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치는 고스톱? 검찰-청와대 이상기류…조국 민정수석 타깃설 주목
전병헌 정무수석. 박은숙 기자
“전혀 알지 못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기자와 만난 청와대의 한 고위 인사는 전병헌 정무수석 얘기를 꺼내자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라고 묻자 “조국 민정수석조차도 몰랐다고 하는데 어찌 알았겠느냐”라며 “지난 정권과는 달리 우리는 검찰 수사를 보고받지도 않고 관여하지도 않는다. 검찰이 정권 눈치를 보지 않고 중립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여권 인사들은 검찰에 거센 불만을 쏟아냈다. 한 친문 의원은 “청와대 정무수석이 연루된 사건이다. 청와대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 검찰과 청와대 간 연결라인이 있었을 텐데 이를 배제한 것을 보면 작정하고 항명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을 확실히 통제했던 지난 정권 같았으면 이랬겠느냐. 참여 정부 때도 (검찰을 믿었다가) 이런 식으로 당했다”고 덧붙였다.
여권 내에선 검찰이 전 수석 이름을 일부러 흘렸다는 의구심도 지우지 못한다. 전 수석 보좌진 비리가 알려지자 언론에선 검찰 수사 칼날이 전 수석을 향할 것이라고 점쳤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전 수석이 마치 몸통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 소스는 검찰발이다. 아직 전 수석 연루 의혹이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마치 뭔가가 있는 것처럼 흘린다. 검찰의 저의가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논두렁 시계와 다르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수석의 충격파가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문재인의 남자’로 불리는 탁현민 선임행정관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대선 기간인 5월 6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프리허그’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2012년 대선 로고송을 송출한 혐의다. 비교적 가벼운 사안이긴 하지만 ‘탁현민’이라는 이름의 무게감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탁 행정관은 여성차별 발언 등으로 여권 내에서도 사퇴 압박을 받았지만 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아래 청와대 각종 행사를 기획하는 인물이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겨누자 이를 두고 정치권과 사정당국에선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적폐청산에 대한 회의적 여론, 검찰과 야당 반발 등을 무마하고자 여권 인사를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게 골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본격적 수사를 앞두고 ‘물 타기용’이라는 추측도 퍼졌다. 여권 주변에선 친문 진영 내부의 파워게임이라는 얘기도 돌았다. 청와대 주류 세력인 386 인사들이 전 수석을 밀어내기 위해 검찰 수사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은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앞서의 청와대 고위 인사는 “현직 청와대 수석, 그것도 정무수석은 대통령을 가장 자주 접촉하는 참모 중 하나다. 정치적인 시나리오가 작용할 여지가 없다. 그러기엔 너무 큰 모험이다. 탁현민의 경우 행정관급이긴 하지만 여러 구설을 무릅쓰고 우리가 안고 가던 인물이었다. 이번에 또 도마에 오르면서 그 부담은 결국 고스란히 문 대통령이 지게 됐다”면서 “우리 입장에선 지금 상당히 난처하고 뼈아픈 상황인데 이를 의도적으로 만들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친문 진영에선 검찰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윤석열 검사의 서울중앙지검장 발탁으로 대표되는 파격 인사,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검찰 내부 갈등, 그리고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추진 등이 쌓여 현 정권에 대한 반발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자 검찰이 집단 항명에 가까운 스탠스를 취했던 것을 다시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평검사와의 대화’를 열어 검찰 내부 이야기를 청취하기도 했다.
특히 청와대는 검찰이 조국 민정수석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가 서초동 주변에서 돌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전병헌 수석의 혐의는 2015년 때의 일이다. 민정수석이 사전에 이를 제대로 인지했는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애초에 알았더라면 수석으로 발탁해서는 안 됐다. 탁현민 행정관은 발탁 당시부터 검증 소홀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이들이 도마에 오르면 자연스레 조국 책임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조 수석에 대한 검찰 비토 기류는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비검찰 출신 조 수석이 민정수석을 맡아 검찰개혁 선봉장에 설 때부터 검사들 사이에선 원성이 자자했다. 여권 내에서조차 “청와대와 검찰 간 호흡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개혁에 방점을 찍고 조 수석에게 힘을 실어줬다. 청와대가 전 수석 건을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법조계에선 “조 수석이 검찰 출신이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상당수 검사들이 청와대 하명에 따른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적폐청산 컨트롤타워격인 조 수석을 향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정원 정치개입 수사 도중 변창훈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악화됐다. 한 특수통 검사는 “지금처럼 흉흉한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몇몇 검사들이 마치 점령군처럼 정권 하명을 받아 수사를 밀어붙이고 있다. 문무일 총장은 ‘허수아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그 어느 때보다 검찰이 정치화됐다”고 꼬집었다.
속사정을 보다 자세히 듣기 위해 여러 검사들과 검찰 관계자를 접촉해보니 비슷한 목소리가 들렸다. “검찰의 자업자득”이라며 자조적인 말로 입을 연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인사는 “과거에 우리가 잘못한 게 많다. 그런데 이번 정권은 뭐가 다르냐. 여권에 줄을 대려는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하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적폐로 몰려 쫓겨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검사 역시 “우린 공무원이다. 솔직히 말하면 부당한 지시라도 때론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런데 무조건 우리한테 책임을 지라는 건 너무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면서 “지금 정권과 코드가 맞는 검사들도 향후엔 부메랑을 맞을지 어떻게 아느냐”라고 반문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들은 검찰의 이러한 분위기가 어디로 흐를지 지켜보며 향후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여기서 밀려선 안 된다”는 말들이 곳곳에서 들린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 비해 다소 입지가 좁다고 평가 받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제 목소리를 낼 경우 청와대와 검찰 간 마찰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뒤를 따른다. 검찰 내부에선 문 총장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많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검찰 불만이 많은 것은 잘 알고 있다. 수사권 조정 등 본격적인 개혁을 앞두고 그 저항은 보다 거세질 것으로 생각된다. 검찰이 전병헌 수석 사건 등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후퇴하지 않고 보다 신속하고 과감하게 (검찰 개혁을) 밀어붙일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검찰과의 갈등설에 대해 선을 긋고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