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은 버리고 ‘편견’에 눈먼 그들?
▲ 전직 복서 하카마다의 무죄를 주장하는 포스터. | ||
그의 이름은 하카마다 이와오. 소위‘하카마다 사건’이라고 불리는 억울한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1966년 6월 30일 새벽, 시즈오카 현에서 ‘고가네 미소’ 된장공장 전무의 일가족 네 명이 모두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온몸을 칼로 잔인하게 찔린 후 방화까지 저질러 사체는 물론 집까지 모두 전소됐다.
당시 된장공장의 종업원이었던 하카마다 이와오(당시 30세)는 전날 밤 일을 끝낸 후 공장 2층에 있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동료와 장기를 두고 TV를 보다가 밤 11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소방차의 요란스러운 사이렌 소리에 잠이 깼다. “가게에 불이 났다!”는 동료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잠옷 바람으로 밖으로 나갔다.
동료들과 불을 끄기 위해 우왕좌왕하던 와중에 왼손 중지를 다쳤다. 소독도 하지 않고 대충 헝겊으로 싸맸다. 그리고 나중에 상처가 악화되자 뒤늦게 의사를 찾아갔다.
이것이 사건이 일어난 날 밤 하카마다의 행동들이었다. 알리바이는 완벽했고 살인 사건과 그를 연결지을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8월 18일 하카마다는 체포됐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연일 계속되는 조사에 지쳐 결국 9월 6일 경찰의 요구대로 범행을 ‘자백’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6월 30일 새벽 1시가 지난 시각 잠옷 허릿춤에 칼을 꼽고 기숙사를 나섰다. 이웃집의 나무를 타고 전무 자택의 창고 지붕으로 넘어가 집안으로 침입했다. 가족에게 들키는 바람에 전무를 때려눕히고, 나머지 가족들을 칼로 살해한 후 현금을 강탈했다. 그리고 시체에 기름을 뿌리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후 도망쳤다.’
죄명은 ‘주거침입, 강도살인, 방화’였다. 그러나 사실 당시 경찰은 이 ‘자백’을 뒷받침하고 하카마다를 범인으로 몰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하나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단지 “전직 복서이니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선입관이 전부였다. 경찰의 내부 문서에서도 “본 사건은 피고인의 자백이 없으면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하루에 12~17시간에 걸친 조사가 계속됐고, 결국 하카마다는 자신의 범행이라고 거짓 자백했다.
1966년 12월 10일 시즈오카 지방법원에서 공판이 열렸다. 하카마다는 공판이 시작될 때부터 계속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1968년 9월 11일에 내려진 판결은 사형이었다.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되면서 1980년 11월 19일 사형이 확정됐다.
▲ 살인사건 재심을 요구하는 유명 복서들. | ||
그러던 중 된장공장 내의 탱크 안에서 대량의 피가 묻은 의류가 발견되면서 검찰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 했다. 그러나 피가 묻은 부위가 부자연스러웠다. 열 군데나 찔린 차녀의 피가 전혀 묻어있지 않는가 하면 부인의 피는 바지와 셔츠를 ‘뛰어 넘고’ 셔츠와 소매에만 묻어있는 식으로 부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옷의 크기를 봐도 도저히 하카마다의 몸에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다.
경찰이 제출한 빈약한 증거와 검찰의 사건 경위서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허점투성이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변호인 측의 지적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재판관 세 명 중 앞서 나온 구마모토 판사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이 유죄를 확신하여 ‘다수결로’ 사형이 결정됐다. 변호단은 시즈오카 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일본 변호사 연합회도 하카마다 사건 위원회를 조직하여 전면적으로 지원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4년 8월 9일 “확정판결에 합리적인 의혹이 없었다”며 변호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변호단은 즉시 도교 고등 법원에 항고했다. 2004년 8월 27일 이마저도 기각당했다. 변호단은 이에 굴하지 않고 9월 1일에 최고 법원에 특별 항고를 하고 2005년 7월에는 재심을 요구하는 서명을 제출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사형을 결정한 세 명의 판사 중 한 명이 “사실은 무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양심 고백을 하면서 다시 한 번 하카마다 구명 운동에 불이 붙었다.
지난 1월 24일에는 도쿄의 고라쿠엔 홀에서 ‘하카마다 이와오의 재심을 요구하는 자선 이벤트’가 열렸다. 일본 프로 복싱 협회가 주최한 이벤트로 WBC 플라이급 챔피언인 나이토 다이스케를 비롯하여 전·현직 세계 챔피언들이 모여 스파링 시범이나 어린이 복싱 교실, 유명 복서들의 애장품 경매 행사 등을 통해 하카마다 사건 재심 청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이벤트에서는 시즈오카 지방법원의 전직 판사로 하카마다 사건에서 사형을 구형한 구마모토 노리미치(70)가 등장했다. TV에서 하카마다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었다고 발언했던 바로 그 판사다.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오른 구마모토는 “나는 박수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로 시작해서 “하카마다 씨의 나이를 생각할 때 더 이상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나의 능력 부족으로 이런 일을 겪게 되어 죄송하다”고 눈물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유명 복서인 하타케야마 선수는 “하카마다 사건은 프로 복서에 대한 편견으로 범인으로 몰려, 사형까지 확정된 사건이다. 편견 때문에 범인으로 몰다니 지금 시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하카마다는 도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으며 오랜 수감 생활 때문에 10여 년 전부터 구금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만의 망상에 빠져 있는 상태로 가족이나 지원자들과의 면회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
만일 재심 요구가 받아들여져 하카마다의 무죄가 증명된다고 해도 이미 42년의 세월과 함께 모든 것을 잃고 현실을 자각하는 능력마저 잃어버린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