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보크’ 연발, 영원히 ‘강판’
▲ 지난 2월 13일 미국 하원 프로야구 약물 복용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전 뉴욕 양키스 투수 로저 클레멘스. AP/연합뉴스 | ||
투수에게는 최고의 영예인 ‘사이영상’을 일곱 차례나 수상한 영웅에게 이게 웬 수치스런 별명일까. 하지만 근래 줄줄이 터진 스캔들을 살펴 보면 이런 별명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해 말 금지약물 복용 혐의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불륜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로저 클레멘스(46)의 위상은 곤두박질쳤다. 더욱 큰 문제는 그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약물복용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고 있는 것은 물론, 평소 입버릇처럼 “나에게 세상에서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떠들고 다닌 것과는 반대로 외도를 한 사실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의 명단이 적힌 ‘미첼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설마 클레멘스까지?”라면서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홈런왕 배리 본즈나 육상선수 매리언 존스 등의 경우에는 이미 여러 차례 의혹을 샀던 터라 그리 놀랄 것도 없었지만 클레멘스는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 스스로 “나는 절대로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클레멘스를 믿어 보겠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또한 ‘사이영상 7회 수상’ ‘통산 354승 184패’ 역대 2위 기록인 ‘삼진 4672개’ 등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손꼽히는 영웅에 대한 환상을 쉽게 버릴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5개월이 지난 지금 팬들의 태도는 백팔십도 달라졌다. 온갖 추문과 거짓말로 얼룩진 그의 태도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팬들은 “더 이상 영웅은 없다”면서 그가 세운 모든 기록을 취소할 것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팬들이 실망한 가장 큰 이유는 터진 둑처럼 여러 건이 동시에 줄줄이 터진 불륜 스캔들 때문이다. 가장 충격적인 스캔들은 민디 맥크레이디(32)라는 인기 컨트리송 가수와의 부적절한 관계다. 이 스캔들이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맥크레이디의 나이가 고작 15세의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다.
지난 1991년 가라오케 바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맥크레이디를 처음 만나 한눈에 반했던 클레멘스는 그후 10년 동안 계속 불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클레멘스는 엄연히 원조교제를 한 셈이며, 이는 처벌을 받아 마땅한 충격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클레멘스 측은 이런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당시 맥크레이디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나이를 많게 속이고 있었으며, 바에서 술을 마실 때에는 심지어 스물한 살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때문에 당시 클레멘스 역시 맥크레이디가 스물한 살이라고 굳게 믿었다는 것이다.
이런 스캔들에 대해 클레멘스의 전 트레이너인 브라이언 맥나미는 “함께 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둘이 침실에서 나오는 것도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반면 클레멘스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 성적인 관계는 맺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맥크레이디가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기사 내용에 대해서 부인할 수 없다”며 불륜 사실을 인정하자 그의 이런 주장은 하루아침에 새빨간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이밖에도 클레멘스는 PGA 스타였던 존 댈리의 전 부인 폴리트 딘 댈리와도 은밀한 사이였다. PGA 투어 ‘밥 호프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 처음 만난 둘은 이내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으며, 자신의 경기를 보러 오도록 경기장 티켓을 끊어주는 등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또한 안젤라 모이어라는 전직 바텐더 역시 ‘클레멘스의 여자’ 중 한 명이었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둘은 클레멘스가 뉴욕 양키스에서 뛰던 지난 2000년~2004년 시즌 동안 교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한 스트리퍼도 라디오 방송에서 “클레멘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폭로했는가 하면 뉴올리언스 출신의 제니퍼라는 여성도 “클레멘스의 전용기를 타고 대학농구 경기를 관람하러 간 적이 있었다”고 말하며 다이아몬드 귀걸이까지 선물받았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렇자 금지약물 복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는 그의 말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미첼 보고서’에 따르면 클레멘스는 지난 1998년, 2000년, 2001년에 스테로이드와 성장호르몬을 복용했으며, 전 트레이너였던 맥나미는 법정에서 “내가 직접 최소 16회 이상 약물을 주입했다”는 증언까지 했다. 이에 클레멘스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력히 부인했고, 지난 1월에는 맥나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한동안 은퇴와 재기를 반복했던 클레멘스는 이번 스캔들로 영원히 은퇴하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명예로운 은퇴’가 아닌 ‘실망스런 은퇴’란 사실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