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 MB-노 대표주자 빅매치 성사되나
▲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왼쪽)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오른쪽) | ||
이렇듯 10월 재보선은 지난 4·29 재보선에 비해 더 많은 지역에서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내년 지방선거를 7개월여 앞두고 민심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재보선 결과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에까지 그 여파가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야 모두 뜨거운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정치권은 이제 ‘정치시계’의 알람을 오는 10월 재보선에 맞춰두고 전략 짜기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재보선이 실시될 가능성이 있는 몇몇 지역에는 ‘대권 잠룡’ 등 거물들의 출마도 예상된다. 여야 잠룡들과 거물 정치인들에게도 이번 재보선은 새로운 정치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그나마 딛고 있던 정치 기반을 잃을 가능성도 크다. 출마설이 거론되고 있는 정치 거물들의 10월 재보선 셈법을 미리 들춰봤다.
10월 재보선에서 가장 큰 격전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서울 은평 을이다. 이곳은 현 지역구 의원인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선거구.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으나(박스기사 참고) 이곳이 주목받아온 이유는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출마설이 나돌았기 때문.
은평 을은 이 전 최고위원이 40여년간 살아온 지역이면서 3선을 지낸 지역구다. 한동안 정계를 떠나 있던 이 전 최고위원이 자신의 텃밭 지역구를 통해 정계복귀를 하기 위해 준비해오고 있다는 관측이 그간 끊이지 않았다.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했던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 총선에서 ‘한반도 대운하 저지’를 내세워 도전장을 내밀었던 문국현 대표에게 패한 바 있다. 만약 이 전 최고위원이 은평 을 지역에서 재출마해 당선된다면 ‘한반도 대운하 포기선언’을 한 이 대통령의 ‘4대강 살리기’ 정책 가동에 그가 중심축으로 나설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검찰의 공소장 변경 등으로 재판이 자꾸 미뤄지면서 이 지역의 10월 재보선 실시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 이 때문에 ‘이재오 출마설’도 차츰 빛이 바래지는 형국이다. 대신 여권 주변에선 이 전 최고위원이 ‘조기전대’를 통해 당권에 도전하는 방안과 함께 ‘입각설’ 등이 흘러나오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 전 최고위원이 은평 을에 출마할 경우 당선가능성이 낮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거론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재보선이 이뤄질 경우 이 전 최고위원의 당선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전망을 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팀장은 “이 전 최고위원은 은평 을 지역구에서 오랫동안 기반을 다져온 인물이다. 출마할 경우 지역민심은 한나라당이나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를 떠나 이 전 최고위원 개인에 대한 평가로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왼쪽부터 손학규, 이재오, 김근태 | ||
경남 양산의 경우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직접 출마 의사를 드러내면서 관심 지역으로 급부상한 곳이다. 양산은 한나라당 허범도 전 의원이 지난 6월 23일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잃게 되면서 10월 재보선이 확정된 지역구다.
박 대표는 지난 2일 당대표 취임 1주년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10월 재선거 출마를) 결심하는 데 두 달, 석 달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잘 좀 부탁한다”고 언급했다. 박 대표는 또 “1년 남은 임기를 단축하는 전당대회를 하자고 해도 언제든 흔쾌히 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당대표직을 반납하고 10월 재보선에 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박 대표는 이번 재보선을 통해 원내로 입성한 뒤 이후 국회의장직을 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가 “정치하면서 대변인, 당 대표, 장관도 해봤고 이제 하나만 남았다”고 언급한 점도 이러한 바람을 내비치는 대목.
그러나 양산 지역에서 박 대표의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이 지역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허범도 전 의원이 당선됐으나 친박 무소속 후보로 나온 유재명 후보와의 표차가 4000여 표밖에 나지 않았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다. 더구나 친박연대는 지난 6월 25일 오는 10월 재보선에 후보를 내겠다며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한 정치평론가는 “현재의 여권 상황대로라면 경남 양산의 경우 지난 4·29 재보선 당시 경주 지역에서 친이계 정종복 후보와 친박계 정수성 후보가 맞대결을 펼쳤던 것과 비슷한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곳에 출사표를 던지려는 박희태 대표로선 친박계에 다가가려는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가 최근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에 대해 ‘8·15 특사설’을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근 ‘친노인사’인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출마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박희태 대표의 출마가 기정사실화되자 민주당에서는 이에 맞대응할 수 있는 ‘친노인사’를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 특히 경남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김 전 장관이 출마해야 한다는 의견이 흘러나오고 있다. 김 전 장관의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로 출마하는 방안도 민주당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 지역의 민심 향배도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경남 양산은 상대적으로 ‘야당세’가 강한 지역으로 TK 지역에 비해 ‘반 MB 정서’가 다소 높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TK(대구·경북) 지역과 PK(부산·경남) 지역의 민심에는 차이가 있다. TK 지역은 보수성과 이념적 동질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반면 PK 지역은 실용성, 자존심, 반골기질의 민심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변수가 이러한 PK 민심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이 김두관 전 장관을 박 대표의 맞수로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김 전 장관 측도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그의 출마가 확실시될 경우 양산은 10월 재보선의 최대 관심지역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장관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 49재인 7월 10일 이후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한 양산은 막대한 국비가 투입될 ‘동남권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사업은 앞으로 30년간 5조 6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양산은 부산, 울산 등과 연계해 유치작업을 벌이고 있다. 여권 주변에선 바로 이 점 때문에 집권당 거물인 박희태 대표에게 민심이 더 쏠릴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이밖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민주계 거물급 인사들의 출마설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춘천에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대표는 지난 4·29 재보선 당시 민주당을 돕기 위해 백의종군하며 수도권에서 적극적으로 지원 유세를 펼친 바 있다. 다행히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손 전 대표에 대한 당내 입지와 호감도는 높아진 상황. 재보선 이후 또다시 칩거에 들어간 손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사태가 터지면서 자신의 존재감 상실을 우려해 복귀 시점을 앞당기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는 10월 재보선에 대비해 거물급 인사들의 ‘수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손 전 대표 역시 10월 출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손 전 대표가 ‘충분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고 때를 기다려온 만큼 10월 출마에 대한 민심의 호응도 높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판단이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맞상대가 누구냐가 결국 변수가 되겠지만 손 전 대표가 수원 장안에 출마할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수원 장안 지역은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이 1·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선거구로 ‘경기지사’ 출신인 손 전 대표 입장에서는 지역구나 다름없는 곳이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등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민심이 크게 줄었다. 이러한 여론의 흐름이 손 전 대표에게 더 유리한 구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근태 전 의장도 수도권 출마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선 10월 재보선이 ‘미니 총선’을 방불케 할 경우 거물급들이 대거 출마해 완승을 거둬야 한다는 논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이강래 원내대표 등은 김 전 의장의 수도권 출마를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손학규 전 대표와 함께 김근태 전 의장이 재보선을 통해 당선되고 여기에 정동영 의원까지 당내로 복귀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민주적 연합체가 구성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근태 전 의장 역시 출마 의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최근 민주당 인사들과 만나 “새로운 민주연합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놨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