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자꾸 말 거는 것 짜증나” VS 택시 기사 “우리가 먼저 말 건 적 없어”
‘침묵서비스’는 국내에서도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 강남점은 최근 ‘혼자 볼게요’라고 쓰인 바구니를 매장에 비치했습니다. SNS에서는 침묵서비스에 대한 목격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니스프리 강남 직영점이 선보인 ‘침묵 서비스’ SNS 목격담 화면 캡처
일본 교토의 운수회사 ‘미야코 택시‘는 차량 10대에 침묵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택시의 조수석 목 받침대 뒤편엔 “운전기사가 말거는 것을 삼가고 조용한 차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편하게 말을 걸어달라”는 안내 문구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조용히’ 목적지로 이동하고 싶은 고객들을 위한 ‘침묵택시‘입니다. 침묵택시 기사는 승객에게 목적지를 묻거나 요금을 알려줄 때와 승객이 먼저 말을 걸 때만 입을 엽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침묵택시을 향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택시 운전사들은 ‘침묵택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기자는 이틀에 걸쳐 10대의 택시를 연달아 이용하면서 택시 기사들의 생생한 의견들을 들었습니다. 먼저 서울에서 가장 많은 택시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서울역을 찾았습니다.
서울역 앞 택시 승강장 전경 사진. 이종현 기자.
서울역 주변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은 대체로 ‘침묵택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습니다. 기자가 만난 경력 5년차 택시기사 신 아무개 씨는 “그럼, 인사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에요? 우리는 손님하고 대화하면서 사회가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요. 손님하고 얘기를 좀 나눠야 정신도 차릴 수가 있죠”고 답했습니다.
“손님도 조용히 편하게 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는 “손님이 쉬고 싶다고 얘기하면 돼요. 그러면 우리도 말 걸 이유가 없어요. 굳이 ‘침묵택시’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반문했습니다.
20년차 택시기사 최 아무개 씨는 “오히려 말 한마디 없이 목적지에 가면 무서워요. 야간에 운행을 하다가 손님이 타서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 우리도 정말 불안해요. ‘아저씨, 수고하십니다. 힘드시죠?’라는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좀 낫습니다. 침묵택시 도입은 시기상조같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침묵택시’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침묵서비스’는 기사와 승객 간에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33년차 택시기사 김 아무개 씨는 “조용히 가는 것을 원하는 손님이 있지만 너무 조용히 가면 싫어하는 손님들도 있어요. 딱 일률적으로 ‘침묵택시’ 딱지를 붙이면 너무 삭막하지 않겠어요? 우리 기사들은 정보 전달자 역할도 하는데 서로 상부상조하는 모습이 대한민국의 민족성하고도 맞아요”라고 밝혔습니다.
본지 기자가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하지만 20~30대 청년층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직장인 곽 아무개 씨(여․29)는 “침묵택시가 도입됐으면 좋겠어요. 택시를 타면 ‘남자친구 있냐’라는 사적인 질문을 많이 받아요. 심지어 ‘오늘 태운 승객들 중에 제일 예쁘다’라면서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늘어놓는 분들도 있었어요. 너무 부담스러워서 대꾸를 잘 안 하는데도 계속 말을 시키는 때가 많아요”라고 밝혔습니다.
김 아무개 씨(여․28)도 “적극 찬성입니다. 택시 기사님들이 말을 걸어서 불쾌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어요”라며 “‘남자친구 있어요?’부터 ‘나랑 하루 놀아주면 시내 구경 시켜주겠다’라는 질문도 받아봤어요. 성희롱을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불쾌했는데 또 계속 말을 걸더라구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적인 질문이나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해서 ‘침묵택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은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손님이다”라며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7년차 택시기사 양 아무개 씨는 “사적인 질문이나 성희롱을 한 일이 없어요. 더구나 성희롱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손님이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먼저 얘기하는 경우는 없어요”라고 밝혔습니다.
기사 식당 앞에 주차된 택시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1년차 택시기사 조 아무개 씨는 “일본과 한국은 근본적으로 시스템이 다릅니다. 일본 기사들은 대우가 워낙 좋아서 친절할 수밖에 없어요”라며 “우리나라는 최선의 대우는 없는데 기사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요구해요. 침묵택시를 도입해도 기사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소용 없을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5년차 택시 기사 정 아무개 씨는 “침묵택시는 우리 민족성하고 안 맞아요. ‘뚱’하고 말 안하면 오히려 손님들이 불쾌해 하는 경우가 많아요”라며 “얼마 전에 여성분 옷차림새를 보고 ‘결혼하셨냐’고 물었는데 그것도 성희롱인가요? 인사 대신 건네는 말인데…”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에 ‘침묵택시’ 도입을 찬성하는 기사들도 많았습니다. “승객과 기사 간의 ‘대화’ 때문에 운전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견입니다.
40년차 택시 기사 김 아무개 씨는 “우리도 승객들하고 말하는 게 좋지는 않아요. 승객이 말을 걸면 운전에 지장이 생깁니다. 얘기를 하다보면 목적지를 잊고 넘어가는 수가 있어요. 서로 타고 내릴 때만 인사를 하면 대만족이지요”라고 밝혔습니다.
15년차 택시 기사 홍 아무개 씨는 “말을 자꾸 하면 사고가 날 우려가 있습니다. 운전할 때 집중해도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운전을 하면 위험성이 더욱 높아지거든요. 차라리 서로 말을 안 하는 게 속이 편합니다.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침묵택시 안에서 서로간에 ‘룰’을 지켜진다면 저도 환영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일부 택시기사들은 “불편한 대화를 시도하는 승객들이 더욱 큰 문제다”라고 토로했습니다. 20년차 최 아무개 씨는 “침묵택시는 기사들에게 필요합니다. 어떤 손님들은 우리를 사람 취급도 안 해요. 한참 젊은 손님도 기사에게 반말을 하면서 말을 거는데 대답을 잘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또 대답이 없다고 예의 없게 쏘아붙여요. ‘침묵’하고 싶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13년차 강 아무개 씨는 “불륜을 저지르면서 전화로 신랑욕을 하거나 마누라욕을 하는 손님들도 있어요. 기사에 대한 배려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손님이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침묵하면 침묵하는대로, 성질이 나면 성질나는대로 기사들이 전부 맞춰줘야 하나요? 조용히 운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택시기사들도 많았습니다. 앞서의 택시기사 신 씨는 “택시는 급한 사람들이 타는데 침묵택시를 이용할지 모르겠어요. 편한 것보다 급하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이 많습니다. 콜택시로 운영이 될 수밖에 없는데 안 그래도 바쁜 마당에 ‘침묵택시’를 누가 타겠어요?”라고 반문했습니다.
택시기사 양 씨도 “먹고살만한 기사들이 침묵택시 도입을 찬성하겠죠. 침묵택시를 브랜드 택시로 만든다면 어차피 차량 대수가 늘어납니다. 손님은 한정적인데 대수가 증가하면 밥그릇이 없어집니다”고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그렇다면 교통정책을 관장하는 서울시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서울시 택시정책팀 박병성 팀장은 “일본에서 침묵택시가 도입됐다는 소식을 듣고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택시 기사들의 반대가 많았습니다. 침묵택시가 일본 문화에 맞을 수는 있지만 우리 정서상 생각해볼 측면이 있습니다. 일단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자가 만난 택시기사 10명 중에 6명은 “침묵택시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나머지 4명은 “기사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라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의견이 엇갈리지만 침묵택시를 반대하는 의견이 조금 더 많았습니다.
‘침묵택시’ 도입,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