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감동은 완벽한 각본에서?
▲ 뜻밖의 노래 실력으로 스타덤에 오른 ‘제2의 폴 포츠’ 수잔 보일. | ||
“수잔 보일의 무대는 ‘너무’ 완벽했다.”
촌스런 외모에 비해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자랑했던 보일의 무대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완벽했다’고 보도한 <뉴욕포스트>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해서 의심이 간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조작된’ 감동, 즉 극적인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가 곳곳에 보였다는 것이다.
우선 신문은 구성 자체가 너무 뻔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못생긴 외모의 뚱뚱한 중년 여성이 무대에 등장하자 모두들 코웃음을 친다. 심사위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냉소적인 표정을 짓고 방청객들은 그녀가 “전문 가수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자 키득거리면서 비웃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전. 모두들 무시했던 뚱보 아줌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을 부르면서 천사와 같은 목소리를 뽐냈고, 방청객 사이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심사위원 세 명도 모두 한 대 얻어맞은 듯 놀란 표정들이었다. 이 중 한 명은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글썽이면서 기립박수를 쳐댔다. 남자친구 한 번 못 사귀었던 노처녀 아줌마가 단 몇 분 만에 스타로 급부상하는 순간이었다.이 7분짜리 동영상은 곧 인터넷에서 조회수 1억 회를 돌파하면서 ‘수잔 보일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고, 현재 그녀는 오프라 윈프리 쇼, 래리 킹 라이브 등의 토크쇼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제작진들은 정말 그녀가 이렇게 유명해지리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뉴욕포스트>는 ‘준비된 반전’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방송 전 전국을 돌면서 예심을 치르기 때문에 이미 보일이 ‘반전 카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마치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양 눈을 휘둥그레 뜬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연기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밴쿠버선> 역시 한 네티즌의 말을 인용해서 “이런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방송을 내보내기 전에 철저한 사전 심사를 거친다. 심사숙고해서 후보자들을 걸러낸 후에야 비로소 출연을 시킨다.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그날 보일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또한 이 네티즌은 심사위원들이 보일에게 판정을 내릴 때 오케스트라가 계속해서 배경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사실 이 프로그램 역사상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도 지적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사이먼 코웰이 마지막으로‘yes’를 선언하자 오케스트라는 기다렸다는 듯 더욱더 크게 연주하면서 감동을 배가시켰다. 할리우드 영화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때 사용하는 바로 그 방법이었다. 또한 <뉴욕포스트>는 보일이 선곡한 노래도 어쩌면 제작진들이 추천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직업도 없이 따돌림당하는 뮤지컬 속 주인공이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품는다는 가사 내용이 실제 보일의 신세와 너무 똑같다는 것이다.
카메라 앵글도 수상했다. 카메라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관객과 심사위원, 그리고 보일의 얼굴을 완벽하게 오갔으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화면은 화려하다 못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2년 전 단조롭고 초라했던 폴 포츠의 첫 무대 화면에 비하면 분명 지나치게 요란했던 것이다.만일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유는 뻔하다. 바로 시청률 때문이다. 토요일 밤 황금시간대의 시청률 1위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첫 회 우승자인 폴 포츠의 성공을 다시 한 번 재현하고자 하는 제작진들이 치밀한 계획 아래 발굴해낸 신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이런 ‘준비된 신인’에 대한 의혹은 2주 후 초등학생 스타 샤힌 자파골리(12)가 등장하자 더욱 짙어졌다. 잭슨 파이브의 ‘후즈 러빙 유’를 완벽하게 불러 다시 한 번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이 꼬마가 사실은 TV 및 공연 경험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 <브리튼즈 갓 탤런트> 첫 회 무대를 통해 먼저 이름을 알린 폴 포츠. | ||
이에 프로그램 관계자는 “원래 출연자들은 예비곡을 하나씩 더 준비해온다”고 해명했다. 이런 조작 논란 외에도 구설수에 오른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돈’ 문제다. 우승만 하면 돈방석에 앉고 스타가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사실 돈방석에 앉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바로 프로그램 제작자이자 심사위원인 코웰과 ITV 방송국이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 외에 이와 비슷한 가수 등용문 프로그램인 <엑스 펙터(X Factor)>의 심사위원이기도 한 코웰은 두 프로그램의 출연료를 비롯해 자신 소유의 음반회사인 ‘사이코(Syco)’의 음반 판매 등으로 수백만 파운드를 벌어들이고 있다. 또한 ITV가 시청자들의 전화 투표로 벌어들이는 돈은 하룻밤에 수백만 파운드에 달한다.
가령 <엑스 펙터>의 결승전이 열린 날 밤에는 800만 명이 전화 투표를 했고, 이를 통해 방송국은 300만 파운드(약 60억 원)를 벌어들였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출연자들이 작성하는 계약서 내용에 있다. 주말 저녁 평균 750만 명이 시청하는 인기 프로그램인 <엑스 펙터>의 출연 계약서를 살펴보면 결승에 진출하는 열두 명의 참가자들은 3개월 동안 오로지 ‘사이코’와만 계약하도록 되어 있으며, 우승자는 싱글 및 앨범 판매 수익의 15%만 가져갈 수 있다.
또한 에이전트와 계약을 할 때에도 반드시 코웰과 계약을 체결한 회사를 선택해야 하며, 계약서 내용은 전 세계 어디서든, 심지어 달나라에서도 효력을 발휘하도록 규정지어 있다.폴 포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데이몬 스콧은 “행여 다른 곳에서 음반 제작 문의가 들어와도 ‘사이코’의 눈치를 보게 된다. 우선 이 쪽에서 허락을 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털어 놓았다.
지난해 <엑스 펙터> 우승자인 알렉산드라 버크(20)도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불만을 토로했다. 우승 상금으로 100만 파운드(약 20억 원)를 받았던 그녀는 곧 명예와 부가 가득한 화려한 인생이 시작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지난해 최다 음반 판매 기록을 세웠던 싱글 앨범 <할렐루야>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녀의 손에 주어진 돈은 푼돈에 불과하다.
아무리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해도 그녀에게 돌아오는 몫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녀는 “개인 전용기는커녕 코웰의 전용기 안에 있는 의자 하나도 구입할 수 없을 정도다”고 말했다.이에 반해 코웰은 ITV와 3년 출연 계약으로 이미 2000만 파운드(약 400억 원)를 받았고, 음반회사 수입, 콘서트 티켓 수입 등으로 2007년 한 해에만 4000만 파운드(약 800억 원)를 벌어들였다.
버크는 프로그램 종영 후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갖는 ‘엑스 펙터 투어’ 순회공연만 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 공연 1회당 버크의 출연료는 250파운드(약 50만 원)였다. 티켓 한 장당 30~45파운드(약 6만~9만 원)였으며, 2만 명이 들어가는 런던 공연장의 경우 티켓 판매로만 60만 파운드(약 12억 원)를 벌어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적은 액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승자인 버크는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100파운드(약 20만 원)만 받고 출연했다. 더 큰 문제는 투어 시 소요되는 경비를 본인들이 직접 충당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전화비나 식대 등을 알아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순회공연이 끝난 후에는 오히려 남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2004년 <엑스 펙터>에서 3위를 했던 태비 칼라한은 “만일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큰돈을 벌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상을 알면 모두들 까무러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모두들 성공을 생각하고 출전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 이상은 없다”며 허탈해 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는 5월 30일을 주목하고 있다. 바로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연 보일이 폴 포츠의 뒤를 이어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을지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비록 그녀가 ‘준비된 신인’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이미 그녀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소원대로 이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살게 됐다는 것이다. 어쨌든 꿈은 이루어진 셈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