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에 형 잃어 ‘슬픈 가족사’…의장대 퍼레이드 ‘감탄’ 사물놀이 가락에 ‘덩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 이틀째인 8일 국회를 찾아 연설을 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1993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후 24년 만이다. 국회사진취재단
# 만찬주 대신 콜라로 건배
11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기자회견. 미국 <CBS> 마이크렛 버넛 기자가 첫 질문자로 나섰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버넛 기자)
“어떤 대통령인가요?”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의 입술이 움직이면서 이 말이 나오자 좌중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있고, 나도 있는데 누구한테 묻는 것이냐”는 트럼프의 역질문이었지만 듣는 이들에게는 트럼프다운 유머로 받아들여졌다. 트럼프는 긴장된 기자회견장 분위기를 이런 식으로 부드럽게 풀어냈다.
7일 저녁 청와대에서 있었던 국빈 만찬장에서는 트럼프의 흥(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날 사물놀이 가락 리듬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연주된 ‘비나리’ 공연 중 김정숙 여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을 건넸다. “사물놀이는 악귀를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내외께서 남아 있는 긴 아시아 순방 일정을 잘 마무리하시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선곡했습니다.” 선곡 배경에 대한 김 여사의 설명이었다.
김 여사 얘기를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감사를 나타냈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측 수행원 대다수가 사물놀이 가락에 몸을 맡기며 흥겨워했다. 공연을 마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손을 높이 들어 박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KBS> 교향악단이 국빈만찬장에서 마지막 연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메들리’를 끝내자 좌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힘차게 기립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는 7일 오후 청와대 인근에 도착했을 당시 전통 의장대를 보고서도 큰 감명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광장에서부터 청와대 본관 대정원까지 70여 명의 장병들로 구성된 취타대와 전통 의장대의 호위를 받은 식전 퍼레이드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는 것이 청와대의 귀띔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장대에 대한 얘기를 여러 차례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정상회담, 상춘재에서의 차담 때 “아름다웠다.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수차례 표현했다고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밝혔다. 멜라니아 여사도 김정숙 여사와의 본관 환담 자리에서 환영식에서 느낀 깊은 감동을 이야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스처의 달인이기도 했다. 그가 지난 8일 국회에서 35분간 연설하는 동안 여야 의원들은 22번의 박수를 쳤다. 연설이 끝났을 때 의원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고 일부는 함성까지 외쳤다. 의원들의 반응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화답했다. 연설 도중 의원석을 향해 손짓과 함께 박수를 치며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자신이 생각해서 중요하다고 보는 대목에서는 엄지와 검지를 맞대며 ‘OK’라는 표시를 하기도 했다. ‘엄지 척’을 비롯한 그의 여러 손동작은 ‘트럼프 스타일’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트럼프 대통령 식성은 까다롭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방한하자마자 경기도 평택의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 문재인 대통령 및 기지 내 장병들과 함께 사병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는 “좋은 음식이다”라고 얘기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이날 오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 바로 옆이 아닌 한국군 병사 1명을 사이에 두고 문 대통령과 나란히 앉았다. 이 과정에서 두 정상의 사이에 끼인 병사 사진이 SNS에 유포되면서 “이 병사, 밥이 넘어가겠니?”라는 댓글과 함께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식성은 까다롭지 않았지만 음료에 대해서는 꽤 가리는 편이었다. 7일 청와대 국빈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검은색 음료가 든 잔을 갖고 있었다. 잔속에 든 음료의 정체는 콜라였다. 청와대는 국빈 만찬에서 건배 제의에 사용할 공식 만찬주를 준비했다. 만찬주는 쌀로 빚은 청주인 ‘풍정사계(楓井四季) 춘(春)’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주를 자신의 잔에 따르지 않았다. 자신이 평소 즐겨 마시는 콜라를 담아 국빈 만찬에서 건배주 대신 사용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찬주를 고사한 이유는 가족사 때문이었다. 그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사망한 친형의 영향으로 건강관리를 위해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콜라를 즐겨 마시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하는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는 빨간 버튼이 있는데 용도는 ‘콜라 콜’이다.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에 따르면, 이 빨간 버튼은 콜라를 즐겨 마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콜라를 마시고 싶을 때 비서를 부르기 위해 사용하는 용도로 제작됐다.
# 패션 아이콘 멜라니아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게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에 대한 관심도 컸다.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여사는 키 180㎝의 전직 슈퍼 모델답게 ‘패션’으로 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멜라니아 여사는 1박 2일간의 방문 기간 중 모두 세 벌의 옷을 보여줬다. 7일 도착 당시엔 포니테일을 연출한 헤어스타일과 짙은 색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이날 입은 와인색 코트는 스페인 브랜드인 델포조(Delpozo)의 400만 원대 제품이며 구두는 프랑스 브랜드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스틸레토 힐 제품으로 알려졌다. 파란색 구두의 밑창은 빨간색으로 독특한 느낌을 줬다.
7일 저녁 만찬 때에는 푸른색과 검정색이 혼합된 제이 멘델 드레스를 입었다. 그가 입은 드레스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제이 멘델(J.Mendel)이 ‘2017 가을 컬렉션’에 선보인 의상이다. 1000만 원대를 호가하는 제이 멘델의 드레스는 국내 배우 손예진 최지우 김아중 등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시상식 드레스로 유명하다. 멜라니아는 공식 주요 행사에서 자수가 놓인 화려한 드레스를 많이 입었는데 이날도 같은 패션이었다.
8일 오전 국회 연설 및 현충원 방문 일정에서는 단정한 느낌이 들어간 검정 클래식 롱코트와 바지를 선보였다. 연설 뒤 이어질 현충원 조문 행사를 생각한 패션이었다. 평소 바지 정장을 잘 입지 않는 멜라니아 여사였기에 바지 차림을 눈여겨보는 여성들이 많았다. 바지 정장이었지만 멜라니아는 특유의 패션 감각을 유지했다. 허리를 강조하는 큼지막한 벨트와, 세련된 와이드 팬츠 스타일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굵은 허리 벨트는 단조로운 검은색 정장에 포인트를 줬다는 것이 패션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1970년생으로 올해 만 47세인 멜라니아 여사는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16세부터 모델로 활동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거쳐 1996년 미국으로 옮겨 모델 이력을 이어가다가 1998년 뉴욕의 한 파티에서 트럼프를 만나 2005년 그의 세 번째 부인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유명세를 타면서 자주 언론에 얼굴을 내미는 것과는 달리 멜라니아 여사는 공식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트럼프의 해외 순방에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펼치거나 나서지 않은 채 트럼프 대통령 곁을 지키며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 내조만 한다는 것이 멜라니아 여사를 보는 대체적 시각이었다.
말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의 패션은 이미 전세계적 주목 대상이 됐다. 멜라니아 여사는 지난 5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카타니아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담에서 이탈리아 브랜드인 돌체 앤 가바나의 꽃무늬 재킷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브랜드인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빨간색 모직 치마 정장을 각각 입었다. 벨기에 방문 때는 벨기에 디자이너 울렌스의 가죽 소재 벨트 정장을, 독일에선 독일의 대표적인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의 의상을 선택하는 등 방문국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미국에 대한 호감을 심어주는 ‘패션 행보’를 보여 왔다.
# 움직이는 백악관, 이동수단도 화제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선보였던 이동수단은 세계 최강 미국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것들이었다.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비롯해 대통령 전용헬기인 ‘마린원’과 ‘비스트(야수)’라는 별명이 붙은 전용차량 ‘캐딜락원’이 그의 방한 기간 중 함께 왔다.
‘하늘의 백악관’ 에어포스원은 보잉 747-200B 여객기를 개조한 것으로 3층 구조의 점보 여객기다. 내부 면적은 370㎡다. 회의실과 침실, 샤워시설을 비롯해 수술이 가능한 의료시설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2개의 조리시설에서 동시에 50인분의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등 공중 급유를 받으면서 한 달 동안 하늘 위에 떠있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전쟁이나 테러 위협 때 대통령의 지상 근무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에어포스원을 타고 하늘에서 비상작전을 지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택 미군기지에서 서울 용산 기지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실어 나른 ‘마린원’은 기체 길이가 약 22m에 이르는 대형 헬기로 최대속도는 시속 240㎞에 달한다. 엔진 3대를 탑재, 일부 엔진에 결함이 생기거나 적의 공격으로 일부 엔진이 부서져도 비행에 지장이 없다. 대공미사일 경보시스템에다 대탄도탄 방어체계도 갖췄다. 헬기 내에서 백악관이나 미 국방부와의 비화 통신도 가능하다. 내부 방음장치가 잘 돼 있어 헬멧을 쓰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외국에 갈 때는 마린원의 프로펠러와 동체 일부를 분해한 뒤 대형 수송기로 이송한 다음 다시 조립해 현지에서 운행한다.
청와대로 들어올 때 트럼프 대통령이 탄 캐딜락원은 야수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가격은 150만 달러(약 17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탄도 무기나 급조폭발물(IED), 화학무기 공격을 견딜 수 있도록 중무장돼 있으며 긴급 의료 장치까지 갖추고 있다. 13㎝ 두께의 방탄유리를 달아 웬만한 총격에도 견딜 수 있고 펑크가 나도 달릴 수 있는 특수 타이어가 장착돼 있다. 이 차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 쓰던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새 차가 개발 중이다. GM이 만들어 내년 중 인도될 것으로 보이고 제작비만 1580만 달러(약 176억 원)가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