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고려 때 것은 맞지만” 문화재 지정 불허···정치권 “정무적 판단 아니냐” 반발 움직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금속활자 문화재인가 아닌가’ 학술토론회에서 유성엽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인사말 장면=박은숙 기자
9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금속활자, 문화재인가 아닌가’를 주제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유성엽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국민의당)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이철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하고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증도가자 기초학술연구팀이 주관했다. 토론장에는 주최한 의원들 외에 김두관 민주당, 김학용 한국당,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 등도 참여해 큰 관심을 보였다. 7년 간의 증도가자 진위 논란이 국회로 넘어간 것이다.
증도가자는 보물(제758-1호)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증도가)’를 인쇄할 때 사용된 것으로 학계 일각에서 주장해 온 금속활자다. 현존 증도가는 1239년 제작된 번각본으로, 금속활자본은 남아 있지 않다.
토론회에는 그동안 진품임을 주장해 온 남권희 경북대 교수를 비롯해 김성수 청주대, 유부현 대진대, 조형진 강남대 교수 등이 발제에 참여했고 과학적 분석에 참여한 강태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연구관, 정제규 상근전문위원과 황권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 등 심의 과정에 참여한 인사들도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 장은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 불허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 발제자로 나선 김성수 남권희 유부현 교수와 조형진 교수는 증도가자에 대한 보물지정 심의 및 이를 위한 분석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조판, 주조 실험과 서체분석 등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일부 발제자는 문화재청이 목적성 실험으로 검증과 발표를 서두른 것이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의 지정조사단 구성에 대한 자질 논란도 제기됐다. 이에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증도가자의 불분명한 출처와 구입경로 등을 강조하며 문제가 없었다고 대응했다.
검증 외에 증도가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공방도 이어졌다. 직지를 지키려는 학계 등의 외압 등 음모론도 제기됐다. 문화재청 역시 토론회에 방청 중인 고미술협회 김종춘 회장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이어졌다. 김 회장은 이에 격노해 “지난 4월 문화재 지정 불허 당시 증도가자 보물 지정을 막는 세력과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청이 불허를 위한 검증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김 회장 등이 증도가자의 출처와 구입경로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등 보편타당한 확인이 어려웠음을 강조했다. 방청석에선 찬반 공개토론회 추가 개최와 보물 지정 재심의에 대한 요구가 쏟아졌다. 한 방청객은 문화재의 출처보다 문화재의 해외반출 등이 더 큰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유성엽 위원장은 “증도가자는 금속활자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 문화계가 분열과 갈등이 아닌 과학적인 분석을 토대로 진위 여부를 넘어선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웅래 의원도 “역사적 평가가 아닌 정치-정무적 판단이 없었는지, 정확한 판단에 대한 의구심이 없도록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호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과학적 분석은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맞다. 하지만 절대분석이 아닌 비교 분석인 점, 연구대상에 대한 범위, 연구방법에 대한 신뢰도, 기기분석 조작자의 자질, 사전 제시된 자료 검토 등 과학적 한계가 분명한 만큼 과학적 연구만이 아닌 학술적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편, 문화재위원회(동산문화재분과)는 앞서 4월 13일 “서체 비교, 주조, 조판 등 과학적 조사 결과 증도가자로 보기는 어렵다”며, 증도가자에 대한 국가문화재 지정 심의 결과 부결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당시 증도가자 재검증을 진행한 ‘고려금속활자 지정조사단’이 ‘지정 보류’ 의견을 냈지만 문화재위원들이 부결을 전격 결정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의 발단이 됐다.
증도가자의 진위 논란과 함께 문화유산에 대한 전문적인 고증이 적극 수반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 국가를 상징하는 국보, 보물이라면 위조나 도난품 의혹이 없도록 출처가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틀린말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우수한 문화유산들은 일본에만 30만여 점(추정) 등 우리의 슬픈 과거사로 인해 음지와 해외 도처에 흩어져 있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의 국립박물관엔 해외 약탈 문화유물이 차고 넘친다.
문화재 진위 논란도 중요하지만 문화재 반출과 환수 등에 대한 대책 마련과 함께 문화재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국민적 관심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