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언어·풍습 빼닮아…학자들도 ‘깜놀’
라후족은 대나무로 만든 피리로 흥을 돋우며 부족 축제를 즐긴다.
라후족은 미얀마에 약 15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중국 윈난성에도 약 45만 명, 태국 북부 치앙마이 인근에도 약 10만 명이 삽니다. 산악에 집을 짓고 화전을 일구어 삽니다. 이 부족은 우리말처럼 어순이 같고 비슷한 말도 많습니다. 나를 나, 너를 너라고 합니다. ‘나도너도’를 ‘나터너터’. ‘나는 너를 사랑해요’를 ‘나래 너타 하웨요’. ‘나는 서울로 가요’를 ‘나래 서울로 까이요’. ‘나에게 와요’를 ‘나게 라웨요’라고 합니다. 너무 비슷한 말이 많아 언어학자들도 놀랍니다.
외모도 닮은 데다 풍습도 한국과 비슷한 게 많습니다. 아궁이를 사용하고 콩으로 된장을 만들어 먹습니다. 야채를 소금에 절인 와찌라는 김치도 담가 먹습니다. 다른 부족과 달리 찹쌀로 지은 찰진 밥을 좋아합니다. 우리와 같은 절기를 사용하므로 설날도 우리와 같습니다. 우리처럼 설은 연중 가장 큰 명절이어서 모두 모여 색동옷을 입고, 제사 음식을 차려놓고 지신밟기를 합니다.
설날에는 고운 옷을 입고 어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고구려 옛 풍습처럼 남편이 처가살이를 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받아들입니다. 아기를 낳으면 대문밖에 새끼줄을 쳐서 외부사람들이 못 오게 하고, 숯과 빨간 고추를 매답니다. 이렇게 풍습까지 우리나라와 비슷한 게 많아 역사학자 중에는 이 부족을 ‘고구려인의 후예’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그 근거는 삼국사기 기록입니다. 130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고구려가 망한 이듬해, 당나라는 반란을 이유로 수만 명을 끌고 가 중국 서북쪽 불모지에 내팽개쳤습니다. 이 부족이 그 후예들이라는 주장입니다.
제사음식으로 돼지머리와 전을 차려놓고 남녀 함께 춤을 춘다.
우리와 똑같은 날짜의 설날에 제가 이 부족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습니다. 명절 때는 어른과 젊은이들이 모두 모여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색동옷을 입고 어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다 합니다. 하루 종일 제사 음식을 차려놓고 팽이놀이도 하고 노래를 합니다. 대나무로 만든 피리소리가 흥을 돋웁니다. 남녀 모두가 마당을 돌며 오랫동안 춤을 춥니다. 돼지머리에 돈을 꽂기도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갖는 그들을 봅니다. 이 부족은 어디서 시작되어 이곳까지 왔을까요. 정말 ‘흰 눈 내리는 나라’에서 왔을까요. 이런 언어와 풍습을 이어온 것도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언어와 풍습이 좀 비슷하다고 같은 ‘뿌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주변 나라의 동화를 받으며 그들만의 풍습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속으로 사라진 옛 고구려인들을 생각해봅니다. 끌려간 중국 서북부 불모의 땅. 낯선 그곳에서 그들이 이웃에게 남긴 유산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