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의사가 홈피·블로그·카페에 프로필 허위 기재…고발당하자 바로 수정
키 키우기 수술의 국내 손꼽히는 전문의가 최근 한 정형외과 개업의가 자신의 학력과 사례를 사칭해 환자를 받고 있다며 검찰에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사진은 해당 기사의 내용과 상관없는 이미지컷. 사진=이종현 기자
국내 유수의 A 대학병원 정형외과에 근무하며, 하지연장 및 변형교정 분야(속칭 키 키우기 수술)에서 손꼽히는 전문의로 알려진 L 교수. 그런데 L 교수가 지난 4월 개업의인 J 원장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피고발인인 J 원장은 경기도 지역에서 정형외과병원 관절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사건은 지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J 원장이 L 교수에게 3년여 만에 찾아왔다. 두 사람은 인연이 있었다. L 교수가 과거 B 종합병원에서 정형외과 부교수로 근무할 당시 J 원장은 그 병원에서 정형외과 전공의 및 전임의 과정을 수료하고 있었다. 한 병원에 몸담았던 선후배 사이인 셈이다.
J 원장이 선배인 L 교수를 찾은 이유는 한 달 후 정형외과 병원을 개업하는데, 그 전에 L 교수의 키 키우기 수술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L 교수는 흔쾌히 요청을 수락했다. J 원장은 L 교수가 집도하는 수술실에 몇 차례 들어와 참관하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초 L 교수는 주변 지인으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듣게 됐다. J 원장이 자신의 병원 홈페이지 및 네이버 블로그, 카페 등에 L 교수의 경력을 도용하고, 그의 업적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L 교수가 직접 해당 병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J 원장은 경력에 A 대학병원 관절경연구회 회원, A 대학병원 관절경센터 연수강사, A 대학병원 하지연장및변형교정센터 센터장, B 종합병원 하지연장및변형교정센터 전임의·외래교수, 대한하지연장·변형교정학회 정회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특히 J 원장은 A 대학병원에서 단 하루도 근무한 적이 없었다. 또한 확인 결과 A 대학병원 관절경연구회와 대한하지연장·변형교정학회 회원 명단에도 이름이 없었다. 따라서 J 원장이 자신의 경력을 과장했거나 L 교수의 경력을 도용해 기재한 셈이었다.
더 큰 문제는 J 원장의 도용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병원 개원 직후에도 광고에 사용한 사진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J 원장은 L 교수가 미국 병원 연수 시절 지도교수와 찍은 사진에서 그의 얼굴을 떼어내고 자신의 얼굴을 합성했다는 것. 당시에도 L 교수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J 원장에게 항의하자, 사과하고 사진을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J 원장은 자신의 병원 블로그나 카페 등에 “B 종합병원에서 5년여 시간 동안 많은 키 수술과 하지변형교정 수술을 경험해 왔다” “(B 종합병원의) 모든 팀과 장비들이 그대로 옮겨와 이곳(자신의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B 종합병원에서 시행된 수백여 케이스의 하지연장 수술 환자에서 단 한 명의 불유합도 없었다” 등의 글을 게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J 원장은 B 종합병원에서 하지연장 및 변형교정 수술을 시행한 적이 없었으며, 당시 이 병원에서 해당 수술을 시행했던 의사는 L 교수가 유일했다고 한다. 따라서 J 원장은 게시물들을 통해 L 교수의 수술 사례를 자신이 ‘직접’한 것처럼 묘사한 셈이다. 일반인들이 다분히 착각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 허위·과장 의료광고를 한 셈이다.
‘키수술’은 숙련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수술이다. 비숙련 의사들의 시장 진입으로 또 다른 부작용이 예견된다. 사진=위키미디어
J 원장은 허위 경력과 관련한 논란이 제기되자 현재 병원 홈페이지 및 네이버 블로그, 카페 등에 게시했던 문제가 된 부분을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L 교수 측은 “J 원장이 자신의 프로필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논란이 불거져도 경력을 수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J 원장 스스로도 처음의 프로필이 허위 혹은 과장됐음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라며 “이제와 조치를 취했다고 해서 지난 수년간 J 원장이 허위 경력으로 환자들을 호도해왔던 위법이 가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L 교수의 고발건에 대해 검찰은 최근 J 원장의 혐의를 인정해 벌금 200만 원 구약식 기소 처분을 내렸다. L 교수 측 변호인은 “결론적으로 검찰에서도 기소 의견을 냈다”며 “이제 J 원장이 검찰의 벌금형 기소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불복해 정식재판으로 갈지 정 원장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담당 보건소 관계자에 따르면 J 원장이 거짓광고 혐의에 대한 벌금형 형사처벌을 수용한다면, 통상 업무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L 교수는 이러한 문제가 키 크는 수술 전반에 확산되지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일명 키 수술은 수술이 잘못됐을 경우 뼈가 붙지 않는 불유합, 신경마비, 관절이 굳거나 뼈가 휘는 등 여러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발생하기 쉽다. 따라서 의사의 전문성과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다”며 “그런데 최근 성형외과 분야는 포화상태에 이르고 미용 목적으로 키 수술을 받는 환자가 늘어나자, 돈을 벌려고 하는 의사들이 이 분야로 많이 뛰어들고 있다. 문제는 이들 중 키 수술 전문성을 가진 의사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J 원장처럼 자신의 경력을 허위 혹은 과장해서 환자들을 현혹시키는 의사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한편, J 원장 측은 고발 건에 대해 “변호사와 논의 중이다. 따로 할 말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