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안에서 녹다운… 링밖에선 승리할까
▲ K-1이 따로 없네 7월 22일 미디어법이 의장 직권상정으로 처리되자 여야가 물리적 충돌을 빚어 곽정숙 민노당 의원, 여야 보좌관 등 수십명이 다치는 상황이 벌여졌다. 아래사진은 지난 24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사퇴 입장을 밝힌 정세균 대표.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 | ||
여기에 일부 강경파들 사이에서는 지도부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고, 비주류 일각에서는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장외 투쟁은 현실적 한계가 있는 만큼 무소속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전 대표, 친노그룹 핵심 인사 등 범민주계 거물들이 모두 참여하는 전대를 통해 제1야당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여 투쟁 노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민주당의 ‘대도박’ 카드가 성패를 떠나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정국에서 야권의 권력구도 및 대권지형에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과연 ‘미디어 폭탄’을 맞은 민주당이 ‘사즉생’의 각오로 띄운 대도박 승부수는 성공할 수 있을까.
7월22일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로 미디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대여 전면투쟁을 선언한 민주당은 24일 ‘의원직 총 사퇴’라는 최강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뒤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사퇴서를 제출했고, 최고위원들도 전날(23일) 비공개 간담회를 통해 총사퇴를 결의했다.
23 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의원직 총사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강경파 의원들은 “더 이상 18대 국회에서 기대할 것이 없으니 의원직을 총사퇴하고 전면적인 장외투쟁에 나서자”고 주장한 반면 온건파 의원들은 야 4당이 ‘미디어 법안 처리 무효’ 선언을 한 만큼 원내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난상토론 끝에 결론을 못 내리고 다음날(24일) 재개된 의총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의원직 총사퇴’ 카드에 방점을 찍고 70명이 넘는 의원들이 사퇴서를 제출한 뒤 국회 제출 여부는 정 대표에게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민주당은 방송법 등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의 청구인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의원들의 경우 의원직을 유지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 대다수가 ‘의원직 총사퇴’라는 초강수를 두게 된 배경에는 “여기서 물러나면 끝장”이라는 위기감과 함께 투쟁 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육책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수적 열세에 밀려 미디어법안 전쟁에서 패한 만큼 지금은 책임론을 따지기보다는 정세균-이강래 투톱 체제로 대여 투쟁 노선을 구축해 위기정국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논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의 ‘의원직 총사퇴’ 승부수는 ‘정치적 쇼’로 비춰져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의원직 사퇴서가 수리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본회의 의결로 (의원의) 사직을 허가할 수 있다. 다만 폐회 중에는 의장이 이를 허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과거에도 정부 각료에 임명되거나 일신상의 사유로 의원직을 그만두는 사례는 있었지만 정치적인 사유로 제출된 의원직 사퇴서가 수리된 적은 거의 없었다. 민주당 온건파가 ‘의원직 총사퇴’는 자칫 ‘정치적 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신중론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원직 총사퇴와 장외 전면 투쟁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본격적인 휴가철과 하한정국이 시작되면서 장외 투쟁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는 퇴색될 수밖에 없고, 개각카드와 민생행보 등으로 전면적인 국면전환을 꾀하고 있는 여권의 승부수에 또다시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범민주계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장외 투쟁 등 극단적인 노선이 아닌 ‘대안 야당’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대여 강경 투쟁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거대 여당을 상대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뿐더러 코앞으로 다가온 10월 재보선이나 내년 지방선거 정국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없다는 위기감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7월 23일 기자와 만난 범민주계 A 전 의원은 “민주당이 미디어 전쟁에서 완패한 배경에는 수적 열세를 떠나 지도부의 안일한 대처 등 전략 부재 및 한계를 드러낸 탓이 크다”며 “혹독한 자기반성이나 노출된 당내 문제는 뒷전으로 미루고 장외 투쟁만 고집한다면 어느 국민이 지지하겠느냐”고 지적했다. A 전 의원은 이어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정세균 대표는 야성과 대중적 인지도가 낮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며 “범민주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잠룡들이 모두 참여하는 전당대회를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해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동시에 민주개혁 진영의 대통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지도부 책임론과 조기 전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정치적 쇼’로 비춰질 수 있는 ‘의원직 사퇴’ 대신 당 대표 사퇴 등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조기 전대를 통해 범민주계의 대통합을 이끌어 내 대안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주의 위기론’을 주창하고 있는 ‘병중’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민주당 중심의 민주개혁 진영 대통합론을 주문하고 있는 상태다. 또 김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박지원 의원은 무소속 정동영 의원과 친노 핵심 인사들의 복당론을 설파하는 동시에 손학규·김근태 전 대표의 10월 재보선 출마론을 주장하고 있다. 난파 위기에 처한 ‘민주호’를 구하기 위해서는 계파를 떠나 범민주계 거물들이 모두 민주당 안으로 들어와 대통합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복심이 투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 안팎의 비주류 일각에서는 이참에 조기 전대를 개최해 민주개혁 세력의 대통합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범민주계 거물들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민주당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정국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미디어법안 전쟁에서 승리한 여권은 그 여세를 몰아 내각과 청와대의 인적 쇄신, 조기 전대, 민생 행보 등으로 대대적인 국면전환을 시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만큼 민주당도 장외 투쟁이라는 극단적인 전략을 지양하고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정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7월 25일부터 100일간 미디어법 강행처리 규탄대회를 전국적으로 전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정 대표는 이 기간 동안 언론악법 폐기농성 캠프 운영과 촛불문화제, 5개 권역에 걸친 시국대회 및 홍보전 개최, 1000만인 서명운동 등을 통해 대여 투쟁 강도를 높여간다는 계획이다.
정 대표는 ‘조문 정국’ 이후 주가가 급상승한 친노 인사들에 대한 복당론에는 적극성을 보이면서도 정동영 의원의 복당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범민주계와 당 안팎의 비주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도부 책임론과 조기 전대론을 일축하고 대여 전면 투쟁에 ‘올인’하겠다는 정 대표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당장은 ‘미디어법안 전쟁’에서 완패한 충격파와 여당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소속 의원들 대다수가 장외 투쟁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정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장외 투쟁이 여론의 호응을 받지 못할 경우 이탈자는 속속 늘어날 것이고, 근본적인 처방책과 맞물린 지도부 책임론이나 조기 전대론이 공론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디어법안 전쟁에서 완패한 정 대표와 민주당이 꺼내든 ‘의원직 총사퇴’ 카드와 장외 투쟁 노선이 범민주계 역학구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또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여권과의 서바이벌 전쟁에서 어떤 결과물을 도출할지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