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단 ‘그들’ 뭔가 통했나
하지만 김 씨는 지난해 말 여연 부소장으로 첫 임명됐을 때만 해도 당내에서 거의 ‘왕따’ 수준이었다. 당시 김성조 연구소장 밑에서 첫 당직을 맡았던 김 씨는 여연에 착근을 하지 못해 업무에서 겉돌며 소외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소통’이 되고 있는 친 이재오계의 진수희 의원이 지난 6월 여연 소장으로 들어오면서 최근에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 씨는 김영삼 정권 때의 핵심 포스트 역할을 밑천 삼아 이명박 정권에서 자신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향후 정치적 입지를 확대해갈 계획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현철 씨의 본격적인 정치 복귀 움직임을 따라가 봤다.
“대통령 아들이 아니라 김현철로서 역량을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는 지난해 10월 말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임명되면서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사실 그의 정계복귀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지난 98년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뒤 사면 복권됐지만, 그 후유증으로 지난 17대와 18대 총선에서 연거푸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특히 18대 공천의 경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의 후원자로서 대선 과정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 그의 정계복귀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이 어느 정도 기대를 가졌음에도 결국 벌금형 이하에 대해서만 공천 신청을 받기로 한 당의 방침에 가로막혀 ‘대통령의 아들’은 정계 복귀의 뜻을 접어야만 했다. 이 때문에 한때 김 전 대통령과 청와대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그런데 김 씨는 지난해 10월 말 한나라당 정책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공식 임명되면서 정치생활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당시 박희태 대표는 이에 대해 “현철 씨가 지난 10년 동안 자성의 세월을 보냈다. 특히 최근 별세하신 할아버지가 생전 가장 사랑하는 손자가 사회진출의 문이 닫힌 데 대해 가슴아파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김 씨의 복귀를 열렬히 지지했다.
▲ 김영삼 전 대통령 | ||
하지만 지난 6월 진수희 의원이 여연의 새 소장으로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여연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철 씨가 처음 여연에 들어왔을 때는 분위기가 ‘왕따’ 수준이었다. 비상임 부소장이라고는 하나, 하는 일이 딱 정해진 것이 없어 더욱 겉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진 소장이 취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진 소장은 부소장이나 팀장에게 개별 프로젝트를 지시하고 진행시키고 있다. 현철 씨도 최근 프로젝트를 많이 맡은 것으로 안다. 그는 비상임이지만 이틀에 한 번꼴로 출근하면서 열심히 프로젝트를 챙기고 있다. 이제는 부소장직에 완전히 착근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 씨는 최근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지만 여권 내 자신의 위상 제고에도 열심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영삼 정권 때부터 인연을 맺었던 현 여권 인사들과 최근에도 자주 연락하며 정치적 재개를 모색하고 있는 것. 사실 김 씨의 ‘숨은’ 인맥은 현 정권의 정무라인을 비롯해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다. 그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철 씨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으로 이견이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남다른 국가의식이 있고 문제의식이 뚜렷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현철 씨 연락을 자주 받으면서 한때 국정 운영의 핵심이었던 사람의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의 향후 역할을 기대해 본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금도 청와대 인맥들과 수시로 통화를 하면서 국정 운영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 이재오 전 최고위원 | ||
특히 김 씨는 여권 내 최대 현안인 ‘이명박-박근혜 갈등’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이에 대해 “보수정권의 집권연장을 위해 ‘징검다리’ 정부가 돼야 한다는 각오를 이명박 대통령이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이 친박도, 한나라당도 새로운 보수 결집을 이뤄낼 수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김 씨는 지난 90년대 초반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에 이미 여론조사를 정무 판단의 최우선 요소로 삼을 만큼 여론에 민감했다. 그래서 비관적으로 보였던 김영삼 정권의 96년 지방선거 압승도 이끌어 낸 바 있다. 김 씨는 그런 자신만의 노하우를 이명박 정권에서 쏟아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 실천이 여연 부소장 임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의도 정가에서는 ‘한 번 진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본다. 김 씨는 이미 김영삼 정권 때 권력의 최정점을 경험해본 ‘실세’로서 활동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냉혹한 정치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김 씨를 잘 아는 여권의 핵심 인사들은 그가 가진 정치적 자산과 노하우가 그냥 묻히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말한다. 김 씨는 현재 여연에서 어떤 연구원 못지않게 왕성한 연구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의욕이 정치권 핵심 진입의 전초 단계라는 관점에서는 그 진정성이 의심받게 된다. 그를 잘 아는 여권 관계자들도 이런 점을 우려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길 홍업 홍걸 씨의 예를 보듯이 ‘대통령의 아들’이 정치적으로 롱런을 한 경우는 없다. 그런 점에서 김 씨는 역대 대통령의 아들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정치실험을 하고 있다. 과연 그는 대통령의 아들이란 굴레를 벗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성기노 기자 kini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