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 불똥 ‘산 권력’에 옮겨붙나
▲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왼쪽),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오른쪽) | ||
천 회장이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여권 로비 의혹을 규명할 핵심 당사자로 지목받아 왔다는 점에서 검찰의 칼날이 천 회장 수사를 신호탄으로 여권 핵심부로 향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로 수세에 몰려 있었던 민주당도 ‘천신일 3대 의혹 진상특위’를 구성하는 등 대대적인 반격 채비를 갖추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선 천 회장이 이 대통령의 30억 원 당비를 대납했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고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천 회장의 수십억 원대 자금이 이명박 캠프에 유입됐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천 회장을 겨냥한 사정 불똥이 여권 핵심부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여권을 향하고 있는 검찰의 사정 칼날과 관련해 야권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와 맞물려 기획·표적 수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구색 맞추기’ 수사라는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전직 대통령에게 메스를 들이댄 검찰의 거침없는 사정 칼날이 과연 천 회장을 넘어 ‘살아 있는 권력’까지 수술할 수 있을까.
천 회장을 겨냥한 검찰의 사정몰이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5월 6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다음날(7일) 태광실업 세무조사 때 ‘구명로비’를 벌인 의혹을 받고 있는 천 회장의 성북동 자택과 회사 및 계열사 사무실은 물론 천 회장과 돈거래를 한 15명의 자택 등 18곳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광범위한 자료를 정밀 검토한 뒤 천 회장을 소환조사하고 한상률 전 국세청장 등 세무조사 무마 로비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에 대한 소환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5월 7일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천 회장 소환 조사는 적절한 시기에 할 예정이고, 한 전 청장은 필요한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접촉 중이며 수사에 필요하다면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천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 궤도에 진입하면서 그를 매개로 한 여권 핵심부의 비리 연루 의혹이 명쾌하게 규명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천 회장의 혐의를 ‘세무조사 무마 로비’사건에 국한하고 있지만 천 회장이 이 대통령과 40년 지기로 현 정권 실세로 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 회장의 수사 불똥이 여권 핵심부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현재까지 박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여권 인사는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유일하다. 하지만 추 전 비서관이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정두언 의원 등 여권 실세들에게 전화 청탁을 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고, 이종찬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대책회의에 참석한 의혹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천 회장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여권 핵심부로 확전될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황이다.
검찰 수사 결과 국세청이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시작한 2008년 7월께 천 회장과 이종찬 전 수석,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은 국세청 세무조사가 검찰고발로 이어질 경우 정·관계 로비의혹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도 ‘박연차 대책회의’에 참석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세무조사 무마 청탁’ 사실은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천 회장이 대책회의에 참석한 지 한 달 후인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박 회장으로부터 한화 2000만 원 상당의 위안화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의 불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천 회장은 박 회장이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 자격으로 선수단과 응원단의 격려금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박 회장으로부터 단돈 10원도 받은 적 없다”고 했던 기존 입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천 회장은 또 베이징 만남 이후 9월 말쯤 박 회장에게서 10억 원을 건네받은 의혹도 받고 있다. 박 회장의 계좌에서 10억 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포착한 검찰이 이 돈을 추적한 결과 천 회장 계좌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회장과 천 회장의 수상한 돈 거래가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연계돼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천 회장을 상대로 의혹 규명에 총력전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주변에선 천 회장이 지난 대선 전인 2007년 8월 박연차 회장의 돈 10억 원을 이명박 후보 캠프에 건넨 의혹과 함께 특별 당비 30억 원을 대납한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천 회장의 자금 수십억 원이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캠프로 유입됐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천 회장이 17대 대선이 치러진 2007년에 자사(세중나모여행사) 보유주식 212만여 주(185억여 원 상당)를 집중적으로 매각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주변에서는 당시 천 회장 일가와 계열사가 주식을 처분해 현금화한 액수가 3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백억대 자사 주식 현금화 의혹이 증폭되자 천 회장은 직접 해명에 나섰다. 고려대 교우회장인 천 회장은 5월 5일 서울 안암동 캠퍼스에서 열린 고려대 개교 104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에게 “300억 원의 주식을 판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공시 보면 다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기자들이 무지해서 그런지 고의로 그러는지 모르겠다. 당시 주식매각 대금을 현금화한 적이 없다”며 “법인 것은 법인계좌로, 계좌에서 계좌로 입금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천 회장의 주식매각 대금 중 일부가 당시 이명박 후보의 특별당비(30억 원) 대출 담보로 이용됐다는 사실도 석연치 않다. 수백억 대 재산가인 이 대통령이 자신의 건물을 담보로 특별당비를 낼 수 있었음에도 왜 ‘예금-근저당 설정-예금담보대출’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특별당비를 마련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야권 일각에서는 2007년 대선 때 천 회장의 돈 수십억 원이 이명박 캠프로 유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천 회장은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의 막후 후원자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대선 당시 천 회장의 역할론과 맞물려 주식매각 대금 등 수상한 자금이 이명박 캠프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포착될 경우 천 회장 개인비리를 넘어 대선자금 수사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천 회장 관련 의혹에 대해 “박 회장과 관련된 부분만 수사 대상이고 대선자금 관련 의혹은 대상이 아니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수사 추이에 따라 수사방향이 바뀔 가능성은 열려 있는 상태다.
실제로 민주당은 천 회장을 ‘여권 비리 몸통’으로 지목하고 전 방위적인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민주당 내 ‘천신일 의혹 진상조사특위’는 5월 7일 천 회장에 대한 3대 의혹을 제기하는 등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천 회장이 2007년 대선 경선 전후부터 대선 직전까지 세중나모 주식을 팔아 306억 원을 왜 조성하고 어디에 썼는지 △주식을 파는 과정에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관여하지 않았는지 △천 회장이 이 대통령에게 빌려준 특별당비 30억 원의 출처는 어디인지 등 핵심 의혹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독려하고 있다.
진상조사위 공동간사인 최재성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천 회장의 주식 매각은 공교롭게도 대통령과 고대 선후배 사이인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과 윤은기 고대교우회 부회장이 2007년 3월 27일 세중나모 여행사의 사외이사로 취임한 직후인 4월 2일부터 진행됐다”며 주식 매각 과정 및 배경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최 의원은 또 “이 사건은 애당초 ‘박연차 게이트’가 아니라 ‘천신일 게이트’”라며 “3대 의혹을 대검에서 직접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 회장을 겨냥한 검찰의 사정 드라이브가 ‘천신일 게이트’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특히 검찰 수사 과정에서 2007년 대선자금과 관련한 X파일이 드러날 경우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검찰이 과연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거침없는 사정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까. 청와대와 여권 주변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