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폐지” 엑소 팬들 몰려와 서버 일시 접속장애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처음 등장한 연예계 이슈는 연기자 배용준·박수진 부부에 대한 병원의 특혜 논란이다. 11월 말부터 온라인에서 촉발돼 논란이 증폭되더니, 11월 30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박수진 씨 삼성병원 특혜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처음 제기됐다. 청원 개시 일주일여가 지난 7일 현재 4만 7500여명이 이에 동의한 상태다. 해당 청원은 이달 30일까지 한 달간 진행된다.
비슷한 시기 아이돌 그룹 엑소의 팬들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거 몰렸다. 이달 1일 홍콩에서 진행된 케이팝 시상식 ‘엠넷 아시안 뮤직어워드(MAMA)’의 폐지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청원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연예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엑소가 올해 여러 성과에서 시상식에서 소외되자 이에 대한 문제 제기 창구로 국민청원을 택했다. 부정투표 의혹 등의 주장도 청원에 담겼다.
# 국민청원…연예인 신문고?
청와대 국민청원은 최근 화제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8월 17일 청와대 홈페이지 개편을 통해 본격 시작된 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소통을 위해 어떤 의견이든 가감 없이 제시하고, 이에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면 청와대가 직접 답한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호응도 뜨겁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연예계 이슈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청와대는 실제로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 동의가 모일 경우 해당 안건에 해당하는 담당부처 장관과 수석비서관 등 정부 관계자가 직접 공식 답변을 달도록 했다. 직접 의견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동의를 구해 답변까지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청와대 국민청원은 연일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민청원이 이제는 연예계를 둘러싼 문제를 제기하는 창구로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출발은 배용준·박수진이 서울삼성병원 중환자실로부터 받은 특혜 의혹이다. 지난해 첫 아들을 낳은 두 사람이 출산 당시 해당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측으로부터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돼 논란이 휘말렸다.
처음엔 배용준·박수진 부부와 병원, 그리고 비슷한 시기 해당 병원 중환자실을 이용한 신생아 산모들의 오해와 갈등으로 촉발되는 듯했지만 이내 ‘차별금지’에 대한 청원 움직임으로 확대됐다. 11월 30일 이와 관련해 병원을 조사해달라는 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처음 등장했고, 이후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환자실 특혜금지법을 만들어달라는 청원까지 잇따라 등장해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7일 오후 현재 관련 안건만 88개가 제기된 상태다.
엑소 팬들의 청원은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마마’ 시상식이 열린 1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엠넷에서 방송하는 마마 시상식을 폐지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등장했다. 자신을 “아이돌 팬”이라고 밝힌 청원자는 “저희 팬덤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1등을 차지했지만 공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엑소가 마마 시상식에서 상을 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제기한 팬덤이 엠넷 방송사를 넘어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찾아갔다는 뜻이다.
청원이 게시된 직후 청와대 홈페이지로 엑소 팬덤이 몰려들었다. 사이트가 일시적으로 접속 장애를 보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국민청원 내용을 전해주는 국민청원 트위터에는 3일 “청와대 홈페이지 접속이 지연되고 있다”며 “찾아보니 몇몇 팬이 마마 폐지 요구 청원을 올리며 서버가 다운된 것 같다. 기분이 암담하다. 덕분에 마감이 급하고 중대한 사건을 다루는 청원은 묵히고 있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박수진 씨 삼성병원 특혜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
# 문제제기 필요하지만 ‘악용’ 막아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안건이 제기된다. 그 가운데 아동 성범죄자인 조두순 재심 청원이나 이국종 교수로 상징되는 권역외상센터 지원에 대한 청원처럼 20만 건의 동의를 넘기면서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도 있다. 하지만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잊히는 안건도 상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연예인 혹은 연예계 관련 청원이 혹시 시간을 다투고, 관심을 받아야 할 안건을 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번 마마 폐지 청원처럼 갑자기 참여자가 몰리면서 청와대 설명처럼 서버가 불안정해지는 경우가 발생하는 상황이 또 벌어지지 않으라는 법도 없다. 연예계 안팎에서도 이와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연예계 한 관계자는 “연예인이나 특히 폭발력이 강한 아이돌 팬덤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향해 논란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물론 최근 아이돌 팬덤 문화가 성숙하게 자리 잡아가는 만큼 그 분위기에서 신문고를 활용하는 방식도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짚었다.
물론 논란과 문제가 되는 연예 이슈를 무조건 차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배용준·박수진의 경우 연예인 개인에 대한 반감을 넘어 신생아 생명과 직결된 종합병원 중환자실 특혜를 막자는 취지인 만큼 이에 대한 일반인의 참여가 높다. 생사를 오가는 어린 생명을 치료하는 곳에서 유명 연예인 부부가 받은 특혜에 대한 진상 조사는 물론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 역시 형성되고 있다.
단순히 논란에 휘말린 연예인을 향한 맹목적인 공격을 넘어 건강한 환경을 만들어가자는 의견도 활발히 오가고 있다. 한 청원자는 ‘연예인 특별혜택 금지법’을 제안한 뒤 “돈이 많다고 해서 타인에게 엄청난 피해와 손상을 입히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