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세운 도서관은 아이들 쉼터
마을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는 앨리스.
언젠가 우리 마을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도서관 현판을 보았습니다. 글로리 도서관. 그 표식이 없었다면 그냥 가정집으로 보여 지나쳤을 겁니다. 단층 건물에 마당도 좁습니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니 많은 책들이 빼곡하게 서가에 꽂혀 있습니다. 소설과 만화, 역사와 정치 등. 초등학교 아이들이 숙제를 하며 재잘대고 있습니다. 그 곁에서 선생님이 도와줍니다. 맞은편에선 중학생들이 수학문제를 푸는 중입니다. 한 부부가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방과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마을 청년들과 함께 인근 장미농장으로 나들이를 갔다.
마을 도서관에는 사서 앨리스가 있습니다. 책을 모아 도서관을 세운 여자입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교사입니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앨리스는 밝고 웃음이 많고 활기차서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게다가 도서관 뒤뜰엔 그녀 가족들이 사는 집이 맞붙어 언제나 도서관에 가면 그녀를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이리로 몰려와 책도 빌리고 친구들과 숙제도 합니다. 아이들의 쉼터입니다.
앨리스는 남편 떼잉과 도서관에서 방과후 교육을 한다.
앨리스 부부는 이곳이 고향입니다. 큰 도시로 나가 대학을 다니다 서로 만났습니다. 남편은 경제학, 앨리스는 중국어를 공부했지요. 고향에서 남편 떼잉은 큰 호텔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앨리스는 우연히도 매일 그 호텔 앞을 지나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매일 지나치며 보다가 사랑에 빠져 스무 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 얘기들을 나누다 제가 스모키의 팝송 ‘Living next door to Alice’(앨리스 옆집에 살며)를 얘기해줍니다. 그 노래는 앨리스 옆집에 사는 청년이 24년을 기다린 이야기입니다. 부부는 도시로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좀 보람된 일을 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택한 일이 도서관을 세우고, 마을 아이들이 방과후 공부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책 자체가 귀한 미얀마에서는 기부로는 한계가 있어 대도시로 책을 사러 다녔다.
시골에서 책을 모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얀마에선 책 자체가 귀하기 때문입니다. 기부에는 한계가 있어 책을 사러 대도시로 다녔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주 작은 도서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뜻있는 분들이 기부해 만든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기억이 납니다. 우린 이사할 때 책이 큰 짐입니다. 사실 머리맡에는 읽을 책 대여섯 권이면 충분한데, 방안 가득한 책들을 이고 지고 다닙니다. 기부하면 더 알찬 도서관이 됩니다.
아이들에게 가끔 시를 읽어주는 여자, 앨리스. 주말을 맞아 마을 청년들과 인근의 장미농장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저도 따라 나섭니다. 가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자신의 출신을 소개합니다. 버마족, 샨족, 카친족 등 다양합니다. 그러나 앨리스 얘길 듣고 다들 웃고 맙니다. 그녀는 자신의 혈통이 6개나 섞여 내려왔답니다. 어머니 쪽으로 영국계, 중국계, 네팔계, 버마족 그리고 아버지의 가문까지. 참 드문 경우입니다. 로즈 가든에는 장미가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수많은 색깔의 장미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이 마을 청년들과 장미밭에 서있는 앨리스.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녀는 이 마을에 피어나는 하얀 장미 한 송이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