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조사위 “해직자 581명 중 47%가 영남…실행주체는 특정하기 곤란”
<일요신문>이 입수한 ‘98 강제퇴직 진상조사 결과보고서’와 당시 작성된 살생부 및 위법 부당행위 입증자료.
진술서에 언급된 사건은 DJ 정권 때인 1998~99년 국정원이 직원 581명을 해직한 사건이다. 당시 국정원 측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일이라고 설명했지만 강제퇴직을 당한 직원들은 “특정지역(영남) 출신 직원들을 배제하기 위한 정치적 음모”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정원 강제퇴직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위원회(국강진)’를 구성하고 현재까지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2008년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국정원 손을 들어줬지만 새로운 증거와 증언들이 수집되면서 국강진은 2015년 다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이명박 정부는 국강진이 강제퇴직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2008년 11월 13일 ‘98 강제퇴직 조사위원회’ 및 ‘실무 T/F·산하 조사반’을 구성했다. 이들은 2009년 1월 31일까지 80일간 국정원 강제퇴직 사건과 관련한 의혹을 자체 조사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98 강제퇴직 진상조사 결과보고서’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은 2009년 3월 보고서를 완성하고도 ‘보안상의 이유’로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버티던 국정원은 지난 2016년 2월에야 재판부의 증거제출 지시에 의해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보고서 일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적은 있었지만 보고서 전체 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위는 보고서에서 “08.11.13~09.1.31(80일)간 당시 면직 관련 자료검증 및 전현직 직원들에 대한 면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부 호남 출신 직원들에 의한 자의적인 대기발령자 선정, 명예퇴직 과정에서 회유·강압, 소송 시 증거자료 위변조 및 위증 등 면직과정이 위법·부당하게 처리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적었다.
조사위는 “조사결과에 따라 이들 전직 직원들에 대한 명예회복은 물론, 정신적·금전적 피해보상을 위한 합당한 대책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이같은 위법·부당행위를 주도했거나 적극 동조했던 현직 직원들에 대한 인사조치 방안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사위는 “T/O 감축보다 예비T/O 및 정년 도래자가 많아 면직이 불필요함에도 정년 미도래자 대기발령 및 전원 면직방침 사전 결정 등 인위적인 강제퇴직이 이뤄졌다”면서 “각 부서에 보직 제외자를 사전 통보, 최초편성에서 제외시킨 데 이어 호남 출신 부서장이 인사실무위를 임의로 개최해 보직제외자를 추가 선정,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적었다.
당시 국정원은 대기발령자들의 자발적 퇴직이 저조하자 순화담당관을 구성하여 회유(특별격려금), 강압(연구비 지급중단), 직권면직 강행방침 통보 등 조직적, 강제적으로 퇴직을 유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명예퇴직을 끝내 거부한 직원은 직권면직을 위해 국정원 직원법상 필수적 심사기준인 업무실적은 전혀 고려치 않고 ‘발전가능성’ 항목을 임의로 추가, 명퇴거부자 전원을 최하로 평가해 직권면직을 강행했다.
조사위는 국정원의 강제퇴직 강행이 위법 부당한 처분임을 잘 알고도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퇴직 직원들의 명예 및 권리회복을 위한 소청심사, 행정소송 등을 조직적으로 차단했다고 적었다. 또 대기발령 등 인사조치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간부인사 추진계획’ 등 증거자료를 소급 위변조했고 순화담당관 운영 등 핵심쟁점에 대한 위증 및 위증교사를 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DJ정부 국정원이 구조조정을 빙자해 강제퇴직을 호남 출신 직원 발탁수단으로 악용했다”면서 “3급 이상 대기발령자 중 영남 출신이 절반에 달하는데 반해 호남 출신은 단 00명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정년임박, 00명 외 00명은 구제되는 등 영남 출신 직원 제거 방편으로 악용됐다”고 분석했다. 당시 강제퇴직당한 직원들의 출신지는 영남 47%, 수도권 23%, 충청 17%, 호남 3%, 기타 10%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위는 “98.3~98.12 간 3급 이상 발탁자 중 영남 출신이 12%인데 비해 호남 출신은 51%에 달해 이후 국정원에서 ‘호남 약진, 영남 퇴조’ 현상이 뚜렷해졌다”면서 “영남 출신 제거 목적의 인사질서 문란행위”라고 평가했다. 조사위는 “정치권과 연계된 일부 호남 출신 간부들이 98년 강제퇴직을 주도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관련자 면담조사 결과 97년 대선직후 권00 김00 등 정치권 실세와 밀착관계에 있던 배00 박00 등 일부 호남 출신 간부들이 살생부를 작성하는 등 98년 강제퇴직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관련자 조사결과 “98년 당시 국정원 인사에 관여한 동교동계 인물은 권00 김00 한00 박00 이00(DJ집사) 등이며 이들과 연계된 인물들은 DJ집사인 이00과 고스톱 멤버”라며 “이들은 초기 국정원장 후보로 거론된 천00 및 동교동에 잘 보이기 위해 국정원 조직개편 자료 및 살생부 등을 만들어 전달했다”고 적었다.
살생부와 관련해서는 “97년 대선 직후 정치권 연루 호남 출신들이 임의로 살생부를 작성, 전달하는 등 월권을 자행했다”면서 “살생부에는 ‘이회창 당선을 도운 000지부장은 당연한 응징대상’이라고 기술되어 있는 등 전 정권 보복성으로 살생부 등재자 43.6%가 퇴직당했다”고 적었다.
조사위는 “강제 퇴직자 및 전현직 직원을 통해 97년 대선 후 국정원 내외에 유포된 살생부 4건을 입수, 실체를 확인했다”면서 “김00(전남)가 지부장 묵인 하에 근무지까지 이탈해 000호텔에 안가를 마련하고 호남 출신 직원들을 불러 작성했다”고 적었다.
조사위는 “내사결과 김00(6급)는 87년 대선 전에도 부 보고서 및 문건을 DJ 측에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지역간 싸움’으로 비화를 우려해 감찰조사치 못하고 88년 6월 00지부로 발령됐다”고 적었다. 본지가 입수한 당시 살생부에 따르면 국정원은 직원들을 오직 출신지역으로만 분류해 문건을 만들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위는 “인사실무위 시 강제퇴직 대상자에 대해 어떤 근거로 가부를 판단했는지에 대한 사실 확인이 불가했다”면서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위는 “(강제퇴직 직전) 자택 대기 근무자가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부 발탁인사에 의해 자신들이 직권면직당한 것이 부당하다는 등의 법적 주장을 할 경우를 대비한 검토결과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DJ 국정원도 문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조사위는 4급 이하 보직 인사와 관련해서도 “DJ 국정원은 4급 이하 보직 인사 시 발탁을 제외하더라도 공석이 잔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 개혁인사라는 명분으로 무리하게 무보직 발령 후 명퇴·의원면직을 강행해 인사파행을 자초했다”고 적었다.
4급 이상 00국 근무자 및 후임자 출신지역을 분석해본 결과 퇴직자의 37.3%가 영남 출신인 반면 후임자의 33.3%가 호남 출신이었다며 동인사가 살생부 등을 근거로 한 영남축출 및 호남의 주요보직 장악을 위한 정지 작업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고 분석했다.
DJ 국정원은 99년 2월 13일 명예퇴직을 거부한 대기발령자들의 자진 퇴직 유도를 위해 동문 등 연고 직원들을 순화담당관으로 지정해 운영했다. 이들 순화담당관 중 81%가 승진 또는 주요보직에 보임됐다.
그러나 국정원은 02.11.25~08.7.10간 진행된 국강진 소송 시 의원면직 및 명퇴가 자의에 의한 것임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표제출을 종용하기 위한 순화책임자를 지정한 사실이 없음’이란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했다면서 위증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5급 이하 직원의 경우 특별한 비리나 비위사실이 없음에도 징계위 회부 등 강박을 통해 의원면직을 계획하는 등 부당행위 실행을 검토한 사실도 드러났다.
면직자들의 소송과정(99.4~07.7)에서는 “국정원이 승소를 위해 핵심 쟁점에 대한 각종 증거자료 위변조 및 공문서 허위작성 등 조직적으로 대처했다”면서 “박00 전 00국장이 퇴직 직원에게 유리한 ‘사실확인서’를 증거자료로 제출하려 하자 유관부서 합동대책회의를 개최, 소송에 유리하게 조직적으로 내용을 변경(03.3.10)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적었다.
국정원은 재판부의 사실조회 회신(03.10.15) 시 소송의 핵심쟁점이던 순화책임자 운영 및 사표제출 종용, 특별격려금 지급 등 회유 강압사실을 부인했다. 법원의 국정원 조직 확대개편 여부에 대한 석명 요청 시 정원이 수차례 증감하였음에도 정원조정 전무로 회신(05.9.20)하는 등 자료변조 및 허위답변을 지속했다.
대통령의 명예퇴직 신청 재가 등 인사명령 경위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05.11.1)하여 상고심까지 인용함으로써 승소에 유리하게 악용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순화담당관 운영 및 명예퇴직 강압사실을 부인하는 등 직원들에게 위증을 지시하면서 00호텔에서 증언 예행연습을 실시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3급 이상 간부 명퇴는 대통령 결재사항이나 대통령 결재를 득하지 않고 처리한 위법행위도 확인됐다. 98.12.19일자 인사발령안(명예퇴직)은 당시 이00 국정원장이 “연말이라 바빠서 대통령 결재를 가지 못하겠다”고 하여 대통령 보고 없이 원장 결재만으로 이뤄지는 등 절차상 문제점을 시인했다.
박00 당시 00계장은 조사과정에서 “법정 증언당시 명퇴강요 및 순화책임자 지정여부 등 원고 측 변호사 심문에 대해 모두 부인했었으나 이는 당시 국정원 직원 신분으로 고00 전 국정원장과 김00 전 실장의 소송 철저 대응 지시에 따라 허위 사실을 진술한 것”이라며 법정에서 허위 증언한 사실을 인정했다.
특히 당시 사건에는 국정원 인사과 계장을 지낸 현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의원은 인사과 계장을 지내면서 증거조작 등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 의원은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과 대법원에서는 위조에 관여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사위는 결론에서 “지난 98년 시행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면직조치는 DJ정부 출범 직후 정권교체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 원내외 호남 출신 실세들의 주도하에 자의적으로 이뤄진 위법·부당한 처분으로 당시 표방한 구조조정 목적과는 달리 호남 출신 중용 및 영남 출신 직원 퇴출을 위한 정치적 목적이 내재되어 있는 등 면직처분 자체가 형식·내용 전반의 중대한 하자로 무효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적었다.
다만 조사위는 강제퇴직 실행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조사위는 “이00 전 국정원장, 이00 전 실장 및 DJ정부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직접 조사가 사실상 불가하여 강제퇴직의 실질적인 시행주체는 특정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정치보복용으로 작성한 거 아냐” MB정부 보고서에 곱지 않은 시선 김대중(DJ) 정부가 영남 출신 국정원 직원들을 불법적으로 강제퇴직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 보고서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이명박(MB)정부 역시 정치적 성향이 다르거나 호남지역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가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정치보복용으로 작성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DJ 정부 전까지 국정원 고위직 자리를 영남권 출신들이 장악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DJ 정부 때의 호남 출신 우대 인사가 불가피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국정원 인사처장 출신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B정부 원세훈 국정원장은)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 무자비한 공포를 동원했다”며 “일례로 2, 3급 고급 간부들을 ‘삼청교육대’라는 교육에 입소시켜 목봉 체조를 시키는 굴욕을 줬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원 전 원장의 패악질에 가까운 인사로 많은 직원이 고통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병이 나 숨진 케이스도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정원 직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국정원 교육훈련 발령을 두고 ‘삼청교육대’ 입소라는 표현이 나온 게 바로 원세훈 원장 시절이다. 원 전 원장의 취임 후 보직에서 밀려난 2~4급 직원 수십 명이 국가정보대학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 프로그램에는 해병대에 입소해 목봉체조나 유격훈련을 받는 과정도 있었다. 인사 발령이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자주 있다 보니 누가 언제 교육발령을 받을지 몰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교육 대상은 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중용된 인물들이었다. 당시 국정원이 해병대식 훈련 과정을 넣은 것은 정신적·육체적 모멸감을 줘 스스로 퇴직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있다. <시크릿 파일 국정원>의 저자인 김당 씨는 책에서 “부임하자마자 원세훈은 자신에 대한 반감을 인사와 조직 장악으로 응수했다. 정기 인사철이 아닌데도 수시로 직원의 보직을 바꾸는 무원칙 인사, 줄 세우기 인사가 만연하면서 국정원의 정보관·조정관들이 자신의 전문성과 관련 없는 부서로 배치되는 경우가 잦았다. 원세훈은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원주사(고위직임에도 자잘한 것까지 챙겨 생긴 별명)’답게 6급 인사까지 챙기고 정보 문외한이라는 자격지심에서인지 정보 관리 또한 역대 어떤 원장보다도 꼼꼼하게 챙겼다”고 적었다. 원 전 원장 재임 기간 약 10명의 국정원 요원이 사기 저하로 자살했다는 내용이 국제기구 보고서에 실리기도 했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분쟁 예방 비영리조직인 국제위기그룹(ICG)이 2014년에 발간한 ‘한국 정보기관 병적 증상의 위험성’이라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대해 김병기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10명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알고 있기로는 5명 이내”라며 “원 전 원장의 패악질에 가까운 인사로 많은 직원들이 고통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분명하게 그런 것으로 인해 발병해 숨진 케이스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