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국 돈으로 탈레반 ‘기름칠’
▲ 카이버 고개에 길게 늘어선 화물차들. | ||
3만 명 이상을 증파할 것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내에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독일의 시사주간 <포쿠스>는 아프간 전쟁터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탈레반의 뇌물 수수 실태를 보도했다. 특히 탈레반에 흘러 들어가고 있는 조직운영 및 테러활동자금 가운데 상당수가 어이없게도 아프간 주둔 연합군과 미군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고 있다고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주된 통로이자 험준한 지형으로 유명한 카이버 고개. 얼마 전부터 이곳에서는 고개를 통과하려는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있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이 이렇게 줄을 서있는 이유는 하나. 다리를 폭파한 후 이곳을 불법으로 점거한 탈레반 무장단체에게 ‘통행료’를 지불하기 위해서다. 만일 통행료 지불을 거부할 경우에는 가차 없이 참수형에 처해지기 때문에 이곳을 통과하는 일은 마치 목숨을 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프간의 한 화물차 운전수는 “만일 통행료가 없으면 석유(연료)라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했다.
국제구호단체나 해외 파병국의 군부대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이곳은 아프간 주둔 연합군의 주된 보급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연합군 병사들 역시 하는 수 없이 탈레반에게 돈을 내고 이곳을 지나다니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거둬들인 통행료가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모두들 알고는 있지만 동시에 묵인하는 사실, 즉 탈레반의 조직활동비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제2, 제3의 테러를 일으키거나 소총이나 폭탄 등의 무기를 구입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탈레반의 자금줄을 막아야 하는 파병군이 이처럼 되레 탈레반에게 뒷돈을 대주는 경우는 아프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의도했건 아니건 탈레반에 뇌물을 제공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프간 영토 내에서는 탈레반에 뇌물을 주지 않고는 운송 및 건설사업 등과 같은 어떤 프로젝트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도로를 건설할 경우 탈레반에게 도로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 조건으로 ‘보호비’ 명목의 적당한 금액을 지불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와 관련 <타임>은 지난 여름 쿤두스에서 발생했던 미군 부대의 트럭 폭발 사고를 지적했다. 트럭 아래에 설치돼있던 폭탄이 폭발해 미군 네 명과 통역사 한 명, 그리고 민간인 한 명이 사망했던 이 사건의 범인은 당시 탈레반으로부터 750달러(약 86만 원)를 받고 일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됐던 것은 750달러의 출처였다.
▲ 양귀비 밭에서 일하고 있는 아프간 노동자. | ||
탈레반의 주된 수입원 가운데 하나인 이런 ‘보호비’는 연합군뿐만 아니라 아프간이나 파키스탄 자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이기도 한다. 상인들에게서 받는 일종의 ‘자릿세’가 그것으로 탈레반은 이를 ‘자카트’와 대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카트’란 이슬람세로 불리는 세금의 한 형태로 수입 중 최소 2.5%를 자선금으로 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거둬들인 세금은 빈민 구제나 장애인 복지, 사회 복지, 모스크 수리비용 등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탈레반이 상인들로부터 반강제적으로 받아가는 자릿세는 ‘자카트’와 달리 엄연히 불법이다. 지불을 거부할 경우에는 협박도 뒤따른다. 가령 보호비를 내지 못하겠다며 버티던 파키스탄의 한 상인은 얼마 전 탈레반에게 납치되어 협박을 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무려 12만 5000달러(약 1억 4000만 원)를 요구했던 탈레반은 “이 돈은 합법적인 세금이다. 이로써 천국에서의 자리가 보장될 것”이라며 자릿세를 강요했다.
또한 칸다하르 출신의 한 상인은 시내의 모든 상점들이 탈레반에게 영업 허가 명목으로 돈을 바치고 있으며, 자신의 회사 역시 총매출액의 20~30%를 꾸준히 탈레반에 납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모두들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정부의 통제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아프간 같은 곳에서 장사나 사업을 하려면 방법이 없다”고 푸념했다.
탈레반에게 자릿세 명목의 세금을 바치는 것은 상인뿐만이 아니다. 아프간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여서 심지어 카불의 고위 정부인사들 가운데에는 봉급의 일부를 탈레반에게 납부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아프간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군 수뇌부조차 불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보호비 지불 사례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에곤 람스 NATO 소속 총사령관은 “우리 연합군 중 일부가 탈레반에 불법으로 돈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사실 아프간 전쟁은 탈레반에게는 끊임없이 샘솟는 현금자동지급기와 같다.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 뿐만 아니라 알아서 돈을 납부해주니 그야말로 자동시스템이 따로 없는 셈이다.
이밖에도 탈레반의 주된 수입원 가운데 하나는 아편 판매다. 미 중앙정보부(CIA)는 매년 탈레반이 마약 거래를 통해 7000만 달러(약 800억 원)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UN은 3억 달러(약 3500억 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탈레반은 세계 아편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