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 생활 두 달… 정말 행복했다”
▲ 해리 왕자(왼쪽)가 아프간 전장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며 동료 병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수천 명의 동료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똑같은 헬멧을 쓰고, 똑같은 스카프와 고글을 쓰고 생활한 것 자체가 나에게는 평범한 사람으로 생활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해리 왕자의 말처럼 어쩌면 그에게 전쟁터는 생사가 걸린 위험한 곳이라기 보다는 파파라치와 왕실에서 처음으로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목숨을 건 전투를 하는 순간에까지 그런 생각이 들었겠느냐마는 “나 역시 죽으면 그저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여기 동료들처럼 나도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이번 복무가 그에게는 분명 소중한 경험이었던 듯하다.
또한 해리 왕자는 “윌리엄 형과 이 부분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우리 형제는 왕자라는 신분 때문에 얻는 것이 많은 동시에 또한 놓치고 사는 것도 아주 많다”며 “복무 중 일반인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생각과 고민을 듣는 것이 특히 즐거웠다. 궁전에 앉아 왕실관리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 훨씬 그랬다”고 말했다.
해리 왕자가 복무한 곳은 최전선인 남부 헬만드주였다. 이곳은 탈레반 기지와 불과 5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가장 치안이 불안하고 위험한 곳이며, 현재 7800여 명의 영국군 대부분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해리 왕자가 복무할 당시에는 24시간 동안 무려 29차례의 공격을 받았을 정도로 격전지에 속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해리 왕자가 이곳에 배치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후방에서 근무하던 중 전방에 있던 한 대원이 발목을 삐는 바람에 3~4일만에 교체 투입되었던 것. 이곳에서 해리 왕자가 맡았던 임무는 ‘항공 통제관’이었다. 탈레반의 은신처를 파악해 공습 명령을 내리는가 하면 위험에 처한 지상군을 돕기 위해 항공 지원을 요청하는 임무 등이었다.
복무 당시 해리 왕자는 최소 세 번 공습 지휘를 했으며, 적어도 30명가량의 탈레반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31일 처음으로 탈레반 기지에 폭탄 투하 명령을 내렸던 해리 왕자는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어서 짜릿하고 기뻤다”며 첫 경험에 대해서 회상했다.
▲ 해리 왕자(왼쪽)와 그의 여자친구 첼시. | ||
그렇다면 해리 왕자의 신분 특성상 군복무 자체가 위험하진 않았을까. 사실 얼굴이 노출되면 즉시 총알이 쏟아져 박힐 것으로 예상해서 본인 스스로 별명을 ‘총알 자석’이라고 지었을 만큼 아프간 복무는 해리 왕자에게는 꽤나 위험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현장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때로는 도보 정찰을 나가기도 했지만 군복에 헬멧, 거기다가 고글까지 쓰고 있었던 까닭에 길에서 마주치는 민간인이나 아프간 경찰조차도 해리 왕자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통역관까지도 해리 왕자를 몰라볼 정도였다.
해리 왕자와 무선으로 통신을 했던 파일럿들도 콜사인이 ‘위도우 6-7’였던 해리 왕자의 진짜 정체를 끝까지 몰랐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해리 왕자는 곧 중위로 승진함과 동시에 급여도 하루에 11파운드(약 2만 원)씩 더 오를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연봉 또한 2만 173파운드(약 3900만 원)에서 2만 4247파운드(약 4700만 원)로 껑충 뛰게 된다. 물론 이는 800만 파운드(약 78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해리 왕자에게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돈보다 해리 왕자를 더욱 기쁘게 하고 있는 것은 현재 소위인 윌리엄 왕자보다 계급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군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형인 윌리엄 왕자가 동생인 해리 왕자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한편 영국의 타블로이드지인 <더 선>은 해리 왕자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모의 한 여성 파일럿과 야릇한 관계였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가 정정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더 선>은 해리 왕자가 미셸 톰킨스라는 여성과 무전을 주고받으면서 친해졌으며, 이내 진지한 사이로 발전할 조짐까지 보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뒤늦게 밝혀진 바에 따르면 톰킨스는 아프가니스탄에 복무한 적이 없었으며, 이와 관련된 보도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이에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첼시 데이비(22)였다. 3년 전부터 해리 왕자와 사귀고 있는 백만장자의 딸이자 법대생인 데이비는 한때 결별설이 돌았지만 최근 해리 왕자가 귀환하자마자 함께 아프리카로 밀월여행을 떠나 둘의 사이가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한편 아프간 복무 당시 해리 왕자가 종종 데이비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아무리 왕자라고는 하지만 다른 군인들처럼 통화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긴 통화는 못 했지만 그때마다 해리 왕자는 그리움으로 눈물 범벅이 된 채 전화를 끊곤 했다.
과연 해리 왕자가 언제 다시 전쟁터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아마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주요 언론들의 시각이다. 비록 ‘보통 사람’으로 지냈던 10주는 한바탕 꿈처럼 지나갔지만 과거의 ‘말썽꾼’ 이미지를 말끔히 씻는 데 성공한 것은 틀림 없는 듯하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