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가 자제들 상대 기업 주식 정리…LG 구광모 ‘지분 확대’ 희성 구본식과 자제들 ‘입지 강화’
최근 희성그룹의 구본식 부회장 자녀들이 LG그룹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박은숙 기자
1996년 1월 LG그룹에서 분리된 희성그룹은 지주사 역할을 하는 희성전자를 포함해 희성화학, 희성정밀, 삼보이엔씨 등 9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이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현재 희성그룹은 2남 구본능 회장과 4남 구본식 부회장이, LG그룹은 장남 구본무 회장과 3남 구본준 부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그동안 LG그룹과 희성그룹의 자제들은 서로 주식을 교차 소유해왔다.
그런데 최근 LG그룹과 희성그룹 자제들이 상대 기업의 주식을 정리했다. 구본식 부회장의 세 자녀, 즉 장남 웅모 씨와 장녀 연승 씨, 차녀 연진 씨는 최근 LG상사 주식 38만 3050주와 ㈜LG 주식 총 89만1427주를 전량 매각했다. 지난 7월 초부터 시작된 매각 작업은 지난 12일까지 이어졌다. 정리한 주식 규모는 장남 웅모 씨가 LG상사 25만 7173주, ㈜LG 62만 3190주로 가장 많다. 장녀 연승 씨가 LG상사 주식 8만 8426주, ㈜LG 주식 26만 3147주를, 차녀 연진 씨가 LG상사 주식 3만 7451주, ㈜LG 주식 5090주를 매각했다.
이번 달 구광모 ㈜LG 상무도 70억 원 규모의 희성금속의 지분 3%가량을 매각했다. 구광모 상무는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자로 LG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을 따라 2004년 구본무 회장의 장남으로 입적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매각에 대해 LG그룹과 희성그룹이 본격적으로 후계 승계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풀이한다. 희성그룹에서는 장남 웅모 씨가 LG그룹에서는 구광모 상무가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구광모 상무의 ㈜LG 지분은 2006년 2.75%에서 올해 6.24%로 크게 올라 현재 구본준 부회장에 이어 3대 주주로 올라 있다. 구 상무는 또 그룹 내 ‘캐시카우’로 불리는 종합물류 계열사 판토스의 지분도 7.5% 소유하면서 LG그룹 내 지분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구본능 회장이 희성그룹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는 것도 희성그룹 후계 승계 작업의 정황으로 꼽힌다. 지난 6일 삼보이엔씨는 구본능 회장 외 1인으로부터 희성정밀 948억 원에 달하는 주식 14만 5760주를 양수했다. 구 회장은 희성정밀 지분과 화성금속 지분 17만 1677주도 전량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매각으로 구본능 회장의 희성그룹 내 지분은 희성전자 주식 937만 9200주와 희성화학 주식 5만 2000주만 남았다. 삼보이엔씨 관계자는 “양수 목적은 공시한 대로 사업영역 확대 및 경영 효율화의 측면일 뿐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구 회장의 지분 매각으로 구본식 부회장과 그 자제들의 그룹 내 입지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희성그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주식을 전량 매각한다는 것은 LG와 거리를 두려는 의미도 있지만 승계에 필요한 계열사 지분을 사기 위한 현금 확보에도 목적이 있어 보인다”며 “구 회장이 구 부회장에게 책임경영을 하라고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본능 회장이 희성정밀과 희성금속 지분을 매각한 것은 어차피 필요한 작업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희성정밀과 희성금속을 삼보이엔씨 아래 두면 구본식 부회장이 세 계열사를 한 번에 관리할 수 있고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삼보이엔씨는 토목공사 전문업체로 일감이 일정하게 있지 않아 희성정밀과 희성금속을 아래 두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희성그룹의 이번 지분 정리 작업이 구본식 부회장 1인 경영체제의 초석이 될 가능성도 있다. 희성화학, 희성정밀, 희성소재, 희성촉매 등 계열사 지분을 소유한 희성전자는 희성그룹 내에서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구본식 부회장의 희성전자 지분은 29.4%로 웅모 씨의 지분 13.5%를 합치면 구본능 회장의 지분 42.1%를 앞선다. 구본식 부회장은 희성전자의 2대 주주인 데다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삼보이엔씨까지 쥐면 사실상 희성그룹을 전체 지배하는 것이다.
구본능 회장이 향후 친자인 구광모 상무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구 회장이 남은 희성그룹 계열사 주식도 매각해 그 자금으로 ㈜LG 지분을 늘려 구 상무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다. 2014년에도 구 회장은 구 상무에게 ㈜LG 주식 190만 주를 증여한 바 있다. 구본능 회장은 현재 ㈜LG 지분 3.39%, LG상사 지분 1.66%을 소유하고 있다.
희성그룹 오너 일가가 바삐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희성그룹의 4세 경영 승계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웅모 씨가 1989년 생(만 27세)으로 아직 특별한 직책을 맡기에는 어리기 때문이다. 희성전자 관계자는 “웅모 씨를 포함해 구 부회장의 자녀들이 모두 그룹 내에서 어떠한 직책도 맡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