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고2로 확대”-시 “예산 부담 가중” 이견 못좁혀…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
하지만 유력한 ‘돈주머니’인 광주시가 재정난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 무상급식 확대가 무산될 위기를 맞고 있다. 시교육청 단독으로는 재정상 불가하며, 시의 소극적인 상황에 고교 전학년 무상급식의 꿈이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그간 ‘민주·인권·평화도시=광주’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애써온 광주시가 아이들의 보편적 교육복지를 외면하는 것은 자기 모순적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광역도시 중 최초로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도입한 시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다며 내년에는 최소한 1개 학년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교육청은 올해 자체 재원 280억 원을 투입해 전체 고교 3학년 1만 9000여 명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문제는 예산 부담이다. 정작 돈을 내놓아야 할 광주시는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곳간 사정이 어렵다는 게 이유다.
내년 고3 학년 무상급식에 필요한 총 예산은 314억 9000만 원이며 1개 학년을 추가할 경우 127억 8700만 원이 추가 소요된다는 게 교육청의 계산이다. 이 경우, 시가 교육청 요구(식품비의 70%)를 수용해 부담할 금액은 66억 원이고, 한 학년씩 확대될수록 2∼3배로 부담액은 증가한다.
광주시교육청 전경
시교육청은 고심 끝에 광주시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광주시와 광주시교육청은 지난달 31일 광주시청에서 장휘국 시교육감과 문태환 광주시의원, 황봉주 시 자치행정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17 광주시교육행정협의회를 열고 내년 고교 무상급식 단계적 시행과 사업비 분담비율 조정 등을 논의했다.
시교육청은 “고교 3학년 무상급식 만족도가 높은 데다 범위 확대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현재 광주지역 고교생들은 중학교까지 무상급식 수혜를 받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유상 급식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낀다”고 무상급식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두 기관은 고교 무상급식 확대 방안에 대해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며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1·2학년까지 혜택을 늘리자는 시교육청과 재정 형편상 중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광주시의 입장차가 팽팽히 맞선 것이다.
시교육청은 이날 내년도 고교 2·3학년 무상급식 예산(식품비·운영비·인건비) 중 식품비 70%에 해당하는 192억 원(고2 126억 원·고3 66억 원)을 지원해 달라고 시에 요청했다. 이 예산엔 올해 첫 시행한 고3 급식비(식품비 70%)에 더해 내년부터 확대·시행하려던 고2 급식비(〃)가 포함돼 있다. 현재 무상급식 재원은 시교육청이 운영비·인건비(100%)와 식품비(30%)를, 광주시와 각 구는 식품비의 70%를 각각 분담하는 구조다.
하지만 광주시는 예산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고교 무상급식 확대나 예산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준비와 ‘지하철 2호선 건설’ 예산 부담 등이 크다면서 시교육청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 코가 석자’라는 것이다. 이에 시교육청은 한 발짝 물러나 내년부터 고2까지 무상급식을 시행하기로 하되, 고2 식품비 126억 원 중 절반인 66억 원에 한해서만 추가 예산지원을 해줄 것을 제시했으나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고교 무상급식 확대계획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해석도 나온다.
광주시는 이날 협의회에 앞서 10월 24일 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시와 자치구 재정 여건상 고교 무상급식 확대는 어렵다. 정부정책 추이에 따라 중·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광주시는 “무상급식이 장휘국 교육감 공약으로 추진되는 점을 감안해 교육청 자체 부담으로 추진해야 하고, 문재인 정부가 2020년까지 고교 무상교육 정책을 내건 만큼 이에 맞춰 중장기적 계획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광주시청사
시는 특히 향후 교육행정협의회시 해당 안건이 협의됐다고 하더라도 구비부담(지원) 등 각 자치구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단서도 달았다. 각 구는 시가 부담하는 식품비 70% 중 8.4%를 분담하고 있는데, 각 구가 관련 예산 지원에 동의하지 않으면 광주시 역시 지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주시가 자신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자치구 핑계를 대면서 예산지원 거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자치구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고교 전학년 무상급식 논의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지역 교육계가 나섰다. 학부모와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선 무상급식 예산지원 거부와 관련, 광주시가 경제논리와 정쟁보다는 학생들을 위한 보편적 교육복지 실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광주교육희망네트워크,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 등은 최근 광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교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 확대를 원하는 시민들의 요구이자 시대적 요구”라며 “윤장현 시장은 대내외적 행사나 토건사업보다 우선시돼야 하는 무상급식에 예산 지원을 주저말라”고 촉구했다.
민중당 광주시당도 지난달 30일 광주시의회 3층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상급식 확대는 예산 부족 문제가 아니라 정책 시행 의지의 문제”라며 “시와 교육청은 더 이상 핑퐁게임을 하지 말고 합리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의 고교 무상급식 추진과정에 대해 정치권의 쓴소리도 나온다. 김민종 광주시의회 국민의당 대표의원은 1일 광주시의회 정례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광주시교육청이 장휘국 교육감의 공약이행을 위해 재원대책도 없이 일방적이고 조급하게 무상급식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교 무상급식에 찬성하지만 과정 또한 결과 못지 않게 중요하다”며 “자체 재원조달 방안이 없는 무리한 추진은 보는 시각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를 볼모로 예산 지원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철저한 계획이 없는 밀어붙이기식 행정은 자칫 포퓰리즘으로 치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송길화 전 광주광역시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부모의 소득수준과 상관없는 무조건적인 무상급식은 꼭 필요한 다른 부문의 재정을 잠식하게 된다”며 “실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 자녀에게도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면서 다른 부문 예산은 잠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전 회장은 “장휘국 교육감은 무상급식이 득보다 실이 많은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시교육청이 발표한 내년도 고2·고3 무상급식 전체예산은 모두 443억 원이다. 이는 올해 고3 학생 대상 무상급식 예산 314억 원보다 129억 원 증가한 금액이다. 자치단체 지원 예산은 고 3학년의 경우 66억 7700만 원, 1개 학년을 추가하면 126억 1600만 원이 들어간다.
조현중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