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의 여왕’ 그거 화장발 아냐?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 이번에는 마야와티가 인도 총리가 될 차례다.”
마야와티 쿠마리(53)는 인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장관이다. 그는 여성이자 하층 출신 정치가로 사회적 통념과 차별을 뛰어넘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지지자들로부터 ‘인도의 오바마’ 혹은 ‘천민의 여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인종과 문화, 종교를 초월한 화합을 주창하는 오바마 대통령과는 달리 마야와티 장관은 계층 간의 갈등과 반목을 부추겨 지금의 자리에 오른 측면이 있고 각종 비리 의혹에 연루돼 있다. 그런 그녀가 카스트제도 철폐를 공약으로 내걸고 인도 총리의 자리에 도전하면서 계층 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트제도는 크게 브라만(승려)과 크샤트리아(무사), 바이샤(농민), 수드라(노예)라는 네 가지로 나뉜다. 보통 수드라가 가장 낮은 신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이 네 가지에 속하지 않는 ‘아웃 카스트’인 ‘달리트(Dalit·학대받는 사람)’가 존재한다.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혹은 ‘언터처블(Untouchable)’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청소와 세탁, 도살 등 사회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는 최하위 계층으로 오랫동안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왔다. 1955년 달리트에 대한 종교적,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인도 전역에는 카스트제도의 영향이 뿌리 깊게 남아있어 대부분의 달리트는 여전히 극심한 차별과 빈곤 속에 살고 있다.
마야와티 장관도 델리의 빈민가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달리트 고용 확대 정책(공무원과 대학임직원의 15% 이상을 달리트로 채용할 것을 헌법으로 규정)으로 채용된 하급 공무원이었다. 대도시에서 자란 마야와티는 명문 대학을 졸업하는 등 시골과 같은 심한 차별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타르프라데시 주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집을 방문하기 위해 버스를 탈 때면 다른 승객들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벌레라도 보듯 멸시하곤 했다. 그녀는 자서전에 “아주 어렸을 적부터 카스트제도를 깊이 증오했다”고 적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마야와티는 1977년 특권직인 국가공무원이 되기 위해 교사를 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참가한 정치집회에서 당시의 보건장관이 달리트를 ‘하리잔(Harijan·신의 아이)’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강하게 반발을 느꼈다. 하리잔은 마하트마 간디가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지만 달리트들은 이 호칭을 위선적이라고 싫어했다. 보건장관에 이어 단상에 오른 마야와티는 그의 발언이 계층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이 연설에 주목한 것이 대중사회당의 설립자 칸시 람이었다. 그는 당시 노동운동 지도자로 달리트 출신 공무원들의 조직화를 꾀하고 있었다. 칸시는 1984년 대중사회당을 설립하고 마야와티를 정계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2006년 칸시가 사망할 때까지 두 사람은 동지로서 함께 투쟁해왔다. 칸시가 마르크스라면 마야와티는 레닌과 같은 사이로, 칸시는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마야와티는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칸시와 역시 미혼인 마야와티가 연인 관계였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를 부정했다.
1984년 칸시는 당세 확장을 위해 마야와티를 우타르프라데시 주로 보냈다. 인도의 하원 545석 중 우타르프라데시 주 대표들이 80의석을 차지한다. 이곳에서 기반을 다지면 유력 정당이 될 수 있었다. 뿌리 깊은 카스트제도와 종교대립이 존재하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진출한 마야와티는 이들의 반목과 갈등을 이용하기로 했다. 연설에서는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을 강하게 비난했는데 달리트를 노예로 만든 것은 상위 계층의 모략이라고 선동했다. 이런 전략 덕분에 마야와티는 쉽게 지지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유권자 5명 중 1명은 달리트였고 그들 대부분이 대중사회당을 지지했다. 그와 동시에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중간 계층에게 밀려난 가난한 브라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브라만 표의 3분의 1을 얻어냈다.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의 불만을 교묘히 이용한 선거 전략으로 마야와티는 네 번 연속으로 주 장관을 역임할 수 있었다.
▲ 마야와티 장관 뒤로 자신의 동상(맨 왼쪽)이 보인다. | ||
하지만 마야와티 장관에 대해 사리사욕과 명예욕에 눈이 먼 오만한 위선자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그녀는 인도의 정치가치고는 매우 부유한 편으로 2007년 입후보 신청서에 따르면 현금과 자산의 총액이 5억 2000만 루피(약 133억 원)에 달한다. 2003년에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있는 세계유산인 타지마할 주변의 재개발을 두고 수뢰 의혹이 부상하기도 했다. 인도 중앙정부의 조사로 마야와티 장관과 가족들이 72채의 주택을 소유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주택들은 지지자들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주장하며 “조사를 받았지만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가난한 달리트들 명의로 된 다수의 유령 계좌로 자금이 오고 간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올해 4월에는 대중사회당에 반대하던 정치가가 나무에 묶여 사망한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유족들이 대중사회당의 소행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현재 중앙 정부의 선거위원회의 조사단이 파견된 상태다. 2008년에도 한 목사가 유괴되어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유족들은 “마야와티의 생일파티에서 기부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마야와티 측은 기부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녀에 대한 이런 부패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마야와티 장관의 오만함과 자아도취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정부 고관들을 무시하는가 하면 일대일 취재에는 응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달리트의 권리 보장을 위해 헌법 개정을 위해 노력한 유명인들의 동상과 함께 자신의 동상을 세워 자아도취에 빠졌다는 여론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생전에 스스로의 동상을 세우는 것에 대한 비난이 일어나자 마야와티는 “동상은 당사자가 살아있을 때 만들어야 그 의미를 소중히 여길 수 있다”고 합리화하며 오히려 자신의 동상을 더 큰 것으로 교체하도록 지시했다.
말로는 카스트제도 철폐와 법과 질서 회복 등 거창한 구호를 내걸면서도 실제로는 부정 축재 등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있는 마야와티 주 장관이 정말로 달리트 출신의 첫 인도 총리가 될 수 있을지 5월 16일의 총선거 결과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