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향담배(캡슐담배)’ 흡연 거부감 낮추는 데 큰 역할... 청소년 흡연 유혹...안전성 문제 대두
향긋하고 달콤한 가향담배 (캡슐담배)에 청소년이 빠지고 있다.
가향담배 중 대표 격인 ‘캡슐담배’는 필터에 향료 캡슐을 넣어 흡연하는 과정에서 향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일반 향과 캡슐 향 모두 맛볼 수 있어 흡연자들에게 인기 만점입니다.
최근에는 KT&G가 궐련형 전자담배를 출시하면서 캡슐담배를 내놔 더욱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죠.
캡슐담배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해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규모가 큽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판매량과 시장점유율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시장점유율을 보면 2012년 2.2% 수준에서 2016년 15.7%까지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일반담배의 시장점유율이 약 12.4%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성장이 무섭습니다.
가향담배는 흡연 시작 연령에 해당하는 젊은 층과 여성의 사용률이 높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9월, ‘가향담배가 흡연시도에 미치는 영향 연구’를 통해 가향담배가 흡연시도를 쉽게 하고 신규 흡연자로 유인한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연구에 따르면 13세~39세의 젊은 흡연자 중 약 65%가 가향담배를 사용합니다. 남성의 경우 13세~18세가 68.3%, 여성은 19세~24세가 82.7%로 높은 수치를 보입니다.
지난 9월 발표 기준, 흡연자의 가향담배 사용 현황(성별, 연령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A 씨는 캡슐담배로 흡연을 시작했습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국내에서 생산된 R담배(포도 향 캡슐담배)를 피고 있었는데요. 왜 일반담배가 아닌 캡슐담배를 피느냐는 질문에 “맛도 좋고 냄새도 덜 나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강서구 화곡동의 한 편의점 앞에서 만난 B 씨는 청소년 시절 부터 담배를 피웠답니다. “그때도 멘톨 향이 나는 담배를 피웠다”며 “일반담배는 목이 더 건조해지는 느낌이고 시원한 맛이 없어 선호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캡슐담배를 포함한 이 가향담배를 두고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단 담배 맛을 순화시킨 가향담배는 청소년을 유혹하는데 제격입니다. 담배 연기의 거칠고 자극적인 특성이 흡연시도 단계에서 장벽으로 작용하는데 가향담배는 자극적 특성을 숨김으로써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을 저해합니다.
실제로 흡연경험자의 70% 이상이 담배의 향이 흡연을 처음 시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PATH(Population Assessment Tobacco Health)는 청소년 흡연 경험자 중 처음 사용한 담배가 가향제품인 경우는 80.8%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향이 마음에 들고, 신체적 불편함(기침, 목 이물감)을 없애주며, 냄새가 덜 난다는 이유로 가향담배를 선택했습니다. 앞서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처럼 말이죠. 가향이 담배 맛을 더 좋게 하는 것은 물론 흡연에 대한 거부감을 낮춰 청소년 흡연율을 상승시키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죠.
흡연 유인 외에도 심각한 문제는 더 있습니다. 신호상 공주대 교수팀의 시중 가향담배 29종에 존재하는 캡슐 33종의 성분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33종 담배 캡슐에 포함된 성분은 총 128종이며, 가향 성분이 인체에 고농도로 노출될 경우 피부나 호흡기, 폐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향담배에 대한 우려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심각하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180개국이 비준한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담배 제품의 맛을 향상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성분을 제한 또는 금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캡슐담배 5종의 필터를 절개한 후 꺼낸 캡슐의 모습
특히 캡슐담배와 같이 담배 매혹도를 높이는 제품 디자인에 대한 규제도 추가되어야 한다는 결정문이 채택됐는데요. 가향담배가 청소년의 흡연 진입을 유도하고 중독성을 심화시키는 유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발맞춰 해외에서는 이미 가향담배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호주는 대부분의 주(州) 정부에서 아동과 청소년을 타깃으로 하는 담배 회사의 전략을 규제하기 위해 과일, 사탕향을 함유한 담배 판매를 금지합니다. 브라질은 세계 최초로 모든 담배 제품에 가향 첨가물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률이 통과됐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캡슐담배 등 가향담배 규제가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가향물질 첨가 자체를 규제할 방법이 없는 셈이죠. 이와 관련한 규제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3에 따른 ‘가향물질 함유 표시 제한’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담배 회사는 “상쾌한”, “딸기 맛” 등의 가향물질 첨가를 암시하는 표현으로 규제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보건당국은 “가향담배는 흡연을 더욱 쉽게 시작할 수 있게 하고, 담배 이미지를 일부 가향물질의 이미지로 광고하는 등 담배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말했습니다. 또 기재부, 식약처 등 관계부처와 협의 후 구체적 입법안을 마련하여 2018년 내 입법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좀 더 지켜볼 대목입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2018년 규제 입법 후 유예기간 허용 시 실제 2020년 이후에나 규제가 가능한데 가향담배의 급속한 성장세로 볼 때 규제 저항이 막강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지금이 규제의 ‘골든타임’이란 말이죠.
가향담배의 유해성이 연구 결과를 통해 드러났고, 해외는 규제를 시작했습니다. 달콤한 맛으로 청소년을 유혹하는 가향담배. 우리도 적절한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김종용 인턴기자 deep@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