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침공 전 “부시가 부끄럽다” 비판…9·11 겪은 대중, ‘반애국적 멘트’에 격노
1990년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결성된 딕시 칙스는 자매인 마티와 에밀리 매과이어, 그리고 리드 싱어인 내털리 메인스로 구성된 3인조 밴드였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전쟁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미국 사회에서 그들은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었고, 특히 내털리 메인스의 직설은 종종 화제가 되곤 했다. 동료 컨트리 뮤지션인 토비 키스와의 불화는 ‘비극’의 도화선이었다. 키스가 내놓은 ‘Courtesy of the Red, White and Blue’라는 곡은 군인들의 죽음과 희생이 있기에 평화가 지켜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거론되던 시기 이 노래는 전쟁을 부추기는 노래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다.
세 여성 멤버로 구성된 컨트리 밴드 딕시 칙스.
이에 내털리 메인스는 “난 이 노래가 정말 싫다. 이 노래는 컨트리 뮤직을 무지한 음악으로 만들어버린다”며 비난했고, 토비 키스는 메인스가 “노래를 만들 줄도, 가사를 쓸 줄도 모른다”며 “매장시켜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내털리 메인스가 본격적으로 ‘사고’를 친 건 2003년 3월 10일 런던 공연이었다. 그날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날이었고, 무대에 오른 메인스는 “우리 딕시 칙스는 이 전쟁과 폭력을 원하지 않는다. 우린 부시 대통령이 우리의 고향인 텍사스 출신이라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린 부시가 부끄럽다”는 축약된 문장이 되어 언론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당장 다음 날부터 딕시 칙스에 대한 안티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증상은 차트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당시 빌보드 차트에 올라 있던 ‘Landslide’는 단숨에 43위까지 떨어졌고 그 다음 주엔 100위 밖으로 사라진 것. 메인스의 반애국적 멘트에 격노한 대중의 압박으로 라디오 방송사들은 딕시 칙스의 음악을 일절 틀지 않았고, 부시 지지자들은 가두시위를 벌였다. 콜로라도 라디오 방송의 어느 DJ는 딕시 칙스의 노래를 틀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기도 했다.
미국 여기저기서 딕시 칙스의 CD를 쌓아놓고 화형식을 벌였고,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곳도 있었다. 이에 메인스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나는 부시 대통령이 미국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지만 전세가 역전되진 못했다. 이에 이틀 후인 3월 14일, 자신의 언사에 대해 부시 대통령에게 사과한다는 코멘트를 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 아니 더욱 악화되었다. 계획되었던 미국 투어 공연 스폰서가 흔들렸던 것. 한편 마돈나는 딕시 칙스 지지 선언을 했지만, 4월에 공개 예정이었던 ‘American Life’ 뮤직비디오는 잠시 보류해야 했다. 부시처럼 생긴 남자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털리 메인스.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딕시 칙스 멤버들은 4월에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표지를 누드로 장식했다. 그들의 몸엔 “배신자” “사담 후세인의 천사들” “딕시 창녀” 같은 비난의 문구와 “자랑스러운 미국인” “영웅” “발언의 자유” 같은 지지 문구들이 새겨졌다. 한편 메인스와 불화를 빚었던 컨트리 뮤지션 토비 키스는 공연 무대의 배경에 내털리 메인스와 사담 후세인이 함께 있는 합성 사진을 걸어놓아 논란이 됐다.
그러자 딕시 칙스는 컨트리 뮤직 어워드 공연에 나왔을 때 ‘F.U.T.K.’라는 문구의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그들은 “자유, 연대, 배려 속에서 함께(Freedom, United, Together in Kindness)”라는 의미라고 설명했지만, 사람들은 “엿 먹어라 토비 키스”(Fuck You Toby Keith)라는 걸 대부분 눈치 챘다.
5월에 딕시 칙스의 미국 공연은 시작되었고, 금속 탐지기까지 동원되는 삼엄한 경비가 이뤄졌지만 살해 위협은 끊이지 않았다. 이후 그들의 음악은 조용히 매체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런 의도하지 않았던 블랙리스트 상황은 2006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들은 3년의 원치 않았던 자숙 기간을 거친 후에 새 앨범 ‘Taking the Long Way’를 내놓았고, 프로모션 기간에 3년 전 자신이 부시에게 했던 사과를 철회하며 여전히 미국의 전쟁에 대해 반대 입장이라는 걸 천명했다. 그리고 그들의 지난 3년에 대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 <딕시 칙스: 셧 업 앤 싱>과 <프로테스팅 더 딕시 칙스>가 나왔고, 2007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그들은 최우수 앨범상과 싱글상을 포함해 총 5개의 트로피를 거머쥔다. 비로소 그들은 귀환했고, 미국 사회는 딕시 칙스의 음악을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한 셈이다.
단상에서 메인스는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을 줌으로써, 그들이 지닌 표현의 자유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들의 전쟁은 끝났지만, 정치적 견해 때문에 3년 동안 한 뮤지션의 음악이 따돌림을 당했던 무지의 역사는 또렷이 기록되어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