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도 삶도 ‘연연해 하면 지는 것’
▲ 워런 버핏. | ||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주총회는 오마하 시내의 큰 체육관에서 열리는데 미처 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근처의 주차장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주주총회를 지켜본다. 총회는 아침 9시부터 시작되지만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날 새벽 1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의 진짜 목적은 주주총회가 끝난 후에 이루어지는 ‘대화의 시간’에 있다. 이 시간은 다섯 시간 이상에 걸쳐 워런 버핏이 주주들로부터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시간으로, 그 현장의 분위기와 열기는 마치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해서 ‘투자가들의 우드스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국의 유명 경제지 <포브스>에서 2008년 최고 갑부로 뽑힌 워런 버핏의 추정 재산은 약 620억 달러(약 62조 원). 지난해 미국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전 세계의 투자가들이 고심하고 있을 때도 그는 오히려 100억 달러(약 10조 원) 이상이나 재산을 불렸다. 그런데 그가 유명한 진짜 이유는 단지 ‘돈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으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정작 워런 버핏 자신은 여전히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거액을 기부하는 등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30년 전 약 3만 달러(약 3000만 원)에 구입한 전형적인 중산층용 주택에 살고 있다. CEO로서의 연봉도 약 10만 달러(약 1억 원)로 스톡옵션 등으로 거액을 버는 다른 경영자들과는 다르다. 그가 가장 즐기는 음식이 동네에서 파는 31달러 25센트짜리(약 3만 원) 스테이크라는 것도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2006년 친구인 빌 게이츠의 재단에 370억 달러(약 37조 원)를 기부하기로 한 것도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이런 생활 철학 때문에 ‘오마하의 현인(賢人)’이라고 불리는 워런 버핏은 많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 명언들을 잘 되새겨 보면 그가 막대한 자산을 모을 수 있었던 ‘투자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 워런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헤더웨이’ 주주총회 모습. 록콘서트 같은 열기 때문에 ‘투자가들의 우드스톡’이라 불린다. | ||
그가 실질적인 오너였던 1965년부터 2007년까지의 43년 동안 ‘버크셔 헤더웨이’는 연평균 21%의 운용 수익을 냈다. 미국의 대표적인 우량주로 구성된 ‘S&P 500지수’가 같은 기간 동안 낸 수익은 연평균 10%에 불과하다. 만일 워런 버핏이 안정된 수익을 위해 분산 투자를 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주식시장의 상승률을 훨씬 뛰어넘는 수익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산 투자를 하지 않으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대신 ‘한방에’ 쫄딱 망할 수도 있다는 높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투자가들의 딜레마이자 워런 버핏을 ‘투자의 신’으로 만든 점이기도 하다.
가톨릭 신자의 결혼처럼 투자하라
그의 기본적인 투자 철학은 ‘영구 보유한다는 생각으로 주식을 사라’는 것이다. 애초에 좋은 주식을 사면 나중에 되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처음부터 이미 신뢰할 수 있는 경영자가 있는 회사를 선택한다면 나중에 경영에 일일이 간섭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투자하기 전에 그 회사의 사업 내용이나 장래성, 경영자의 자질 등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주식 구입을 한번 결혼하면 이혼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가톨릭 신자의 결혼’에 비유하거나 “주식을 10년 동안 가지고 있을 자신이 없다면 10분도 갖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런 그에게 있어 분산 투자란 투자할 회사의 진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의욕적으로 나설 때 소극적이 되어야 한다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지닌 워런 버핏의 투자 스타일을 잘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2000년 IT 버블 당시 그는 IT 관련 하이테크 산업에 전혀 투자를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버핏의 감이 무뎌졌다”는 등 수군거렸지만 본인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지켰다. 결국 버블이 붕괴하면서 IT에 투자한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입었지만 주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믿은 워런 버핏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