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 문국현 대표(사진 왼쪽) 이재오 전 최고위원(사진 오른쪽) | ||
반면 항소심 재판부에서 문 대표에게 면죄부를 줄 경우 10월 재보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 전 최고의 정치재개 행보에 적잖은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전 최고 외에도 몇몇 야권 거물급이 서울 은평을 지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항소심 판결에 따라 10월 재·보궐선거 판세가 요동 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문 대표는 지난해 4·9 총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여권 2인자로 통했던 이 전 최고를 누르고 18대 총선 최대 이변을 연출한 바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국회에 입성한 문 대표였지만 그의 정치 행로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8개월여 동안 검찰 수사에 시달렸고, 1심 법원은 지난해 12월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의원직은 물론 정치생명마저 위협받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걸어온 셈이다.
문 대표의 위기는 이 전 최고에게 더 없는 호기로 작용했다. 지난해 총선 패배 후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 전 최고가 지난 3월 말 극비 귀국한 것도 문 대표 재판과 무관치 않았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렸다. 문 대표의 1심 판결을 접한 이 전 최고가 10월 재보선을 염두에 두고 조기 귀국을 선택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전 최고가 귀국하자 정치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항소심 재판부로 향했다. 항소심 재판 일정 및 판결 내용에 따라 두 사람의 정치 명운은 물론 재보선 판도가 크게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세 차례나 선고 공판을 연기하는 등 6개월 가까이 재판을 끌고 있어 두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당초 4월 23일로 잡혔던 문 대표의 항소심 선고 공판은 6월 4일과 6월 18일에 이어 또다시 6월 25일로 연기된 상태다. ‘공천 헌금’을 둘러싼 선거법 위반 여부를 놓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과 법원의 판결이 자주 엇갈리는 등 법리 적용에 따른 논란 증폭이 공판을 자주 연기할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대법원은 6월 11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은 이한정 전 창조한국당 의원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2심 법원으로 환송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에서 이 전 의원이 공천헌금으로 제공했다는 6억 원에 대해 공소장 변경 절차 없이 재산상 이익을 제공한 혐의가 적용된 것은 절차상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이 전 의원이 공천과 관련해 6억 원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음에도 항소심 재판부가 공소 외의 내용인 재산상 이익 제공 혐의에 대해 판단한 것은 절차상 위법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의원이 창조한국당에 지급한 6억 원을 금품 제공으로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의원이 당채 매입대금으로 6억 원을 지급한 것을 재산상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판단해 유죄를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전 의원의 6억 원 공천헌금 부분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 만큼 문 대표의 항소심 재판에도 적잖은 변수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의원으로부터 6억 원의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문 대표에게 공천헌금 수수 혐의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로 다급해진 검찰은 문 대표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 기일(6월 18일)을 이틀 앞둔 6월 16일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 및 공판 연기를 신청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반면 문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부터 줄곧 ‘표적·기획 수사’ 의혹을 제기해 온 창조한국당은 “은평을 재선거를 염두에 둔 표적수사가 성과 없이 마무리되게 되자 다급해진 정치검사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전대미문의 작태를 벌이고 있다”며 검찰을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로 새 국면을 맞고 있는 문 대표의 항소심 선고 공판 일정은 6월 25일로 예정돼 있다. 따라서 항소심 재판부의 이날 판결에 따라 문 대표와 이 전 최고의 정치적 명운이 극명하게 갈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을 경우 이 전 최고는 정계복귀 플랜을 급수정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직면할 수 있다. 지난 3월 말 귀국 후 호시탐탐 재기를 노려온 이 전 최고는 재보선을 통한 원내진입과 조기 전당대회가 개최될 경우 당 대표에 출마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표가 항소심에서 이길 경우 이 전 최고의 재보선을 통한 정계복귀 플랜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당내 쇄신파를 중심으로 제기됐던 조기 전대론도 무산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어 당 대표 출마 카드도 빛이 바래진 상황이다. 청와대와 친이계 일각에서는 이 전 최고의 정치 일선 복귀가 여의치 않을 경우 그를 청와대나 내각에 입각시켜 이상득 의원의 2선 후퇴로 구멍 난 친이계의 구심점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문 대표에 대해 유죄를 선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도 없다. 항소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판결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검찰이 공소장 변경 등을 통해 문 대표의 유죄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나 논리를 제시할 경우 재판부가 유죄를 판결할 가능성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판결할 경우 문 대표는 의원직 상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치생명에 적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또 문 대표가 실질적인 대주주인 창조한국당 또한 존립 자체가 흔들리면서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이 전 최고 입장에선 재보선을 통한 정치재기 플랜을 가동시킬 수 있는 더 없는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전 최고가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가뜩이나 ‘조문 정국’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데다 야권이 거물급을 출전시킬 경우 이 전 최고가 고전할 것이란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문 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하고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에서 10월 재보선이 실시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전 최고는 명예훼복과 함께 정치재기의 명분을 확보하는 정치적 호재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