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공장 20년 고단한 삶 ‘별 볼 일 생기겠죠?’
사가잉 옥공장에서 제품 마무리작업을 하는 모습.
옥과 은제품을 구경하러 갔다 한국인이 한다는 옥공장을 찾아나서게 된 것입니다. 물어물어 가다 까웅무다(Kaungmudaw) 수도원 근처에서 이 공장을 만났습니다. 언덕 위에서 볼 때 이 사원은 돔처럼 생겨 눈에 띄었는데 그 모습처럼 ‘왕비의 가슴’이란 별칭이 있습니다. 이 옥공장의 이름도 재밌습니다. ‘쏘매니 스타젬스’(Somany Stargems). 보석의 별들, 별 같은 보석을 수없이 갖다 등등. 제가 나름 해석을 상상해보자, 유준희 대표는 ‘별 볼 일 있지 않을까 해서 지었지요’라며 털털 웃어넘깁니다. 옥공장으로 들어서자 청년들이 분주하게 일을 합니다. 원석을 나르고 쪼개고 갈고 빚고, 알알이 만들어 윤을 내고, 꿰고 닦는 일련의 과정이 오랜 숙련을 통해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사가잉에는 전통을 이어 보석 세공을 하는 장인들이 많습니다. 그 자녀들 역시 세공일을 많이 합니다. 40여 명 직원들 모두 사가잉이 고향이고 어릴 적부터 이 일을 했습니다. 점심도 가까운 집으로 먹으러 갑니다.
세공거리에서 옥공장을 하는 유일한 한국인 유준희 대표.
한쪽에서는 완성품들이 마무리됩니다. 옥목걸이, 옥팔찌, 옥반지 등. 커다란 돌들이 공정을 거쳐 은은하게 반짝이는 옥제품이 됩니다. 미얀마가 옥과 비취의 나라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람들은 옥과 비취를 같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비취는 에메랄드빛을 띠는 초록색의 경옥(Jadeite)을 말하며 주요 산지는 오로지 미얀마뿐입니다. 원석은 북부 카친주에 많습니다. 광산의 95%가 그곳에 있지요. 그중 타운이 형성된 파칸(Pharkant) 지역에서 주로 생산됩니다.
유 대표도 이 지역에서 원석을 실어옵니다. 그곳에 아예 집을 지어 직원들 출장을 보냅니다. 그곳은 유 대표가 비취에 빠져 처음 발을 디딘 곳이기도 합니다. 23년 전 일입니다. 한국 외대 아랍어과를 졸업한 한 청년은 국내에서 직장을 다니다 1994년 아주 심플하고도 담대한, 고난의 길을 떠납니다. 아이템은 보석, 나라는 버마. 전문가가 되면 밥은 먹고 살리라. 이런 결심으로 버마에 왔습니다. 처음엔 루비, 사파이어를 사서 태국에 파는 보석유통을 했습니다. 그러다 미얀마 비취의 매력에 반해 본격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비취광산을 운영하려고 밀림 속을 수년간 헤매기도 했습니다. ‘별을 볼 뻔한 일’도 있었지만 어려운 시기엔 인도네시아에 사금을 사러 몇 년간 외도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세월을 보내다 자리를 잡고 시작한 것이 옥공장입니다. 외국인이 하기 어려운 분야에 한국인이 유일하게 옥세공 분야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만든 옥제품들은 전량 중국과 한국으로 수출을 합니다. 비싸지 않고 대중화된 옥제품들입니다.
어여쁜 색상의 팔찌들. 중국으로 수출한다.
세공의 거리 사가잉 숲속에는 한국인이 있습니다. 청년시절 비취에 빠져 20여 년을 보낸 남자입니다. 세공의 장인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유일한 외국인입니다. 그 긴 세월을 혼자 공부하며 낯선 분야를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공장방문도 교민으로는 제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참 독립군처럼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옥과 비취의 나라에서 그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싶어집니다. 우리는 어둠이 내리는 사가잉 거리 카페에서 미얀마 커피 한잔을 나눕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