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릴 땐 요란히 담을 땐 소리없이
‘정보 전쟁’이나 ‘첩보 전쟁’이라는 말은 영화 속 스파이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개인적 출세나 신제품 개발, 새로운 사업 전개 등의 경쟁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쟁 상대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사토 마사루 씨는 외교관이자 정보 분석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저서 <국가의 모략>에서 경쟁이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만일 유능한 외교관이나 스파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상황별로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불리한 정보 98% 스스로 발설
회사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소문을 들은 경쟁사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당신에게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한다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보다 프로젝트의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정보원들의 세계에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의 98%는 자신의 입에서 발설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첩보기관인 ‘모사드’의 전 장관은 자신의 조직이 가담한 암살 미수 사건을 처리하면서 “교섭을 할 때 지장이 생길 수 있으니 나에게 암살 계획에 대한 정보를 일체 주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수록 자신도 모르게 외부에 흘릴 위험도 높아지기 때문에 애초에 필요 이상의 정보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경쟁사의 정보를 알아내고 싶다면 그 경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동종업계의 제3사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직접적인 경쟁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으며, 업계에 흘러 다니는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먼저 거짓말을 하는 쪽이 패배
회사 내의 라이벌이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가정하자. 우선 이 소문이 단순한 ‘헛소문’인지 아니면 라이벌에 의한 ‘정보 조작’인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단순한 헛소문이라면 소문의 특성상 이야기가 퍼져나가면서 내용이 변하다가 결국 흐지부지 없어지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의도적인 중상모략이라면 대응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 어디에선가 반드시 ‘정보 관리’가 이루어진다.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다보면 소문이 흐지부지 없어지거나 변질되려고 할 때마다 특정 인물을 거쳐 도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소문의 내용이 거짓이라면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가면서 조목조목 반박하면 된다. 그러나 소문이 사실이거나 사실이 일부 섞여있다면 소문의 내용을 전면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대신 상대방의 거짓말을 들춰내서 소문의 신빙성을 의심받도록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대학 때 외국 회사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뽑혔다고 하는데 사실은 단기 어학연수를 간 것뿐이라고 하더라”라고 지적하는 식이다. 단 사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거짓말을 한 쪽이 결국에는 더 많은 공격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자료는 날짜만 적어서 보관
정보 수집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비밀 정보를 손에 넣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필요한 정보의 대부분은 이미 공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특수한 정보를 얻기 위한 ‘안내인’이 필요하다면 “모르고 계셨습니까?”라는 질문이 특효약이다.
세계 2차 대전 중 일본에서 활동한 유명한 스파이인 리하르트 조르게는 자신의 수기에서 ‘안내인’에 대해 “모르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은 조사를 해서라도 가르쳐준다”고 쓰고 있다.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고 해도 그 정보를 어떻게 정리하고 관리하는 지가 중요하다. 각각의 자료를 보기 쉽게 주제별로 파일이나 상자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정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정보의 프로들은 날짜만 쓴 상자에 자료를 아무렇게나 섞어서 함께 보관한다.
각각의 상자에 들어있는 자료의 내용은 따로 일기처럼 써서 보관하기 때문에 원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3년이 지나도록 사용하지 않은 상자는 앞으로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소각해버린다.
주제별로 정리할 경우 파일을 통째로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을 염려가 있고, 사용하지도 않는 자료들이 산처럼 쌓여있으면 오히려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 더 시간이 걸릴 뿐이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