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을 키운 건 김신조 사건”
▲ 이만섭 전 의장 | ||
이 전 의장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사 동기생이자 고향(경북 선산) 후배 사이인 김재규 전 부장과 매우 특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육군 준장이던 5사단장 시절에는 김재규 대령을 같은 사단의 36연대장으로 데려갔으며 당시 김재규 대령은 박 사단장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손수 만들어 사단장 공관에서 막걸리와 함께 자주 먹곤 했다고 한다. 그 후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부장을 군의 요직인 6사단장과 보안사령관에 임명했으며 훗날 건설부 장관을 거쳐 중앙정보부장에 발탁했다.
김재규 전 부장이 건설부 장관을 맡았던 시절, 우리나라는 오일쇼크로 유가가 급등하고 외환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때 중동건설 진출을 강력히 주장한 사람이 다름 아닌 김 전 부장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때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던 재무부를 막아선 것은 박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소도둑이 무서워서 소를 기르지 않겠다는 것과 같지 않느냐”며 김 전 부장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이 전 의장은 “결국 우리나라 건설업체의 중동진출이 본격화되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만섭 전 의장은 ‘박 대통령의 용인술’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동아일보 사장 출신의 최두선 씨를 국무총리로 기용했는데 최 씨는 대선 당시 ‘박정희 후보의 여순사건 관련 사실’을 호외로 발행할 정도로 반대쪽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고. 이 전 의장은 “그런 사람을 과감히 국무총리 자리에 앉혔다는 건 그만큼 대범하고 인재 등용의 폭이 넓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또 이 전 의장은 박 전 대통령의 폭넓은 인재 등용에 대해 직접 체험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장기영 전 부총리에게 조병옥 박사의 비서였던 조승만 씨를 증권거래소 감사 자리에 추천하면서 박 전 대통령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 그때 박 전 대통령은 “조 박사 비서 같으면 도와주어야지…”라면서 “사실 통이 크고 선이 굵은 데다 애국심이 강한 조 박사 같은 분이 살아계셨더라면 내가 5·16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전 의장은 1968년의 ‘김신조 사건’은 ‘군인 전두환’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전두환 중령은 경복궁에 주둔하던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를 맡고 있었는데 ‘군인이 긴장감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박격포대와 조명탄 발사기를 경복궁 뒤쪽 연병장에 배치해 30대대를 마치 전방의 포병부대와 같이 해 놓았다고 한다. 그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부근까지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은 전 대대장은 즉각 박격포를 쏘아올리고 조명탄을 터뜨려 청와대 일대를 대낮처럼 밝혔다. 생포된 김신조는 “박격포가 터지고 조명탄이 오르는 것을 보고 포위된 줄 알았다. 더 이상 버텨봐야 개죽음뿐이란 걸 알고는 싸울 뜻을 잃고 손을 들었다”고 뒷날 실토했다고.
다음날 육영수 여사는 “서울 한복판까지, 더구나 청와대 앞까지 공비들이 나타나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전두환 대대장의 선견지명에 놀랐다. 태평한 서울 한복판에 박격포를 가설하여 대비하다니…”라고 칭찬했고, 이 일로 전두환 중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 의장은 차지철 전 경호실장의 권력과 횡포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풀어놓았다. 박정희 정권 말기 김재규 전 부장은 비교적 합리적이었지만 차 전 실장은 강경일변도였다고. 부마항쟁 때도 김 전 부장은 현장에 내려간 뒤 심각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반면 차 전 실장은 “탱크로 데모꾼을 확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사설 정보조직을 갖고 있던 차 전 실장은 내부 절차를 거치는 김 전 부장보다 항상 정보보고에서 시간적으로 앞설 수밖에 없어 대통령의 신임을 더 받았다는 것. 이 전 의장은 “차 전 실장은 국회 내에서도 비밀리에 자기 조직을 갖고 있었는데 발언 등으로 행동하는 의원과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쓰는 의원을 합해 2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행정부 장관뿐 아니라 당 간부들도 그에게 꼼짝 못하는 형편이었다”고 설명했다.
10·26 사건의 직접적인 동기 또한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부장, 차지철 실장’ 3자 간의 미묘한 갈등관계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 전 의장은 “김 전 부장이 ‘차 전 실장을 없애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결과적으로 10·26사태라는 비극이 일어났다”고 술회했다. 그해 가을 김 전 부장은 청와대 옆 안가에서 이 전 의장을 만나 “차지철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다. 그가 모든 일을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 여간 큰일이 아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이 전 의장은 “김재규 부장이 차지철 실장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하다보니 결국 박 대통령까지 시해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전했다.
10·26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 김 전 부장은 이만섭 전 의장을 찾았었다고 한다. 당시 대구에 내려가 있어 바로 만나지 못했던 이 전 의장은 “대통령 시해를 막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생각한다”며 “어느 정권이나 강경파가 득세하면 그 정권과 정당은 반드시 망하고 만다”고 밝혔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