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한 시간 동안 470만 개…와인스틴 아내 이혼 소송 돌입
그 속도는 삽시간에 퍼지는 들불 같았다. 2017년 10월 5일 <뉴욕타임스>가 하비 와인스틴의 악행을 고발한 뒤, 할리우드를 진원지로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힘들게 끄집어냈고, 그런 고백은 거대한 운동으로 변해갔다. ‘미투 캠페인’이 바로 그것. 10월 15일, 배우인 알리사 밀라노가 자신의 SNS에 ‘#MeToo’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시작된 이 운동은 15일 당일에만 20만 개 이상의 해시태그로 번져갔고, 16일엔 50만 번 이상이 되었으며, 페이스북에선 한 시간 동안 470만 개 이상이 되었다.
알리사 밀라노가 자신의 SNS에 ‘#MeToo’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시작된 미투 켐페인.
이후 수많은 여성 셀러브리티들이 밀라노의 뒤를 이었다. 패트리샤 아퀘트, 도라 버치, 셰릴 크로, 비올라 데이비스, 로자리오 도슨, 엘렌 드제네러스, 레이디 가가, 헤더 그레이엄, 안나 파퀸, 에반 레이첼 우드, 리즈 위더스푼…. 그 중엔 빌 클린턴의 지퍼게이트로 유명해진 모니카 르윈스키도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음악계와 과학계를 거쳐 정치로 번져갔다.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등의 주에선 의회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고, 몇몇 여성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성폭력에 희생되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11월 12일엔 할리우드에 수백 명이 모여 ‘미투 서바이버 행진’을 벌였다. 한편 캠페인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확산됐고, 85개국에서 각자의 언어와 맥락 속에서 사람들이 해시태그를 달기 시작했다.
하비 와인스틴에 대한 사회적 처벌도 이어졌다. 먼저 아카데미 위원회가 그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고, 10월 8일 와인스틴 컴퍼니의 이사회는 그를 해고했다. 애플, 아마존, 렉서스, 오베이션 등 협력 관계에 있던 업체들이 관계를 끊었다. 미국제작자협회에서도 축출되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와인스틴에게 수여한 훈장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 등 정치권의 유력 인사들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사건이 터진 후, 와인스틴의 아내인 조지나 채프먼은 이혼 소송에 들어갔다.
하비 와인스틴
환기 작용도 있었다. 와인스틴의 문제가 터지자, 빌 코스비를 비롯한 과거의 성 추문을 일으켰던 셀러브리티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동시에 와인스틴 이외의, 숨겨져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추악한 과거가 드러났다. 바이섹슈얼인 케빈 스페이시의 부적절한 행동들에 대해 남녀 피해자들이 고발했다. 그 결과 그가 출연 예정이었던 여러 프로젝트에서 배제되었다. 제레미 피벤, 스티븐 시걸, 에드 웨스트윅 등의 배우들이 다수의 여성들에 의해 고소당했고, 그들은 부인했다. 두 번의 오스카상을 수상한 레전드 액터인 더스틴 호프먼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며 용서를 구했다. 코미디언인 루이스 C.K.도 수많은 피해자들의 비난 속에서 수많은 향후 프로젝트에서 하차해야 했다.
감독들 중엔 브렛 래트너가 대표적이었다. <러시 아워> 시리즈와 <엑스맨 - 최후의 전쟁> 등으로 유명한 흥행 감독인 래트너는 여섯 명의 여성으로부터 고발을 당했고,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극구 부인했다. 제보와 고소와 고발과 지적과 비판이 이어졌고, 이에 수많은 가해자들은 부정하고 사과하고 때론 역공을 펼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우후죽순처럼 이어진 이런 상황은 저널에 의해 ‘와인스틴 효과’라고 명명되었고, 그 흐름은 그칠 줄을 몰랐으며 거의 1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떠올랐으며 아직도 그 명단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만이 아니었다. 저널리즘 쪽에선 적잖은 수의 기자와 에디터와 앵커가 퇴출되었다. 모두 그들이 과거 회사 내에서 갑의 위치에서 저지른 행동들이 적발되었기 때문이었다. <뉴욕타임스> 같은 시사 매체, <빌보드> 같은 연예 매체, NBC 같은 방송사 등 그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유명한 TV 쇼 호스트인 찰리 로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치 쪽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이상한 사진을 보여주고, 미성년자와 관계를 맺고, 국가 예산을 이용해 몰래 합의를 보려 하고…. 그들의 수법은 가장 변태적이고 악질적이었으며, 그 명단엔 조지 W. 부시도 있었다. 그 결과 몇 명의 현직 공직자들이 사임해야 했다. 이외에도 패션계, 사진계 심지어 요리 업계까지 ‘와인스틴 효과’의 파장 속에서 긴 세월 동안 묵혀 두었던 진실을 폭로했고 죄 지은 자들은 인과응보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태는 미국에 한정되지 않았다. 영국의 정가도 크게 흔들렸고 캐나다에선 라디오 진행자가 하차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 필리핀…. 수많은 국가에서 잘못되었던 과거를 바로잡고 가해자를 응징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그렇다면 와인스틴 이후 어떤 인물들의 어떤 행동들이 진실의 문 앞에서 서게 된 것일까? 다음 주부터는 ‘와인스틴 이후’에 등장한 수많은 ‘제2의 와인스틴’에 대해 다뤄 보겠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