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 대한 원망도…황상민 박사 “성격 탓이란 말이 그를 더 내몰았을 수도”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그룹 샤이니 종현의 빈소. 사진공동취재단
비보가 날아든 것은 지난 18일 오후의 일이다. 종현은 이날 정오께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소재의 한 레지던스를 빌렸다. 당시 종현이 2박을 묵을 예정으로 레지던스를 직접 빌린 것으로 밝혀졌다.
방을 빌리고 약 4시간이 지난 오후 4시 42분께, 종현은 자신의 누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평소 서로가 서로의 ‘최애(최고로 사랑하는 사람)’라고 부를 정도로 친했던 오누이였다. 종현이 누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이제까지 힘들었어” “나 보내줘, 고생했다고 말해줘. 마지막 인사예요” 등이었다.
누나는 동생의 죽음을 직감했다. 이전부터 종현은 주변을 정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종현과 가까운 사이였던 록밴드 디어클라우드의 보컬 나인이 직접 종현의 가족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종현의 가족과 친구들은 지난 9~10일 종현의 솔로 콘서트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해왔다. 혹여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마지막 인사를 받은 종현의 누나는 곧바로 119에 신고해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 같다”고 알렸다. 119구조대와 경찰이 긴급출동했지만 그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택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문 탓이었다.
신고를 받은 지 1시간 30여 분 만인 같은 날 오후 6시 10분, 청담동 레지던스에서 발견된 종현은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심폐소생술 후 곧바로 건국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는 끝내 숨졌다.
종현이 머물던 레지던스에서는 태우다 만 갈탄이 발견됐다. 현장에 유서는 없었지만 누나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유서로 판단하는 방향으로 수사의 가닥이 잡혔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명확해 수사를 담당한 서울 강남경찰서 측은 별도의 부검은 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한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종현의 마지막 가는 길. 상주는 그의 생애 절반을 함께한 샤이니 멤버들이 맡았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런 가운데 종현의 또 다른 유서가 발견됐다. 마치 이렇게 떠나리라는 것을 스스로 예감이라도 한 듯, 디어클라우드의 보컬 나인에게 미리 전달해 놨던 유서였다.
나인은 종현의 사망 이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얼마 전부터 종현이는 제게 어둡고 깊은 내면의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매일 같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라며 “종현이 본인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이 글을 꼭 직접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가족과 상의 끝에 그의 유언에 따라 유서를 올린다”며 유서의 전문을 공개했다.
유서 속 종현은 그동안 대중들이 알고 있던 밝은 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어두움이 드러난 예민한 모습이었다. “난 속에서부터 고장 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 그의 유서는 종현이 겪어야 했던 심적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우울’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드러난 까닭에 종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계기 역시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으로 굳어져가는 분위기다. 더욱이 종현의 유서에는 그가 직접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았다는 정황도 드러난다. 그리고 그 상담은 그다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종현은 유서에서 의사에 대한 원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의사에게) 왜 자꾸만 (내가) 기억을 잃냐 했다. 성격 탓이란다. 그렇군요. 결국엔 다 내 탓이군요” “난 나 때문에 아프다. 전부 다 내 탓이고 내가 못 나서야. (의사)선생님, 이 말이 듣고 싶었나요? (중략) 조근한 목소리로 내 성격을 탓할 때 의사 참 쉽다 생각했다” 등의 대목이다. 종현의 유서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그가 정신적인 문제로 상담을 받았으나 의사는 “왜 아픈지를 스스로 찾아라” “너의 성격 탓이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는 것이 된다.
이 같은 의사의 태도는 즉각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11월 배우 유아인에 대한 경조증 진단으로 논란을 빚었던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는 “저는 그 주치의를 제 동료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라며 격분한 글을 SNS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운동해라’ ‘햇볕 쬐라’에 이어 최악의 트라우마”라며 “이런 때는 또 학회 차원의 공식입장을 발표하지 않는다”고 학회 측의 미온한 대응을 꼬집기도 했다.
황상민 심리학 박사는 “우울함을 토로하는 환자에게 ‘네 성격 탓이다’ ‘약 받아 가 먹어라’라고 말하는 게 아닌, 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상담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어쩌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유서 내용을 살펴보면 종현은 자신 속에 자신이 너무 많은 다중 성격으로 보인다. 그 안에 자신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신이 있기 때문에 불안한 심리상태를 항상 가지게 되는데, 그런 심리를 잘 모르는 의사가 ‘너의 성격 탓’이라고 말하면 안 그래도 갈등을 느끼고 있던 그를 더욱 내몰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박사는 “많은 의사들이 자책하는 환자에 대한 구체적 심리상태나 심리분석을 하지 못하고 상투적으로 우울증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것이 환자의 자책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종현의 빈소는 19일 정오부터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상주는 그가 생애 절반가까이를 함께했던 샤이니 멤버 온유, 민호, 키, 태민이 맡았다. 발인은 21일 오전 9시로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팬들이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할 수 있도록 같은 장례식장 지하 1층 3호실에 조문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