 벌을 받았으면 지금까지 20년 동안 고통 받는 사람은 없었을 것 아닌가. 지금 패터슨이 고소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제는 우리도 잊고 싶다. 우리나라 검찰이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제대로 수사했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말 하는 건 피해자 가족들에 비하면 사치다. 하지만 그때 담당검사가 수사를 제대로 했으면 피해자 가족도 오랫동안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도 지금까지 힘들어하진 않았을 것이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