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여 인재 얻고 콧대 세워 실책 만회
일본의 대중지 <주간포스트>는 최근호에서 유비, 제갈공명, 조조의 리더십을 현대의 비즈니스 처세술에 응용할 수 있도록 재해석해 소개했다. 이를 발췌수록한다.
●삼고초려 - 비즈니스맨은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삼국지> 등의 고전에 나오는 리더들의 공통점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얼굴이 두껍다’가 아닐까. 보통 얼굴이 두껍다고 하면 뻔뻔하고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결코 나쁜 의미가 아니다. 큰 뜻을 품은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비즈니스에서도 성공을 위해서는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는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삼국지>의 유명한 일화인 ‘삼고초려’만 봐도 유비와 제갈공명이 얼마나 ‘뻔뻔한’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 유비는 지략이 뛰어난 제갈공명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찾아갔지만 집에 없었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도 제갈공명은 집을 비운 상태였다. 세 번째 찾아갔을 때는 집에 있었지만 이번에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유비는 제갈공명이 깰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결국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 무례한 대접을 받을 수 없으니 그만두고 돌아가자는 관우와 장비의 뜻을 꺾고 자존심을 굽혀가며 세 번이나 찾아간 유비도 상당히 얼굴이 두껍지만, 자는 척을 하며 유비를 떠본 제갈공명의 뻔뻔함도 그에 지지 않는다. 훌륭한 리더라면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 아랫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정도의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일화다.
조조는 천하를 손에 넣은 영웅이지만 <삼국지>에서는 교활하고 냉혹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여백사와의 일화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동탁을 죽이는 데 실패하고 쫓기던 조조가 아버지의 의형제인 여백사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여백사가 술을 사러 밖으로 나간 사이에 여백사의 가족이 돼지를 잡기 위해 칼을 가는 것을 보고 조조는 자신을 죽이는 것으로 착각해서 가족 모두를 죽여 버린다. 이내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지만 후환을 없애기 위해 술을 사갖고 돌아온 여백사마저 죽인다. 이때 조조가 남긴 유명한 말이 “내가 세상의 사람들을 배반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배반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최강의 ‘뻔뻔함’을 자랑하는 조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비즈니스에서 리더는 양심에 어긋나는 결정이나 실수를 두고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아무리 고민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럴 때는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 있게 밀어붙이는 조조의 뚝심은 현대 비즈니스맨들에게도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리더가 지녀야 할 덕목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바로 제갈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어쩔 수 없이 마속의 목을 벤 이야기다.
유비가 세상을 뜬 후 중국 통일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이어받게 된 제갈공명이 숙적인 위나라를 치기 위해 출전했다. 그러나 첫 번째 북벌에서 마속이 제갈공명의 명을 따르지 않아 결국 많은 병사를 잃고 후퇴하게 됐다. 이에 제갈공명은 과거의 눈부신 공적이나 두터운 친분에도 불구하고 규율을 어긴 마속의 목을 베야 했다.
이 일화는 ‘신상필벌(信賞必罰·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교훈은 다른 데 있다.
이 전투는 제갈공명이 지휘한 첫 번째 북벌이었다. 이 첫 번째 전투를 비즈니스로 바꾸어보면 신규 사업을 전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그 사업이 회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중요한 것이라면 부하에게 맡기지 말고 리더가 직접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중요한 첫 전투를 직접 지휘하지 않고 아랫사람인 마속에게 맡겼다. 더구나 마속은 유비가 죽기 전 “말이 사실보다 과장되므로 중용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남긴 인물이었다. 유비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제갈공명은 마속을 신임하여 중요한 전투의 지휘를 맡겼고 그 결과 참담하게 패했다. 이 일화가 주는 비즈니스 교훈은 중요한 신규 사업은 아랫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리더가 직접 나서 지휘해야한다는 점이 아닐까.
●도원결의 - 창업 멤버를 소중하게 생각할 것
<삼국지>의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첫 부분에서 유비가 장비와 관우를 만나 의형제를 맺는 ‘도원결의’를 빼놓을 수 없다.
후한 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이들을 토벌하기 위한 의용군을 모으는 방을 보고 있던 유비에게 장비가 말을 걸어 함께 큰일을 도모하자고 제의했다. 의기투합한 유비와 장비가 술을 마시던 술집에 마침 의용군에 합세하러 가던 관우가 들어왔다. 이에 유비가 관우를 불러 자신이 뜻한 바를 이야기하자 관우 또한 크게 기뻐하며 찬성했다. 그 후 세 사람은 장비의 집에 있는 복숭아 동산으로 가서 의형제를 맺고 뜻을 함께 하기로 맹세했다.
▲ 유비의 참모인 제갈공명 캐릭터. | ||
촉나라는 이를테면 인망이 뛰어난 유비를 필두로 머리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행동력이 있고 리더와 뜻을 함께 하는 관우와 장비라는 세 사람이 공동 창업한 벤처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벤처기업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 제갈공명과 같은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인재 영입에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면 기존 회사문화에 반하거나 본래의 창업 취지가 퇴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창업 멤버를 계속 그 자리에 둠으로써 회사가 커지면서 창업 취지가 변질되는 것을 막는 것이 좋다. ‘도원결의’에서 “함께 태어나지는 못했으나 죽을 때는 한날 한시에 죽겠다”고 맹세한 관우와 장비는 실제로 죽을 때까지 촉나라와 유비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편 유비 관우 장비의 관계는 ‘톱-다운 방식(Top-down·상부에서 내린 결정이 하부로 전달되는 방식)’의 조직 편성을 보여준다. 유비에게 발탁되어 도중에 합류한 젊은 제갈공명과 창립 멤버이자 나이도 훨씬 많은 관우과 장비의 미묘한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유비의 참모인 제갈공명이 조조의 오른팔인 하후돈과의 전투를 지휘할 때의 이야기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중용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관우와 장비가 제갈공명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때 유비가 “아무리 전투능력이 뛰어나도 전술과 전략이 없다면 이길 수 없다”며 제갈공명의 뜻에 따르도록 관우와 장비를 설득했다. 결국 유비의 말에 관우와 장비도 동의하고 제갈공명의 계획을 따라 3000명의 군사로 10만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다.
톱-다운 방식이란 윗사람의 지시를 아랫사람이 일방적으로 따르도록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유비와 같이 신뢰를 바탕으로 아랫사람이 납득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톱-다운 방식이다. 이 일화처럼 벤처기업에서도 신구 멤버가 서로 융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리더의 역량이 중요하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