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 당하기 전에 ‘은퇴 스매싱’
▲ ‘테니스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마르티나 힝기스가 코카인 복용 혐의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 ||
가장 최근에는 한때 ‘테니스 여왕’으로 군림했던 마르티나 힝기스(27)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혐의로 돌연 은퇴를 선언했고, 얼마 전에는 미국의 육상 단거리 스타 매리언 존스(32)가 올림픽 메달 반납과 위증죄라는 치욕을 겪으면서 언론과 팬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초유의 사건도 발생했다. 그뿐이 아니다. 수년간 약물복용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홈런왕’ 배리 본즈(43)를 비롯해 마크 맥과이어, 게리 셰필드 등 수많은 메이저리거들도 끊임없는 약물복용 의혹 속에 몸을 사리고 있다.
“나는 절대로 약물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얼마 전 울먹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기자회견을 하던 힝기스는 자신의 억울함을 이렇게 호소했다. 도핑 테스트 기관에 의해 적발된 그녀의 혐의는 ‘코카인 복용’. 지난 6월 말 윔블던 대회 3회전에서 미국의 로라 그랜빌에게 패한 후 곧바로 실시된 소변검사에서 코카인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너무 끔찍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100% 결백하다”고 주장한 그녀는 자신은 지금껏 어떠한 종류의 약물도 복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그런 흥분 상태에서 어떻게 공을 제대로 치겠는가”며 코카인은 복잡한 테니스 경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코카인은 복용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흥분상태에 돌입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제나 각성제 등에 비해서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약물은 아니다.
9월 중순 이미 검사 결과를 통보 받은 그녀는 변호사를 선임한 후 개인적으로 머리카락 검사를 실시했으며, 이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변호사의 말을 빌어 “도핑 테스트 기관이 실시한 소변 검사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검사에 사용된 소변이 내 것이었는지를 증명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도핑 테스트에 사용되는 소변은 이름 대신 일련의 번호가 적혀서 검사실에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힝기스가 “앞으로 수년간 쓸데없는 법적 싸움을 하는 데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도 전에 먼저 은퇴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단거리 여왕’ 존스의 경우에는 벼랑 끝에 몰렸다가 강제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녀가 복용한 것으로 알려진 금지약물은 스테로이드제의 일종인 THG(테트라하이드로제스트리논). 일명 ‘클리어’로도 불리는 이 약물을 복용하면 단기간에 근육량이 증가하고 공격적이 되며 지구력이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분자 구조를 변형해서 합성한 것으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제와 효과는 같으면서도 도핑 검사에서는 잘 안 걸리기 때문에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인기(?)를 얻어 왔다. 배리 본즈 역시 이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 매리언 존스(왼쪽)와 배리 본즈. | ||
약물복용 외에 그녀는 위증죄로도 비난을 받았다. 2003년 THG 제조사인 ‘발코 스캔들’과 관련된 연방조사에서 자신의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던 그녀는 당시 “코치가 아마씨 오일이라고 말하면서 약을 건네주었다. ‘발코’사의 금지약물인 줄 몰랐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이는 모두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결국 존스는 내년 1월 위증혐의로 최고 6개월 형에 처해질 예정이다.
‘홈런왕’ 본즈의 약물복용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그의 약물복용 소문은 거의 기정사실화되었으며, 본즈 역시 위증죄로 조만간 기소될지도 모른다. 존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2003년 연방대배심 증언에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지 모른 채 ‘발코’사의 약물을 복용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금까지 줄곧 “ 금지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다”는 주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본즈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특수 스테로이드제를 제조하는 ‘발코’사와 계약을 맺고 이 회사의 영양제와 웨이트 프로그램을 실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그의 금지약물 복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가 세웠던 ‘메이저리그 시즌 최다홈런’을 비롯해 ‘개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은 우스갯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의 ‘756호 홈런볼’이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약물 복용을 의미하는 ‘별표’가 새겨진 채 명예의 전당에 전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웅’이 아니라 ‘조롱거리’로 이름을 남기게 되는 셈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