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만들어주고 억대 금품 수수’ 증언…“놀고 있는 아들 이리 보내라” 기업들 로비 차원 채용도
문재인 정부는 채용비리와 관련해 여러 사례들을 자체적으로 확보, 또는 제보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공공기관과 금융권이 주 타깃이지만 사기업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여기엔 정치권 인사들 이름이 올라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가 ‘채용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여의도에 긴장감이 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요신문>이 그 사례들을 공개한다.
국회 의사당 전경. 박은숙 기자
국내 굴지의 한 대기업엔 유독 정치권 인사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야 전·현직 의원은 물론 보좌관과 전문위원 등의 아들딸들이 취업을 했고, 지금도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놓고 기업 내부에선 정치인 자제들에 대한 특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 대기업의 한 임원은 “입사한 (정치인 자제) 직원들 대부분이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소문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여기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기업이 정치권에 대한 ‘로비’ 또는 ‘관리’ 차원에서 정치권 자제들을 채용했다는 정황들이 포착된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여야 의원들은 MB 정권 시절 그 기업이 공공연하게 특혜 채용을 제안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후엔 정치권에서 먼저 채용을 부탁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 사례를 수집한 결과 현역 의원들 및 국회 관계자 자녀들 일부가 지금도 근무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 야권 의원은 “MB 정권이 들어선 후 주로 여당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채용 민원을 해결해준 것으로 안다. 또 정무위나 산자위 등 기업 관련 상임위 인사들도 챙겨줬다. 지금은 여당이 된 민주당 쪽도 있다. 몇몇은 그 대기업에 먼저 채용 청탁을 했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 역시 “솔직히 말하면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에 의원 입장에선 얼마나 고맙겠느냐. 또 돈을 받고 접대를 받는 것보단 탈이 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사기업 채용이니 법적으로 문제 삼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사례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전직 의원이 동료 정치인 및 지인들을 상대로 ‘취업 브로커’에 가까운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정권 땐 친박 실세와 가깝다는 얘기까지 돌면서 더욱 상종가를 쳤다. 국회에서 ‘마당발’로 알려진 그는 선거 공천에 실패한 후 자신의 학맥 및 지연을 활용, 공공기관과 금융권·사기업 등에 자리를 만들어줬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대가로 억대의 금품이 건네졌다는 증언도 나온다.
실제 이 전직 의원을 거쳐 조카를 한 금융권에 취업시켰다는 한 보좌관을 어렵게 만나 구체적인 상황을 전해 들었다. 그는 “2014년경 주변 얘기를 듣고 부탁을 했다. 조카 이력서 등을 가지고 오라고 하더라. 서류를 본 뒤 한 금융권에 채용을 주선해주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설마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고, 취업이 됐다. 돈을 요구하진 않았지만 채용에 제법 많은 돈이 들어갔다고 하더라. 어떻게 모른 체하나. 그래서 사례비를 건넸다”라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공식석상에선 여전히 전직 의원 행세를 하고 다녔지만 사실상 브로커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 나도 떳떳하지 못하지만 씁쓸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인사 아들의 채용을 둘러싸고 실세들 간 파워게임도 벌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정권 초반이던 2013년 연말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한 공기업이 공채를 실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도 활동했던 한 정치권 인사가 자신의 아들 채용을 이 공기업에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이 공기업 감사가 강하게 반대해 취업이 무산됐다. 그 감사 역시 낙하산으로 임명된 자로 친박 의원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던 자였다.
그러자 채용을 부탁한 정치권 인사가 청와대에 근무하는 박 전 대통령 참모에게 이를 하소연했다. 이 참모는 2014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태 때 십상시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문고리 권력’이 한 수 위였던 것일까. 채용을 반대했던 감사는 2014년 초 청와대 감찰을 받았고, 얼마 뒤 사표를 냈다. 이 과정에서 그 감사는 자신과 친한 친박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채에 뽑히지 못했던 그 정치권 인사 아들은 특별 채용 형식으로 2014년 4월 공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채용을 놓고 여권 인사들 간에 다툼이 발생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MB 정권 때도 채용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일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 정치권 인사가 설립한 회사는 친이계 관계자 또는 그들의 자녀들만 채용했다. 이 회사는 MB 정권 시절 역점 과제 중 하나였던 자원외교를 주로 하는 업체였다. 정치권에선 이 회사 사무실이 사실상 ‘친이계 아지트’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회사 운영자금 등에 대해서도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이 회사를 방문했던 기자에게 회사 임원은 “선거에서 열심히 하고도 보상받지 못한 동지들을 위해 차린 회사다. 놀고 있는 자식들 있으면 이리로 보내라는 농담도 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정권은 문 대통령 임기 초부터 지난 9년간의 채용 비리에 대해 앞서 기사에서 언급됐던 내용들을 포함, 구체적인 사례들을 꾸준히 모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꽃놀이패’를 쥐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채용비리에 대해 메스를 들이댈 경우 적폐청산은 물론, 공직사회와 정재계 등이 모두 사정권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이유에서다. 한 민주당 의원은 “사법처리가 힘든 것들도 제법 있지만 도덕적 비난은 면하기 어려운 게 대부분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용한 히든카드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