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대 총선 자민당 지지율 50% 육박…보수화? 아닌 현실화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지난 10월 22일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AP/연합뉴스
역대 최연소로 총리에 올랐던 아베 신조는 2007년 9월,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스스로 물러나야만 했다. 선거 패배와 건강 악화 등이 이유였다. 그리고 절치부심 끝에 2012년 12월, 정권을 탈환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지기반이 된 것은 ‘젊은층과 남성들’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도 젊은층의 지지율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가 치러진 날 NHK가 출구조사를 한 결과, 20대의 자민당 지지율은 50%에 달했다.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출구조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10대(18~19세) 유권자 중 자민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46%, 20대는 47%로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과거 일본의 유권자들은 청년시절에는 사회당 등 진보 야당을 지지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보수화되어 자민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상식이 깨지고 있다. 오히려 자민당의 인기는 중장년층으로 갈수록 떨어지고, 20대가 가장 높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언론들은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고용 환경이 개선됐다”는 점을 배경으로 꼽았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으나 일본 내 일자리 수가 구직자 수를 넘어서면서 고용 상황이 좋아진 건 확실하다. 총무성이 발표한 9월 일본의 실업률은 2.8%였다.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때문에 “10~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베 정권의 인기가 높다”는 해석이 많다.
<동양경제온라인>은 “보수화가 아니라 젊은층의 현실주의화라는 말이 적합해 보인다”고 전했다. 요컨대 일본 젊은이들이 정치보다 경제를 선택했다는 얘기다. 자신의 취직이나 고용 환경을 생각하면, 굳이 정권이 바뀌어 변화가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아베 정권의 지속을 통해 높은 취업률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사이타마대학 사회조사연구센터의 마쓰모토 마사오 교수는 “강자에 이끌려, 현실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 속에서 “취업률 사상 최고”라며 홍보하는 자민당의 선거 전략은 혹하기 쉽다. 아울러 “미디어 전략에서도 속수무책으로 손 놓고 있는 야당보다는 자민당이 분명 한수 위였다”고 마쓰모토 교수는 덧붙였다.
내년부터 채택되는 이쿠호샤의 교과서 표지. 일본 내에서도 우익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젊은이들의 이러한 성향이 앞으로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름 아니라 일본의 ‘교육’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겐다이 비즈니스>에 따르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 투표한 18~19세 유권자들은 제1차 아베 정권(2006~2007년) 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 애국심 고양을 위한 교육개혁이 막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제2차 아베 정권(2012년~)에서는 “옛 일본의 명성을 되찾자”는 구호 아래 일장기, 기미가요 등 민족주의적 요소를 강조하는 역사교육에 주력했다. 또한 교육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을 사실상 일원화시켰다. 이로써 일본은 약 60년 만에 ‘정치‘가 ‘교육’에 직접 간여할 수 있게 됐다. 바꿔 말하면 ‘아베 총리와 여당이 직접 교육 현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겐다이 비즈니스>는 “아베 정권이 추진해온 교육개혁을 통해 미래 유권자가 자민당 지지로 귀결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며 우려했다. 특히 “도립 중·고 일관교(중학교와 고교의 6년 과정을 하나로 통합한 학교)가 내년부터 채택한다고 밝힌 이쿠호샤 교과서의 경우 아베 총리 사진이 15장이나 실려 있다”면서 “10페이지에 1장꼴로 아베 총리 사진이 등장한다. 마치 총리는 계속 아베라는 걸 상징하는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문제의 이쿠호샤 교과서는 일본에서도 우익 교과서로 평가받는다. 예를 들어 식민지배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가 하면, ‘일본제국 헌법’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군국주의 상징인 ‘교육칙어’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자민당의 입김이 반영된 것일까. 2011년 이쿠호샤 역사교과서 채택률은 불과 3.7%에 그쳤으나 2015년에는 6.3%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 시민단체들은 ‘내용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도요대 교수이자 저널리스트인 야쿠시지 가쓰유키는 “일본 젊은층이 결코 자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야당은 자주 분열되고, 관심을 끌기 위해 정당의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눈앞에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재정 위기, 연금제도 파탄 등 무거운 문제가 대기하고 있는데, 미덥지 못한 야당에게 정권을 맡기자니 왠지 불안하다. 따라서 “자민당 역시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나마 실적과 안정감 있는 자민당을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언급했듯, 일본의 젊은층은 보수나 혁신 같은 이념을 따지지 않고, 현실적으로 움직인다. 지금 추세라면 자민당의 확실한 득표원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가쓰유키 교수는 “그 결과 자민당이 계속 정권을 잡을 수밖에 없다”면서 “사태를 전환시키려면 야당이 근본적으로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선거 때마다 유권자에게 아첨하는 신당 만들기가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기 색깔을 가진,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충고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