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왕세자비 밤엔 성노예였다.
동화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왕자님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라는 결말은 현실에서는 과연 불가능한 걸까. 영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왕족들의 결혼생활은 늘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내리게 마련이다. 아무리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도 시간이 지나면 별거나 이혼 등 불화설이 퍼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의 왕세자비가 결혼한 지 1년도 못 되어 가까스로 말레이시아를 ‘탈출’해서 화제가 됐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탈출’이라는 말까지 나온 걸까.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왕세자비가 아니라 왕자의 성노예에 불과했으며, 왕실에서의 하루하루는 천국은커녕 생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아시아의 신데렐라’로 불리며 뭇여성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마노하라 오델리아 피노(17)는 지난해 8월 16세의 어린 나이에 말레이시아의 케랑탄주 군주 집안에 시집을 갔다. 그녀를 신부로 맞은 왕자는 그녀보다 열네 살이나 많은 텡쿠 테멩공 모하메드 파크리 왕자(31)였다.
당시 둘의 결혼은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그녀의 고향인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대단한 화제를 불러 모았다.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의 결실이란 점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거니와 아름다운 외모로 어린 시절부터 모델 활동을 해왔던 피노의 인기도 여기에 한몫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피노는 이국적인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로 인도네시아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미 패션 아이콘으로 유명했다.
또한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에 의해 ‘인도네시아의 가장 아름다운 100인의 여성’ 중 한 명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결혼 전까지 인도네시아와 미국을 오가는 전문 모델로 일해왔다.
그녀가 파크리 왕자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6년 12월 나지브 라자크 말레이시아 부총리가 주최한 만찬에서였다. 당시 14세의 어린 소녀였던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파크리 왕자가 먼저 그녀의 어머니에게 접근해왔다. 그는 피노의 어머니인 데이지에게 “제가 따님과 친구가 되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어왔고, 왕자의 매너 좋은 태도와 왕족이라는 배경에 매료된 어머니는 흔쾌히 둘의 만남을 허락했다.
그렇게 해서 만나기 시작했던 둘은 교제를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피노는 아부리잘 바크리 인도네시아 복지부 장관의 아들인 아드리 바크리를 사귀고 있었지만 파크리 왕자를 만나기 시작하면서는 관계를 청산하고 왕자를 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둘의 결혼은 처음부터 여러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우선 피노가 아직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아무리 왕족과의 결혼이긴 해도 무조건 축하하기보다는 되레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랑스인인 양아버지도 처음에는 딸의 결혼을 적극 반대했다. 하지만 피노의 부모는 왕자의 예절 바른 태도와 다정다감한 마음씨 그리고 왕자의 끈질긴 구애에 결국 못 이기는 척 결혼을 승낙했다.
이때만 해도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던 둘은 영락없는 동화책 속의 행복한 왕자님과 공주님이었다. 하지만 행복하게만 보였던 동화는 얼마 안 가 끔찍한 악몽으로 변하고 말았다.
▲ 악몽의 시작 말레이시아 파크리 왕자와 인도네시아 10대 모델 피노의 만남. 이들의 결혼은 1년도 안돼 막을 내렸다. | ||
하지만 이때만 해도 피노와 그녀의 가족들은 이혼까지는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파크리 왕자가 반성하는 기미가 역력했고, 어떻게든 피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왕자는 피노의 17세 생일을 맞아 고급 승용차를 선물했는가 하면, 지난 2월에는 피노와 피노의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을 사우디아라비아 성지 순례 여행에 초대했다. 양가가 함께 여행을 하면서 화해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고 여행이 끝나면 온 가족이 함께 말레이시아를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여행 마지막 날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파크리 왕자가 피노의 가족을 따돌리고 피노를 납치해버린 것이다. 왕자의 개인 제트기를 타고 모두 함께 말레이시아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던 피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렇게 활주로에 남겨진 채 멀리 떠나는 제트기를 허망하게 바라봐야 했다.
그 후 지속적으로 언론을 통해 딸이 납치됐다고 주장해온 데이지는 “당장 딸을 돌려보내라”며 케랑탄 왕족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상하게도 데이지의 말레이시아 입국을 금지시키면서 케랑탄 군주의 편을 들어줬다. 이에 데이지는 “엄마가 딸을 못 만나게 한다는 것, 더 나아가 사람이 사람을 못 만나게 막는다는 것은 엄연한 인권침해”라며 세계인권단체를 통해 하소연했다.
다른 나라의 눈을 의식한 말레이시아 정부가 뒤늦게 그녀의 입국금지 조치를 취소하긴 했지만 데이지는 “무서워서 말레이시아에는 못 들어가겠으니 딸을 이쪽으로 보내든가 제3국에서 만나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사건이 커질 듯 보이자 케랑탄 왕족 측은 말레이시아의 <뉴스트레이츠타임스> 일간지를 통해 피노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납치에 대한 소문을 무마하고자 애썼다. 말레이시아 부통령의 결혼식에 남편과 나란히 참석한 피노는 사진 속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었으며, 얼굴 표정도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데이지는 “사진은 절대로 모든 걸 말할 수 없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왕족 측이 딸과 연락을 못 하도록 막고 있다”며 딸이 납치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4월 그녀는 다시 한번 기자회견을 열어 놀라운 사실을 폭로했다. 케랑탄 왕족 측이 자신에게 사람을 보내 100만 달러(약 12억 원)의 아파트 한 채와 현금을 줄테니 딸과 완전히 연락을 끊으라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를 완강히 거부했던 데이지는 “설사 그들이 세상 전부를 준다고 해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내 딸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며 울부짖었다.
▲ 파크리 왕자와 피노의 다정한 한때(위 사진). 피노는 공식석상에서 미소를 짓지 않으면 갖은 협박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 ||
그러던 찰나 마침내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말 시아버지인 술탄 이스마일 페트라 샤 2세를 모시고 병원 진료 차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피노가 시댁 식구 몰래 탈출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호텔에 머물고 있던 그녀는 한밤중에 싱가포르 경찰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문제의 심각성을 눈치 챈 싱가포르 경찰이 즉각 호텔로 출동했다. 경찰은 왕족 가족에게 피노를 놓아줄 것을 명령하면서 “만일 그녀를 계속 강제적으로 억류할 경우에는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도 왕족 측이 요지부동이자 싱가포르 경찰은 하는 수 없이 미국과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사건이 더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은 파크리 왕자가 한발 물러섰다.
이렇게 해서 극적으로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 피노는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파크리 왕자의 잔혹함을 세상에 낱낱이 폭로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왕궁에서의 생활은 ‘지옥’과 다름 없었다. “난 노예처럼 살았다”라고 말문을 연 그녀는 “매일 남편으로부터 성폭행과 학대를 당했고, 강제로 약물을 투여받거나 고문을 당했다. 이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내가 잠자리를 거부할 때마다 남편은 나를 강제로 성폭행했다. 내 몸의 군데군데에는 면도날로 베인 상처가 여럿 있다”며 끔찍했던 결혼생활을 회상했다. “정말 남편이 유두를 잘라냈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구체적인 답변을 꺼리면서도 “그렇다. 내 신체 일부분이 면도날로 잘렸다”라고 답했다.
이밖에도 그녀는 그동안 언론에 비친 자신의 행복한 모습은 모두 거짓이었으며, 왕자가 공식 행사장이나 대중 앞에서 미소를 짓지 않으면 고문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았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고문이란 신경안정제를 강제로 투입하는 것으로 이 때문에 그녀는 피를 토할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거의 하루 종일 궁전의 침실에 갇혀 지냈다고 말하면서 “나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아내가 아니라 남편의 성적 대상이었다”고 폭로했다.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경호원에 의해 붙잡혀 다시 감금되곤 했기 때문에 도무지 도망칠 기회가 없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파크리 왕자 측은 “피노가 주장하는 학대, 고문은 절대로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녀가 싱가포르를 탈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내준 것”이라고 상반된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피노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이면서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수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정부 양측은 행여 이번 사건이 양국 간의 외교 문제로 비화되면 어쩌나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