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아 길 비켜라’ 아우토반 무한 질주
▲ 백인 귀족 스포츠로 인식되어 온 F1에서 흑인 선수인 해밀턴이 성공을 거두자 세계 자동차 경주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
타이거 우즈처럼 ‘검은 황제’로 불리고 있는 해밀턴은 우즈와 닮은 구석이 많다. 우선 백인들이 우세했던 스포츠에서 당당하게 성공한 흑인 선수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아버지의 헌신과 뒷바라지로 정상에 우뚝 섰다는 점도 그렇다.
해밀턴은 1950년대 카리브해 그레나다섬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민 3세대다. 아버지는 철도 직원으로 일했으며,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동시에 두 가지 허드렛일을 더 하는 등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레이싱을 하기에는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해밀턴의 재능을 알아 보았다. 여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원격조종 자동차를 선물 받았던 그는 어린아이의 실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조종 능력을 보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BBC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원격조종 자동차 경주대회에 출전해 쟁쟁한 어른들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레이싱에 뛰어든 것은 열 살 무렵이었다. 그는 그해 ‘영국의 카트 유망주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타고난 스피드 감각으로 동물적인 레이싱을 벌여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의 우승을 계기로 카레이서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대회 시상식장에서 F1 팀 중 하나인 맥라렌 팀 단장이자 그룹 회장인 론 데니스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평소 TV에서 그를 봐왔던 어린 해밀턴은 용기를 내서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전 루이스 해밀턴입니다. 이번에 대회에서 우승했어요. 언젠가는 아저씨 레이싱카를 타고 꼭 세계챔피언이 되고 싶어요.”
당돌한 꼬마를 본 데니스는 웃으면서 “한 번 더 대회에서 우승하면 그때 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주렴”이라고 말하면서 휴대폰 번호를 적어 주었다. 그후 해밀턴은 카레이서 유망주들이 나갈 수 있는 대회는 모조리 나가서 우승을 싹쓸이했다. 그리고 데니스 단장과의 약속대로 그는 13세 때 마침내 꿈에 그리던 맥라렌 팀 소속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성공을 향한 여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15세 때 청소년 유럽 카트 챔피언 우승을 시작으로 20세 때에는 F3 유럽 시리즈를 우승했고, 이듬해 F1의 2부격인 F2에 데뷔해서 챔피언을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F1으로 승격한 그는 데뷔와 동시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가 팀 동료이자 이미 월드챔피언을 두 차례 지낸 스페인의 페르난도 알론소(27)의 파트너로 데뷔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예견하지 못했다. 아직 신출내기인데다 팀 내 넘버 원 격인 알론소의 그늘에 가려 그랑프리 1승은커녕 챔피언에 근접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이렇게 시작된 ‘해밀턴 효과’는 이미 자국인 영국을 비롯, 유럽과 미국에서 돌풍을 몰고 오고 있다. 그가 데뷔한 후 F1 시청률은 급등했으며, 그가 출전하는 대회는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유럽스폰서십연맹 회장인 나이젤 커리는 “해밀턴은 향후 15년 동안 10억 파운드(약 1조 85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일 것이다”고 확신했다. 그의 시장성과 잠재력을 따지면 우즈나 베컴, 마이클 조던 못지 않은 대스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소속팀인 맥라렌 팀은 최근 해밀턴과 5년간 1억 3800만 달러(약 1230억 원)라는 파격적인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70만 달러(약 6억 6000만 원)의 연봉을 받던 그가 1년 만에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로써 그는 한달에 약 160만 달러(약 15억 원), 운전대에 앉아 1분마다 약 9000달러(약 850만 원), 경기장을 한 바퀴 돌 때마다 약 1만 1000달러(약 1000만 원)를 벌어들이는 등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지만 그에게는 아직 넘어야 할 벽이 또 하나 남아있다. 바로 인종차별 문제가 그렇다. 이미 여러 차례 경기장에서 관중들로부터 인종차별적인 공격을 당했던 그는 그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다.
가장 최근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졌던 합동테스트 기간 중에 스페인 관중들로부터 “깜둥이는 꺼져라”라는 모욕적인 야유를 들었다. 또한 지난해 10월에는 스페인의 F1 관계자인 카를로스 그라시아가 “영국 팬들이 자국 선수의 F1 우승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종차별주의자들인 영국인들이 이것을 유색인종 레이서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묘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많은 팬들은 벌써부터 오는 3월 시즌 시작과 함께 다시 불어닥칠 그의 ‘검은 돌풍’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