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출시 만화도 떡하니…사법당국 뒷짐 왜?
마루마루 홈페이지 메인 화면 캡처.
지난 10월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광장 게시판에 “불법 만화 공유 사이트 마루마루의 폐쇄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마루마루는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된 만화와 정식으로 수입되지 못한 만화를 공유하는 사이트다”라며 “국내 만화 출판사들의 권리와 해외 만화 출판사와 작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마루마루 폐쇄 청원에 대한 추천인 수는 14일 오후 5시 현재 2만 5727명. 조두순 출소 금지(48만 8996명), 이명박 전 대통령 출국금지(8만 8180명) 등에 이어 추천인수 10위권 이내에 들 정도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추천인들은 “마루마루를 사용해 왔지만 청원자의 문제인식에 공감한다”, “정당하게 값을 지불하고 보는 만화가 더욱 재밌다”며 동의를 표했다.
그렇다면 마루마루의 정체는 뭘까. 마루마루에서는 <원피스> <더파이팅> 등 각종 일본 만화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마루마루 사이트는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아도 만화의 스캔본 이미지 형태로 유명 만화를 볼 수 있다. 마루마루가 저작권법 위반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까닭이다.
실제로 마루마루 게시판에서는 국내에서 단행본 형태로 출간된 수십 권의 만화책 목록을 볼 수 있다. 소미미디어에서 출판한 일본만화 <낙제기사의 영웅담>의 원저작자는 일본작가 미소라 리쿠다. 하지만 마루마루는 원저작권자와 출판사 동의 없이 <낙제기사의 영웅담>을 스캔본 형태로 전권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서 오세요 실력 지상주의 교실> 등 소미미디어가 판권계약을 맺고 출판한 다른 만화들도 마찬가지다. 소미미디어 관계자는 “일본 만화의 번역본들이 마구잡이로 올라가 있어 만화책 판매 부수에 영향이 크다. 일본의 원저작자들도 마루마루에 대해 알고 있다. 이들도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루마루엔 우리나라가 정식으로 수입하지 않은 만화도 있다. <나와 히어로와 마법소녀>는 2014년 11월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여우신부>도 올해 5월 일본에서 출간된 최신 만화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지만 마루마루는 이들 만화의 한글 번역본 전권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 고단샤의 만화잡지 ‘소년 매거진 엣지’ 연재작인 <서약의 프론트라인>도 국내 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만화지만 마루마루에선 볼 수 있다.
만화업계의 위기감은 상당하다. 만화 원본을 그대로 제공하기 때문에 만화업계의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만화출판협회 관계자는 “마루마루가 원저작권자의 만화 그림과 대사를 무단으로 사용해 창작만화계에 해를 끼치고 있다. 정식계약으로 판권을 사서 출판하는 게 아니라, 일본 만화를 자체적으로 번역해서 올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수수방관’ 중이다. 2015년 한국저작권위원회는 무단 번역한 만화가 담긴 201개 게시물에 대한 접속차단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처벌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마루마루에선 여전히 무단 번역 만화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2015년 이후에 접속차단 조치가 있었는지 파악을 못했다”고 답했다.
만화책 ‘서약의 프론트라인’ 스캔본 파일을 링크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마루마루 홈페이지 캡처.
실제 판례가 있긴 했다. 대법원은 2015년 3월, 만화 공유 사이트 ‘츄잉만화세상’ 운영자 박 아무개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박 씨는 우리나라 출판업체와 계약된 일본 만화인 <원피스>를 볼 수 있는 인터넷 링크를 모아 츄잉사이트에 게시했다. 대법원은 “인터넷에 무단으로 업로드된 만화나 영화 등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의 링크를 제공하는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며 박 씨의 저작권 방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츄잉판결’을 이유로 마루마루에 대한 처벌 조치를 주저하고 있는 까닭이다.
마루마루의 만화 공유 방식 역시 앞선 ‘츄잉만화세상’과 유사하다. 마루마루는 사이트에 직접 만화를 올리지 않는다. ‘와사비시럽’(wasabisyrup)’이라고 이름붙인 별도 사이트의 링크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만화를 제공한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출판사들이 공동대응해서 츄잉만화세상을 무력화시켰지만 2년 전에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좌절을 많이 했다. 마루마루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지만 답답한 부분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법률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임애리 변호사는 “츄잉만화는 일본사이트의 링크를 게시한 정도이지만 마루마루는 단순히 링크만 올린 것이 아니다”라며 “원본을 번역해 바로 올린 것은 저작권 침해가 분명하다. 링크 주소를 제공해 방송 콘텐츠를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임베디드 링크’ 형태와 유사하다. 마루마루 운영자는 물론 링크를 제공한 와사비시럽 운영 주체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강’의 구주와 변호사(겸 변리사)는 “츄잉과 마루마루는 동일한 방식의 사이트로 보인다. 저작권 침해요소가 다분하지만 마루마루 사이트 자체는 불법이라고 할 수 없다”라며 “소송을 제기하면 이기기가 쉽지 않다. 만화 원본을 제공하는 와사비시럽을 적발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문제의 마루마루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마루마루 측은 홈페이지 상단에 “Marumaru Community #64 Pademba Rd, Upper Waterloo Street, Freetown, Sierra Leone” 사무실 주소를 명시하고 있다. 마루마루의 사무실이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워털루 지역에 있다는 뜻이다. 이것 역시 사법당국이 수사를 주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앞서의 임 변호사는 “해외에 서버가 있다면 수사기관이 의지가 있어도 운영주체를 잡기 힘들다. 출판업계에서 민사소송을 하는 경우 주소가 해외에 있으면 송달은 물론 소송당사자를 재판 출석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라며 “승소했을 때도 국내 재산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형사 고소도 가능하지만 관할, 소환불응, 유죄 선고시 범죄인 인도 등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만화출판협회 관계자는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이 해외로 서버를 옮겨 다니면서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라며 “하지만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경찰도 추적이 어렵다는 입장이고, 정부 대응도 답답한 수준이다. 여러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마루마루 논란의 핵심은 법적·현실적 해결의 어려움, 정부당국의 소극적인 대처 속에서 만화 원본을 제공하는 사이트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남녀 나체 그대로…마루마루 선정성, 부적절 광고 문제도 심각 마루마루의 무분별한 ‘성인만화 노출’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마루마루에서는 특별한 가입·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성인 만화에 접근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나체가 그대로 드러나는 만화가 버젓이 공유되고 있지만 정부 당국은 ‘깜깜 무소식’이다. 청소년 유해매체물 지정 권한이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마루마루의 개별콘텐츠에 대한 시정이나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려면 위원회에서 심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심의위원이 임명되지 않아 위원회 구성이 안 된 상태다. 6월 달부터 업무를 못 보고 있다. 의결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광고를 둘러싼 논란도 심각하다. 마루마루에선 배너 형태로 노출된 대출·게임·상품판매 등 수많은 광고를 접할 수 있다. 조병권 한국만화저작권보호위원회 회장은 “조회수가 많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인터넷 광고들이 몰린다”라며 “불법 콘텐츠 공유를 통해 원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손을 놓고 있다. 문체부는 저작권 침해 사이트의 온라인 광고 수익을 차단할 수 있는 기관이지만 마루마루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체부 저작권 보호과 관계자는 “마루마루가 광고 차단 대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사이트를 항상 감시하면서 저작권법 위반 여부를 살필 수 없다. 권리자가 수사기관에 침해 여부에 대한 증거를 첨부하는 경우에 수사가 이뤄진다. 문체부 자체적으로 인지 수사를 할 만한 여력은 없다”고 답했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