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나눠 줄게 당권 넘겨 다오’
▲ 히가시고쿠바루 히데오 미야자키 현 지사 | ||
그러나 그의 인터뷰나 블로그를 통해 드러난 심정은 그의 제안이 결코 농담만은 아닌 커다란 야심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1957년 미야자키현에서 태어난 히가시고쿠바루는 1980년 12월 토너먼트식 개그 방송에서 챔피언이 되면서 연예계에 입문했다. 그 후 기타노 다케시를 중심으로 한 다케시 군단에서 드라마 집필 등으로 활약하며 만난 여배우 가토 가즈코와 결혼했다. 1998년부터는 미성년자가 일하고 있는 이미지 클럽(일본 풍속업소의 한 종류)에서 서비스를 받은 일과 후배를 폭행해 전치 1년의 부상을 입힌 일 등으로 ‘한물 간 사고뭉치 연예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지만 돌연 와세다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하며 정치가의 꿈을 키웠다. ‘정치가가 되고 싶으면 이혼부터 하자’는 가토 가즈코와 헤어지면서까지 미야자키현 지사 선거에 출마해 집권당인 자민당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된다. 그 후 자신을 ‘미야자키현의 세일즈맨’이라 자처하며 몸을 사리지 않고 뛰는 모습과 서민적 이미지의 친근함으로 지지율 1위의 정치가로 급부상했다.
자민당의 고가 마코토 선대위원장은 지난 6월 23일 히가시고쿠바루 지사에게 중의원 총선에 입후보할 것을 제안했다. 높은 대중적 인기의 ‘스타 정치인 모시기’에 나선 것.
이에 대해 히가시고쿠바루 지사는 “나를 자민당의 총재후보로 세워 차기 선거에서 싸울 각오는 돼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자민당의 요청에 ‘총재선거 출마권’과 ‘지방분권을 위한 9가지 항목’을 입후보 조건으로 요구했다. 그의 조건에 대해 일본 언론과 국회는 “갑자기 총재후보라니 연예인다운 발상이다. 국민을 우롱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는 한편, “자민당이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입후보를 원치 않음을 알리려고 한 것은 아닐까”하는 등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가 내민 조건은 정중한 거절을 위한 것이 아닌 진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측근에 따르면 ‘미야자키에 뼈를 묻을 각오’를 공언한 히가시고쿠바루 지사가 취임 당초부터 미야자키현을 발판으로 국정에 나갈 뜻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현관계자는 “관동지역의 비례구에서 1위의 득표율을 얻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2년 뒤 도지사 선거에 나가 승리하는 것이 그가 짠 시나리오. 그런데 갑자기 전개된 자민당의 프러포즈로 히가시고쿠바루에게 찬스가 온 것이다. ‘총재 자리 요구’도 퍼포먼스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 아소 다로 총리 | ||
한편 이 일기를 쓰기 4일 전인 6월 26일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미야자키는 이제 괜찮다”며 “마니페스토는 이미 80%는 달성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일까. 전 현정관계자는 “올해 1월 와세다대학 마니페스토 연구소가 채점을 하는 검증회를 열었다. 그곳에서 84점이라는 평가를 얻었지만 마니페스토 연구소의 소장인 키타가와가 히가시고쿠바루 지사와 지인이라는 등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채용이 정말 힘들다. 파견직마저 해고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사가 유명인이 된 덕분으로 현청에 관광버스가 오거나 하지만, 표면적인 증가일 뿐이다. 관광산업의 발전이 수익창출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많다”라며 미아자키 현의 현실을 꼬집었다.
히가시고쿠바루 지사는 지금까지 TV와 CM 등에 무료로 출연하며 미야자키현의 홍보를 위해 애써왔지만 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지사가 마니페스토에서 제시한 실적이 달성됐다는 보고를 들은 바 없다. 지역특산품을 개발하고 파는 일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개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작가 아소 치아키는 “당선 후 미야자키의 톱 세일즈맨으로 텔레비전에서 홍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일부러 미야자키에서 멀리 떨어진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보며 그의 ‘본질’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뼈 속 깊은 곳까지 탤런트다. 지역을 어필하는 데는 그런 점이 먹힐지도 모르겠지만 프로페셔널한 정치가를 필요로 하는 국정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라며 덧붙였다.
하지만 어찌됐건 지지율이 급락한 자민당이 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두고 ‘인기 정치가’ 섭외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은 당연지사. 특히 지사 취임 이후 90%대 이상의 지지율과 발로 뛰는 ‘서민 이미지’로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히가시고쿠바루는 현재의 자민당 입장에서 탐낼 만한 존재다. 그러나 자민당 내의 분위기는 썰렁하다. 마루야마 가즈야 하원의원은 “고가 위원장에게 진의를 묻고 싶다. 당내에 선거에서 이길 에너지를 가진 인물이 없다고 인정해버린 것이 책임자의 태도로 올바른 일이었는지”라며 비판하고 있다.
한편 6월 29일 일본 TV 보도방송에서는 히가시고쿠바루 지사와 가와카미 가즈오 변호사(72)의 토론 중계로 화제를 낳았다. 가와카미 변호사는 그의 인기가 “TV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언제 하락할지 모를 일”이며 “지방분권을 외치는 것만으로 국가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자민당의 정책을 바꾸고 싶다면 제대로 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사에게 국제, 재정, 의료 등의 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히가시고쿠바루 지사는 “지방분권 이외의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고 반론하는 한편, 가와카미 변호사에게 “말투가 이상하다”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일본의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이날의 배틀이 화제가 되어 “가와카미의 도발에 넘어간 히가시가 바보다”, “히가시고쿠바루를 비판하기에 바빠 아무 것도 안하는 의원들보다 나라를 바꾸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히가시고쿠바루를 응원하겠다” 등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다. 총리를 꿈꾸는 히가시고쿠바루 지사가 국민에게 지속적인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그에게 국민들이 걸고 있는 가장 큰 기대인 ‘뿌리깊은 지역격차 문제’에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를 향한 국민들의 사랑이 지속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