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회장, 압력 때문에 입 연 것 아니다”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박 회장의 건강은 어떤가. 심리 상태는.
▲구속된 지 넉 달이 지나고 있다. 심장병도 있고 건강이 매우 안 좋다. 특히 자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사법처리되니까 심리적으로도 불안해하고 있다.
―박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 알려져 있는데 두 사람은 언제부터 인연을 맺게 된 것인가.
▲두 사람의 인연은 운명이다. 박 회장은 신발사업에 뛰어들어 30대에 기반을 잡았다. 사업이 잘나가다 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와는 동향에 나이도 같다보니 친구로 지내 왔다. 친구의 동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88년 부산 동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을 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88년 총선 때는 정말 ‘화끈하게’ 도와준 것으로 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치러진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 노건평 씨나 노 전 대통령 지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게 대한민국 정치 풍습이고 기업풍토 아니겠나. 박 회장은 내게 “모기가 대포에 맞았다”며 절규한 바 있다. 박 회장이 대포를 맞게 된 데는 분명 노 전 대통령의 요소가 있다. 박 회장이 자수성가해 지역 유력인사로 성장했을 때 노건평 씨를 매개로 한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운명이 되어 참담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박 회장과 ‘리스트’와 관련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나.
▲나는 박 회장에게 “훌훌 털어 버리라”고 조언을 했을 뿐이다. 검찰 진술은 전적으로 박 회장이 결정한 문제고 ‘리스트’ 또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넨 100만 달러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진행되고 있는데 박 회장의 입장은 무엇인가.
▲100만 달러에 대해서는 박 회장과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 다만 노 전 대통령 스스로 고백을 했고 자신이 직접 받았든 부인이 받았든 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돈을 청와대 경내에서 전달 받았다면 노 전 대통령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용처나 대가성 여부는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겠지만 그 전에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본다.
―박 회장이 연철호 씨(노건평 씨 사위)에게 건넨 500만 달러의 성격과 관련해 박 회장은 처음 화포천 개발 사업 명목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주장은 지금도 유효한가.
▲500만 달러의 성격에 대해서는 박 회장의 의견이 잘못 전달된 부분이 없지 않다. 분명한 건 박 회장이 내심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 뭔가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화포천 개발사업 명목이든 가족들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투자 명목이든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자 했다는 점이다. 돈의 성격과 실체에 대해 진실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박 회장도 조만간 자신의 입장을 검찰에 진술할 것으로 알고 있다. 박 회장의 진술이 진실일 것으로 확신한다.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 가족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되지 않겠나. 돈이 오간 배경과 성격, 대가성 여부 및 사용처 등이 사법처리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요한 건 박 회장의 진술과 그 신뢰성이다. 공직자의 뇌물죄는 상당히 폭넓게 인정되는 게 판례인데 하물며 대통령 신분이었잖나.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는 상당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노 전 대통령 스스로 당당히 법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고 본다. 인터넷을 통해 반론을 할 게 아니라 차분히 검찰 수사를 기다리든가 고해성사를 하고 도의적·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국가 원수는 국민 통합의 상징이고 퇴임 후에도 원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박 회장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게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모든 의혹을 밝혀야 한다.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에는 구 여권 인사뿐만 아니라 현 여권 일부 실세들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는데.
▲박 회장이 사업 근거지가 한나라당의 텃밭인 부산 경남 지역이다 보니 참여정부뿐 아니라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에게도 돈을 지원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사들도 대부분 이 지역 정치인들 아닌가. 2002년 대선 때는 한나라당 재정위원으로 위촉되면서 10억 원의 특별 당비를 낸 적도 있다. 현 여권 실세들이 박 회장에게 돈을 받았는지 여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박 회장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검찰 수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으니까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야권 일각에선 ‘표적·기획 수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사법처리된 사람들이 주로 구 여권 인사들이다 보니 이런저런 의혹과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분명한 건 박 회장이 입을 열게 된 건 검찰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이 5개월 동안 전 방위적인 수사를 하면서 많은 증거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집요하게 추궁하니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고 있는 것이지 외압이나 압박 때문이 아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