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손녀뻘과 스캔들. 욕정일까 부정일까
이탈리아 남성들을 가리킬 때 흔히들 쓰는 표현이다.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여자들에게 마음 놓고 추파를 던질 수 있는 게 바로 이탈리아 남성들이다. 그만큼 이성교제에 있어서 개방적이고 거리낌 없으며, 심지어 ‘아름다운 여성을 유혹하지 않고 가만히 두는 것은 결례’라고 말하는 호기어린 남성들도 많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까지 주책없이 군다면 문제가 다를 것이다. 누가 뼛속까지 이탈리아 남자 아니랄까봐 전형적인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72)다. 숱한 여성 편력과 바람기를 자랑하던 그가 최근에는 자신보다 무려 54세나 어린 18세 소녀와 스캔들이 터져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부인 베로니카 라리오(52)는 “이젠 더는 못 참겠다”면서 결혼생활이 끝났음을 알렸다.
사실 두 번째 부인인 라리오와도 불륜을 통해서 맺어진 사이였다. 1980년 라리오의 연극을 관람하러 왔던 베를루스코니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했으며, 결국은 10여 년의 밀애 끝에 첫 번째 부인을 버리고 재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랑은 변한다고 했던가. 19년이 지난 지금 둘은 다시 이혼 채비를 하느라 바쁜 모습들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남남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왔던 라리오가 이혼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최근 터진 18세 소녀와의 스캔들이었다.
문제의 사건은 지난 4월 불거졌다. 베를루스코니가 나폴리에 사는 노에미 레티치아라는 소녀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밤늦게 파티에 도착한 베를루스코니는 손님들과 함께 샴페인을 마시면서 사진도 촬영했으며, 소녀에게는 6000유로(약 1000만 원)를 호가하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목걸이와 책 한 권을 선물로 전달했다.
속옷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 금발의 소녀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를 ‘아빠’라고 부른다. 그도 나를 보면 딸이 생각난다고 했다”고 말하면서 “아빠는 나를 키운 것과 다름없다. 항상 나에게 다정하고 친절하신 분이다. 한번은 작은 다이아몬드를, 또 한번은 팔찌를 선물해주셨다”며 매년 생일선물을 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한 사이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아주 어릴 때부터 그를 알고 지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로마나 밀라노로 가서 그를 방문하곤 했다. 그저 가족끼리 알고 지내는 사이일 뿐인데 왜 이렇게 난리들인지 모르겠다”면서 오해는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미 산전수전 다 겪어 눈치만 10단임을 자처하는 라리오는 이 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 <라 레푸블리카>와의 인터뷰를 통해 분노를 폭발시킨 그녀는 “우리 애들 18세 생일파티에는 단 한번도 참석 않던 인간이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미성년자들과 놀아나는 남자 옆에서는 하루도 더 못 살겠다”라고 비난하며 명백한 원조교제임을 주장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베를루스니코니 측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그는 토크쇼 프로그램인 <포르타 포르타>에 출연해서 아내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내가 미성년과 놀아난다니 미친 줄 아나?”라며 화를 냈으며 “아내가 좌파가 퍼뜨린 헛소문에 놀아나고 있다. 아내는 선거 때마다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나에게 공개 사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소녀와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친구의 딸일 뿐이며, 친구의 부탁으로 생일파티에 참석했던 것이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라고 당당하게 맞섰다.
베를루스코니가 친구 사이라고 주장하는 레티치아의 아빠인 베네데토 레티치아도 거들고 나섰다. 영국의 일간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자청한 그는 “생일파티에 베를루스코니를 초대한 건 딸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마침 베를루스코니가 공식 업무차 나폴리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즉흥적으로 그를 파티에 초대했다는 것이다. 베를루스코니 또한 “6월 유럽의회선거와 관련해서 베네데토와 함께 후보들에 관해 논의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초대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또한 목걸이 선물에 대해서도 베네데토는 “전혀 계획된 것이 아니었던 걸로 안다. 갑자기 초대를 받고는 오는 길에 급하게 사온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별 의미를 두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말은 달랐다. 동네 주민들은 레티치아 가족이 베를루스코니와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놀라워하는 눈치다. 한 주민은 “수년 동안 그 집안과 알고 지내왔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며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수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유럽의회 후보에 관해 소녀의 아버지와 논의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베네데토는 정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그런 사람에게 도대체 한 나라의 총리가 무슨 의논을 한다는 건지 의아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결국은 소녀가 베를루스코니의 사생아라는 소문까지 퍼지고 말았다. 소녀가 그를 ‘아빠’라고 부른다는 점, 레티치아 가족과의 불분명한 관계 등이 이런 소문을 부추기고 만 것이다.
▲ 위 사진 노에미 레티치아 아래 사진 마라 카르파냐 | ||
하지만 더욱 재미있는 것은 레티치아가 정계에 진출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는 데 있다. 이 소녀는 언론을 통해 “하원의원에 도전해보고 싶다. 결정은 ‘아빠’가 내려줄 것”이라고 당돌하게 말하면서 자신의 최종 목표는 정치임을 시사했다.
사실 베를루스코니의 화려한 여성 편력 뒤에는 이처럼 정계로 진출하려는 여성들의 꿈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벌어진 대부분의 스캔들도 그랬다. 베를루스코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TV 탤런트, 배우, 모델들 가운데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사례는 심심치 않게 있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현 기회균등부 장관인 마라 카르파냐(33)가 있다. 살레르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녀는 TV 방송 진행인, 토플리스 모델, 미스 이탈리아 6위 등을 거쳐 마침내 지난 2006년 정계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 문외한, 백치미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당시 하원의원에 당선됐던 그녀는 2008년 재선에 성공했고, 마침내 지난해 5월에는 베를루스코니에 의해 장관으로 임명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녀와 베를루스코니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불거져 왔다. 2007년 말 TV 시상식 만찬에서 베를루스코니가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카르파냐에게 밀어를 속삭이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던 것이다. 당시 그는 미모의 이 의원에게 “내가 만일 결혼만 하지 않았더라면 당장 당신과 결혼했을 텐데”라며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 가겠다. 무인도라도 상관없다”라고 속삭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카르파냐가 장관에 임명됐을 때에도 둘 사이의 핑크빛 소문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당시 베를루스코니는 카르파냐를 포함해서 환경부, 교육부, 청소년부 등에 모두 네 명의 여성 장관을 기용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들 중 한 명이 베를루스코니와 외도를 벌인 대가로 감투를 썼다”고 쑥덕대면서 클린턴-르윈스키 스캔들에 버금가는 대형 스캔들이라고 보도했다. 곧 이 문제의 장관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렸고, 얼마 안 가 카르파냐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유명 정치인의 딸이자 코미디언인 사비나 구잔티가 언론을 통해 “카르파냐가 몸을 팔고 장관직을 따냈다”고 폭로한 것이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베를루스코니의 여배우 청탁 혐의를 수사하던 경찰이 베를루스코니와 RAI 국영방송국 사장과의 통화 내용을 감청하던 중 카르파냐와 성관계를 맺었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르퍄냐는 “천박하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하면서 구잔티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능력보다는 미모로 사람을 뽑는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베를루스코니의 미녀 사랑은 막무가내인 듯하다. 최근에는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할 후보들로 미녀 군단들을 대거 추천할 뜻을 내비쳐서 또 한차례 구설에 올랐다.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나는 유럽에 새로운 이미지를 불어넣고자 한다. 나는 참신하고 젊은 얼굴을 원한다”고 발언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재 그의 물망에 오른 여성들은 누드모델인 카밀라 페란티(30), 미스 이탈리아 출신인 바바라 마테라(28), <빅 브라더> 출연배우인 안젤라 소치오(31), TV 방송인 엘레오노라 가지올로(29) 등 모두 정치와 무관한 인물들이다. 게다가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라는 점도 문제긴 마찬가지다. 이에 라리오는 “창피한 줄 모르는 쓰레기 같은 발상”이라고 비난하면서 “남편은 여성들의 몸매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정상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며 그의 여성 편력에 넌덜머리를 냈다.
▲ 왼쪽 사진 안젤라 소치오 오른쪽 사진 카밀라 페란티 | ||
세상에 어떤 총리가 의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날린단 말인가. 그런데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이 여성의원들의 답장이었다. 모욕감을 느끼거나 충격을 받기는커녕 “오직 당신하고만 근사한 데이트를 하고 싶은데요”라고 답한 것이다.
또한 1986년 새해 전야에는 한 친구와의 통화에서 크락시 당시 총리를 위해서 현재 TV 쇼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여성 두 명을 유혹하고 있다고 말하는 내용이 도청되었는가 하면, 2003년에는 유부녀 아나운서였던 버지니아 디 토일라다에게 반해서 꽃다발과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등 데이트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현재 베를루스코니의 지지율은 70%를 넘고 있으며, 집권당 역시 40%가 넘는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왜 이탈리아인들은 베를루스코니에게 관대한 걸까. 이에 대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그럴듯한 답을 제시했다. “이탈리아인들은 베를루스코니를 자신들처럼 전형적인 이탈리아 사람이라며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혼이란 결코 정치 생명에 도움이 될 수는 없는 법. 이런 이유인지 현재 베를루스코니는 부인에게서 한발 물러선 듯 보인다. 그는 “난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가 원한다면 하는 수 없다. 단지 유럽의회 선거가 끝나는 6월 후로 미뤄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