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까 말까’ 요리사를 요리하지 마
미식가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미슐랭 가이드’ 혹은 ‘미슐랭 스타 셰프’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미슐랭 가이드’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음식점 평가서로 등급에 따라 별 1~3개를 매겨서 맛집을 선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더욱이 매년 50만 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라니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 지금까지 해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미국 각지의 레스토랑을 심사해 오던 ‘미슐랭 가이드’가 얼마 전에는 아시아 최초로 ‘도쿄판’을 출간해서 화제가 됐다. 이번 ‘도쿄판’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미슐랭 측이 이례적으로 도쿄 시내음식점 8곳에 무더기로 별 3개를 준 것이다. 현재 ‘미식가의 도시’ 파리가 10곳, 뉴욕이 3곳, 런던은 단 1곳이란 점을 생각하면 분명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미슐랭 가이드’가 무엇이길래 전세계 요리사들과 미식가들이 별 하나에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
‘미슐랭’은 세계적인 프랑스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 그룹’의 불어 발음이다.
타이어 회사와 음식점 평가서라. 어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 기원을 따지고 보면 이해가 간다. 1900년 처음 출간된 ‘미슐랭 가이드’는 원래는 자동차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행정보책자였다. 주로 자동차 여행에 필요한 호텔, 음식점, 주유소, 정비소, 공중 화장실 등을 소개한 책이었다. 나중에 음식점만 따로 모은 ‘레드 가이드’와 여행 및 관광지를 소개한 ‘그린 가이드’를 나누어서 출간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레드 가이드’를 가리켜 ‘미슐랭 가이드’로 부른다.
미슐랭 측이 음식점에 별을 매기기 시작한 것은 1926년부터였다. 독특한 것은 평가원들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손님으로 가장한 채 음식점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분을 숨긴 평가원들은 ‘암행 조사원’들로 불렸으며, 음식점 관계자들은 이들의 신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평가 기간은 1년가량이며 현지인을 포함해 프랑스인 조사원 등 대여섯 명이 평가원으로 활동한다.
별을 매기는 시스템이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기 시작하자 1930년대부터는 별 2개, 별 3개로 나누어서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발간되기 시작했다. 현재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되는 나라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스위스, 영국, 아일랜드 등 12개국이다. 2005년에는 처음으로 유럽 이외의 지역으로 뉴욕판이 발간되었으며, 2006년에는 샌프란시스코판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올해 2007년에는 도쿄, LA, 라스베이거스 등이 추가되었다.
현재 전세계 음식점 중 별이 하나 이상 붙어 있는 곳은 모두 1606곳이다. 전체 심사 대상이었던 1만 6150곳 중 9.9%에 불과한 수치다. 이 중 별 3개를 받은 음식점은 64곳뿐이라니 이쯤 되면 ‘미슐랭 별’이 요리사들에게는 최고의 훈장이자 영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 루와조 요리사 | ||
그런 까닭에서인지 도쿄 긴자의 초밥왕인 오노 지로(82)가 운영하는 ‘스키야바시 지로’는 건물 공동 화장실을 사용할 정도로 시설 면에서는 형편 없는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별 3개를 받아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별을 많이 받을수록 그만큼 심적인 부담도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고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내년 심사에서도 그대로 별을 유지하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비해 별이라도 하나 덜 받을 경우 요리사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
또한 명성과 달리 경제난에 허덕이는 곳도 많다. 항상 최고의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서, 또 최고의 서비스를 위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테리어와 설비 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슐랭 별’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심지어 자살까지 한 요리사도 있었다. 2003년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였던 베르나르 루와조(52)가 엽총으로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미슐랭 3 스타 셰프’였던 루와조는 2004년 ‘미슐랭 가이드’에서 자신의 레스토랑이 별 2개로 강등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절망감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별 2개’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택했다는 말이 시중에 돌기도 했다.
그의 자살 원인을 둘러싼 또 다른 주장으로는 그의 음식점이 수년간 적자에 시달려왔으며, 결국은 그가 빚더미에 허덕이다가 자살했다는 설이 있다. 어찌됐든 당시 그의 자살은 얼마나 ‘별 3개’를 유지하는 것이 내외적으로 힘든지를 여실히 나타내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의 ‘3 스타 셰프’들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는 사례도 빈번하다. 뉴욕이나 도쿄 등 대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열고 로열티를 받는 형태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04년에는 미슐랭의 전 심사원이었던 파스칼 레미가 ‘미슐랭의 비밀’을 폭로하는 책을 출간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책에서 “미슐랭의 심사 기준은 생각하는 것보다 사실 엄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별을 매기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공정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음식점 심사 주기를 예로 들었다. “미슐랭 측은 기존에 평가했던 음식점들을 18개월마다 한 번씩 재방문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42개월마다 한 번씩 방문하고 있다. 그것도 특정 불만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가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폭로했다.
또한 미국의 음식 비평가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너무 프랑스 요리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전세계에서 별을 받은 음식점 중 50% 이상이 프랑스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며, 뉴욕의 별 3개 음식점 중 1곳, 런던에서 유일하게 별 3개를 받은 1곳 역시 프랑스 음식점이다. 이번에 선정된 도쿄의 경우에는 3곳이 프랑스 음식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비난과 의혹 속에도 매년 미식가들의 눈과 귀는 어김 없이 ‘미슐랭 별’에 쏠리고 있다. 1개월 예약이 미리 꽉 차거나 심지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도 모두 이 ‘별’ 하나 때문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