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여의도 향할까
물론 현재로선 반대 내지는 회의적인 시각이 압도적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와 함께 ‘회사원 출신의 평범한 청년이 정치 9단 아버지마저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은 험난한 정치의 바다에 과연 뛰어들 수 있을까’라는 회의론도 만만찮다.
그럼에도 친노그룹 일각에서는 언젠가는 노건호 씨가 정치에 입문해 ‘노무현 유훈정치’를 실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그의 정치참여는 실현 가능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변화무쌍한 정치적 상황 논리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 못다 이룬 정치의 이상향을 이루기 위해 노건호 씨가 과감하게 정치판에 뛰어들 ‘1%의 가능성’을 타진해보았다.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불행한 대통령의 자녀를 꼽으라고 한다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그 상징처럼 떠오른다. 부모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모두 비운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그 수식어는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1남 1녀 중 장남인 노건호 씨. ‘박연차 사건’으로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이 자살로 비운의 생을 마감하면서 그는 역사상 가장 불행한 ‘대통령의 아들’로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 밑에서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를 대신하며 한때 권력의 정점에 섰던 것에 비해 노건호 씨는 LG전자에서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의 불행한 자살사건을 맞았다는 점에서 그의 불행은 박 전 대표의 그것보다 더 아리고 깊어 보인다.
그런데 아버지의 자살을 이명박 정권의 강압적인 수사 때문으로 굳게 믿고 있을 법한 그를 두고 “예전의 여렸던 노건호 씨가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비친 노건호 씨의 분노에 찬 모습은 “변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한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유족에게 인사를 할 때 일어서지도 않고 앉은 자세에서 대통령의 위로를 냉정하게 외면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퇴장하는 그의 주먹은 불끈 쥐어 쥔 채였고 눈은 정면을 응시하며 분노하고 있었다.
당시 이 모습을 본 일부 네티즌들은 “건호 씨, 이제 싸움은 시작됐다. 정치권에 들어가 꼭 복수를 하라”는 다분히 감정적인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건호 씨가 장례식에서 보여준 분노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지 아버지의 유지를 잇는 작업을 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노건호 씨의 감정 표출을 근거로 정치참여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다. 그렇다면 노건호 씨의 정치참여에 대한 정치공학적인 근거는 있을까. 수도권 대학의 정치학자 A 씨는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맞이한 뒤 다시 정치에 입문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정치는 가능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황 논리의 문제다. 건호 씨의 정치참여도 향후의 상황 변화에 따라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정치참여 가능성을 ‘상황 변화’라는 프리즘으로 비춰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친노그룹 사정을 잘 아는 여의도의 정치컨설턴트 B 씨는 노건호 씨의 정치참여 가능성을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입문 과정에 빗대 설명한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입문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살아가면서 자기가 정해서 길을 가기도 하지만, 운명같이 도저히 자기 선택의 여지가 없는 때도 있어요. 그러면 가다가 확 바뀌어 버리는 거예요.”
박 전 대표의 정치입문은 두 번의 드라마틱한 상황 변화가 낳은 결과였다. 그는 지난 1974년 8월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자 프랑스에서 유학하다 급거 귀국한 뒤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활동을 하며 정치경험을 했다. 그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그의 정치적 재기 가능성은 거의 0%였다. 하지만 은둔생활을 하던 박 전 대표는 10년도 채 안 돼 정치무대 전면에 서게 된다. 영남 맹주자리를 노리던 한나라당 강재섭 의원이 1998년 달성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박 전 대표를 전격적으로 영입해 후보로 내세웠던 것. ‘정치 초보’였던 박 전 대표는 당시 엄삼탁 후보를 눌렀고 그로부터 불과 10년여가 흐른 지금은 차기 집권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우뚝 서 있다.
그런데 노건호 씨도 박 전 대표의 경우처럼 “운명같이 도저히 자기 선택의 여지가 없는 때”를 맞지 못할 것이라는 보장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아버지의 갑작스런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노건호 씨가 과연 예전의 순수했던 청년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친노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건호 씨는 지금도 불면의 밤을 보내며 아버지를 죽음의 골짜기로 내몬 원인을 찾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박연차 사건이 노 전 대통령 연루 여부로 확대된 결정적 배경이 건호 씨의 미국 내 아파트와 사업 자금 등이었기 때문에 그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건호 씨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정치참여라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또한 아버지를 빼닮은 강한 집념과 승부욕을 가진 점도 그를 정치라는 정글로 이끌게 하는 긍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건호 씨의 개인적 결심 여부와 함께 주변 환경도 그를 정치무대에 세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앞서의 정치컨설턴트 B 씨는 이에 대해 “건호 씨는 자신의 결심 여부에 따라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 등 그를 사방에서 지원해주고 보호해줄 든든한 정치세력이 있다. 그리고 건호 씨가 정치적으로 더욱 성장한다면 사분오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친노그룹 통합의 상징적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건호 씨의 정치참여에 대한 정무적 근거는 부정적인 것보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요소가 훨씬 많다는 점에서 건호 씨 자신은 소극적일지 몰라도 주변에선 점차 그의 정치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빠르면 노건호 씨가 18대 국회에서 당장 ‘움직일’ 것으로 섣불리 예상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경남 김해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민주당 최철국 의원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만약 그가 의원직 상실형을 받아 노 전 대통령의 고향 지역구인 김해에서 재·보궐 선거가 실시된다면 노건호 씨의 정치입문 과정이 의외로 수월할 수도 있다. 또한 노건호 씨가 아버지 죽음의 충격을 좀 더 추스르고 난 뒤 이 지역에서 19대 총선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친노그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건호 씨가 출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나설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노건호 씨의 정치참여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운 편이다. 아고라의 한 네티즌은 “건호 씨는 노 전 대통령의 사상과 가치관 아래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고, 핏줄도 이어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과 능력을 이어받을 최고의 적임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봉하마을의 김경수 전 비서관은 노건호 씨 정치참여설과 관련해 기자와의 최근 통화에서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본인이 그것을 할 생각도 없고… 지금 오히려 노 전 대통령 묘역이나 권양숙 여사를 보살피는 문제 말고 다른 데 신경 쓰고 할 겨를도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노건호 씨는 내년에도 LG전자로 복귀하지 않고 봉하마을에 계속 머물면서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일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다. 노건호 씨는 지금도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가장 잘 받드는 길이 어떤 길인지 찾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