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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 ||
“참끈질기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72)를 지켜보는 유럽 언론들의 시각은 대부분 이렇다.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로 재판에 회부된 현직 총리라는 굴욕과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부패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총리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그 질긴 생명력이 놀랍다며 비꼬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부패 고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본인 스스로가 권력과 돈을 한꺼번에 지니고 있는 정치인이자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최대 갑부이자 억만장자인 그의 자산은 최소 120억 달러(약 15조 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그는 이탈리아 민영방송사,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시사주간지 <파노라마>를 보유한 ‘몬다도리’ 출판사, 인터넷 미디어 그룹 ‘뉴미디어’, 세계적인 축구명문클럽 ‘AC밀란’ 등을 소유하고 있다.영국 BBC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지금까지 법정에 출두한 횟수는 2500회, 경찰 조사를 받은 횟수는 587회였다.
법정 비용으로만 무려 1억 7400만 유로(약 3000억 원)를 썼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유죄판결이 확정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1994년 처음 총리직에 오르자마자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렸던 그는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베티노 크락시 전 총리와의 친분을 이용해서 자신의 사업을 불법으로 확장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80년대 중반 ‘몬다도리’ 출판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의 입찰이 취소되도록 로마 법원의 판사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였다. 이밖에도 회계부정, 탈세, 마피아 연루 등 크고 작은 비리설이 연달아 터지자 사퇴 압력에 시달렸던 그는 결국 취임 7개월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하지만 퇴임 후에도 그는 건재했다. 혐의들이 차례로 선고가 유예되거나 2심에서 무죄 선고 혹은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이었다.
▲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 | ||
그는 당시 자신은 1993년 이미 경영진에서 사퇴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며 발뺌했다.한시라도 권력을 손에서 놓으면 불안해서였을까. 급기야 지난해 젊어 보이도록 성형수술까지 한 후 다시 한 번 총리직에 오르는 데 성공한 그는 이번에는 안전망을 설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대통령, 총리, 상하원의장 등 최고위직 네 명에 대해 재임 중에는 형사소추를 받지 않도록 하는 면책법을 추진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77)도 ‘비리 정치인’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집권 12년 내내 부정부패 의혹에 시달려왔던 그는 이로 인해 한때 탄핵위기에까지 몰렸으며, 결국 퇴임 후에는 프랑스 헌정사상 처음으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그의 부패 혐의는 대부분 1977~1995년 파리 시장 재직 시절 불거진 것들이었다.
40여 명의 집권 공화국연합 소속 당원들을 파리 시청 직원으로 허위 등록시켜 월급을 지급했다는 혐의도 그중 하나였다. 위장취업으로 공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그는 “모두들 정당한 이유로 취업한 것이었다. 결코 유령직원들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2002년 대선을 세 달 앞둔 시점에서는 파리 시장 재직 때 불거졌던 건설사업 비리가 또 터졌다.
공화국연합당 자문관 및 공공주택 사무소장을 지냈던 디디에 쉴레르가 7년간의 해외도피 생활을 접고 귀국해서 입을 열었던 것이다.쉴레르는 당시 건설업체들로부터 받은 총 1억 달러(약 1300억 원)의 뇌물을 공화국연합당에 정치자금으로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었으며, 조사에서 시라크 전 대통령도 연루됐음을 시사했다.
이밖에도 파리 영세민임대주택 건설사업과 관련된 뇌물 의혹 재판에서 당시 건설업무를 담당했던 건설개발국 부국장이 법정에서 시라크 전 대통령이 불법정치자금을 모금했다는 증언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시라크 당시 파리 시장은 건설업자들에게 수주를 대가로 공화국연합당에 정치자금을 대도록 압력을 행사했으며, 이렇게 수수한 돈은 6억 프랑(약 1100억 원)이었다.
▲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 | ||
확인 결과 ‘시라크’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계좌는 없었다”고 보도하면서 의혹으로 끝났다.2006년 영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노동당의 매관매직 파문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56)에게 ‘비리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은 첫 현직 총리’라는 오점을 남겨 주었다.이 스캔들로 그는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지난 2007년 사임했다.
노동당의 비밀정치자금 수수 스캔들은 한 번 임명되면 종신명예직인 상원의원이 되는 영국의 임명직 전통을 둘러싸고 일어난 것이었다. 이런 독특한 전통으로 사실 영국에서는 그동안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한 후원자들이 암암리에 총리의 추천을 받아 의원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건의 발단은 야당 의원들이 2005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일부 기업인들과 갑부들에게 돈을 빌리는 대가로 기사작위를 팔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 스캔들에 연루됐던 후원자들은 기업인, 패션업계 종사자, 레스토랑 사장, 병원장, 금융인 등 모두 12명이었으며, 이들이 기부한 총 1400만 파운드(약 2600억 원)가 노동당의 선거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12명 중 100만 파운드(약 20억 원) 이상을 기부한 네 명은 블레어 전 총리의 추천으로 상원의원이 됐다.당시 노동당 측은 “모두들 그만한 자격이 충분했기 때문에 상원의원에 추천했다. 돈은 불법정치자금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대출을 받고 빌려 쓴 것이다”라고 해명했지만 그 후에도 매관매직을 둘러싼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스캔들이 일파만파 커지자 결국 2006년 블레어 전 총리가 다우닝가의 총리 집무실에서 경찰조사를 받는 사태까지 벌어졌다.이밖에도 독일 통일의 일등공신이었던 헬무트 콜 전 총리(79)가 1993~1998년에 걸쳐 총 200만 마르크(약 11억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벌금형에 처해졌는가 하면, 일본에서는 1976년 일본 정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었던 ‘록히드 사건’으로 다나카 가쿠에 전 총리가 구속되는 대형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었다.
당시 다나카 전 총리는 미 군수업체 ‘록히드’사로부터 항공기를 수입하는 대가로 200만 달러(약 26억 원)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그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쇠고랑을 찬 총리로 기록되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