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끝났다 ‘전투’ 모드 돌입
▲ 뜨거운 이별 지난 2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간이 분향소가 마련된 덕수궁 앞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민주당 등 야권은 검찰 책임론 및 정치적 타살 논란을 쟁점화시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를 겨냥한 대대적인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과 여권은 당분간 정쟁을 자제하고 들끓고 있는 민심을 수습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분위기다. 당장 6월 임시국회는 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고 노 전 대통령 서거 후폭풍이 10월 재보선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대권지형에도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은 추모객만 100만 명이 넘었고, 전국에 설치된 분향소에도 500만여 명의 추모객이 몰렸다는 점에 미뤄 성난 민심이 ‘제2의 촛불집회’로 옮겨 붙을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그동안 억눌렸던 민심이 분출될 경우 ‘추모 집회’를 넘어 ‘정권 퇴진’ 운동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그야말로 ‘시계 제로’ 정국으로 몰아넣고 있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폭풍 속으로 들어가 봤다.
5월 23일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7일간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됐던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와 전국 분향소에는 추모객들로 장사진을 이뤘고, 29일 영결식과 노제가 열린 서울 광화문과 서울광장-서울역 일대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한 추모 인파로 인산인해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영결식이 끝나고 6월 임시국회가 다가오면서 여의도 정치권은 또다시 서바이벌 전투 모드로 돌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이번 전쟁은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메가톤급 뇌관이 장착됐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국주도권 싸움을 넘어 자칫 ‘정권 퇴진’ 운동으로 확전될 수 있는 그야말로 핵전쟁을 방불케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야권은 검찰 책임론을 넘어 현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대대적인 대여 강경투쟁을 선포한 상태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5월 27일 “분명히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는데 책임지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며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문책론과 책임론을 공론화하는 등 대여 총공세를 예고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이날 청와대 누리집에 글을 올려 “민심을 잃은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마지막 책무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성난 민심을 강제로 진압하려 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현 정권의 정치보복적 살인행위”라고 규정하면서 이 대통령의 공개 사과 및 임채진 검찰총장을 비롯한 수사 핵심 라인의 책임론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영결식이 끝난 지난 주말 지도부 회의를 통해 서거 관련 책임소재 규명과 검찰의 과잉수사 논란을 파헤치기 위한 특검 및 국정조사 관철 문제를 논의하는 등 본격적인 대여 총공세 모드로 전환한 상태다.
진보 정당도 대여 강경 투쟁에 적극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영결식 하루 전인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 악법’과 부자·재벌 퍼주기 정책을 포기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이젠 반성의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특검 실시와 정치검찰에 대한 쇄신 등 총체적인 국정 쇄신책을 주문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추도의 마음이나 애도의 예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정권 앞에서 또다시 국민들과 함께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뒤 이 대통령의 진심어린 공개 사과와 내각 총사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 규명을 위한 특검 실시와 책임자 처벌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야권의 대여 강경투쟁 노선에 여권은 전면전은 자제한다는 방침이지만 장례기간을 통해 드러난 수백만 추모 인파와 성난 민심으로 인해 자칫 ‘제2의 촛불정국’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분위기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장례기간 내내 말을 아끼며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했으나 영결식 후 불어닥칠 후폭풍을 경계하며 여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강압 수사가 그를 자살로 몰고 갔다는 ‘정치적 타살’ 논란과 맞물려 장례 기간 동안 인내했던 성난 민심이 ‘반 정부’ ‘반 이명박’ 정서로 확전돼 대규모 추모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주변에서는 분노한 민심이 폭발할 경우 제2의 촛불집회를 넘어 ‘정권 퇴진’ 운동으로 비화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참교육학부모회 등 24개 시민사회단체는 5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즈음한 시민단체 및 각계인사 시국모임’을 결성하고 정부의 성찰과 국정쇄신 등 각종 개혁을 강력하게 촉구하기로 했다. 시국모임은 이날 선언문을 통해 “현 정부의 검찰과 경찰, 정보기관을 동원한 정치적 보복과 반대세력 압박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며 “정부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국정운영방식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혁 대상에는 정부 권력은 물론 검찰권력과 언론권력도 포함돼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그간 억눌렸던 민심이 전국적 추모 열기로 이어졌고, 영결식 이후에는 국민운동으로 폭발할 조짐마저 감지되고 있는 형국이다.
시국모임은 6월 2일 또다시 모임을 개최해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쇄신과 국민통합 방안에 대해 논의를 계속한다는 방침이어서 파문 확산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전 국민을 상대로 펼치고 있는 민주주의 말살과 반민생 정치를 즉각 중단하고, 기존 정책을 전면 전환할 것”을 요구하면서 “국민장 이후에도 노동자와 서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책기조를 유지할 경우 30일 이후 대규모 대정부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분출된 억눌린 민심과 전국적 추모 열기가 한시적 열풍에 그치지 않고 한동안 지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정황들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태를 불러온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 등을 통해 분노한 민심을 추스를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정략적으로 접근할 경우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 전체가 여론의 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책임론 중심에 선 여권이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바닥 민심을 바탕으로 국민 통합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일방주의적 정책을 고수할 경우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위기상황을 자초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 정국으로 빠져들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고인의 유지와 정치적 메시지를 교훈 삼아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이끌어낼지 아니면 또다시 대립과 반목으로 국론 분열을 부추기게 될지, 국민적 이목이 여의도 정치권으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