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이 수령 후계자는 나도 아우도 아닙네다”
▲ 김정남은 지난 가을 중국 외교부 고위 간부들과의 만남에서 입단속을 당부하며 김정일의 건강상태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 ||
지난 가을 김정남(37)은 베이징의 한 고급 호텔에서 중국 외교부 고위 간부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정남은 “언제나 관대한 중국 정부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하고 있다”고 운을 뗀 후 “오늘은 우리나라(북한)와 아버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겠다.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정남은 맨 처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상태부터 언급했다. “이미 다 알려진 바와 같이 아버지가 지난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처음 아버지를 문병 갔을 때 아무리 위풍당당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끝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상의 아버지는 좌반신이 마비되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명의들이 와준 덕분에 많이 회복됐다.”
이와 관련, 북한 지도층에 독자적인 연줄이 있으며 20년 이상 북한을 취재해온 재일 저널리스트 유재순 씨도 “김정일은 일시적으로 평양 시내의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그 후 의료 설비가 완비된 한 초대소로 이송됐다. (언어능력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은 무리지만 서서히 회화능력을 회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버지의 건강 상태에 대해 설명한 김정남은 중국 측에 아버지의 빠른 회복을 위해 중국 최고의 한약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 간부들의 사무실과 자택이 있는 특별지구)’의 유명한 한방 약국을 통해 옛날 중국 황제들이 복용했다는 최고급 한약을 북한 대사관에 보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후 중국 외교부의 한 간부가 조심스럽게 후계자 문제에 대해 묻자 김정남은 “아버지의 후계자는 없다”는 충격적인 대답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여배우 고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정남 외에도 재일교포 무희 출신인 고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차남 정철(27)과 삼남 정운(25)을 두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간에는 이들 사이에서 불꽃 튀는 후계자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정남은 “나는 보다시피 주로 해외에 거점을 두고 생활하고 있어 북한 내에 기반이 없다. 난 해외를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눈과 귀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동생인 정철과 정운도 후계자가 될 가능성은 없다. 만일의 상황이 생기면 북한은 아버지 측근들에 의한 집단지도체제로 바뀔 것이다. 그 편이 북한의 장래를 위해서도 낫다고 본다. 북한도 빨리 중국처럼 개혁, 개방하여 발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재순 씨도 “김정일은 장남인 정남이 중국이나 프랑스까지 가서 의사와 약을 구해오는 것에 대해 대단히 고맙게 느끼고 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여동생인 김경희 당경공업부장과 그 남편인 장성택 당행정부장 부부가 거의 매일 문병을 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정일은 ‘역시 가족들뿐’이라며 감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후계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고 말해 아직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았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최근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는 일본 내 북한 전문가 시게무라 도시미쓰 교수의 주장을 인용해 ‘정남, 정철이 아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아들이 후계자로 부각하고 있다’고 보도해 주목을 끈 바 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알려지지 않은 아들’은 현재 30대로 군부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그가 군부의 지지를 얻을 경우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나도 정철도 정운도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고백했다는 김정남의 입장과도 접점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후계와 관련한 온갖 추측과 정보 중에 어떤 것이 사실로 드러날지는 좀더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될 듯하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