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탈당보다 당 내서 홍준표 체제에 타격 가할 전략 모색할 수도
지난 12월 12일 자유한국당 새 지도부 선출 의원총회를 마친 후 홍준표 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탈락 대상자에 포함된 현역 의원은 4명이다. 서청원 유기준 배덕광 엄용수 의원으로, 모두 친박계다. 원외 당협위원장 중에서도 박근혜 정부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김희정 전 의원과 주중대사를 지낸 권영세 전 의원, 박근혜 선대위 미디어본부장을 맡았던 박창식 전 의원, 친박계 비례대표였던 전하진 전 의원 등 친박계가 대거 포함됐다.
류여해 현역 최고위원도 탈락 대상자로 선정됐다. 류 최고위원은 탄핵 정국에서 태극기 집회에 앞장서며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류 최고위원은 지난 7월 원외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 득표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탈락자들이 친박 쳐내기라며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한 한국당 당협위원장은 이번 당무감사 결과에 대해 “호남 빼고 214개 중 62개, 원외만 치면 129개 중 58개가 탈락했다. 당 해체 수준”이라면서 “과연 날아간 분들보다 괜찮은 사람이 새 위원장으로 올까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당협위원장은 “이번 당무감사는 지역적 형평성도 없었다”며 “경기도는 62개 중 26개 당협이 탈락한 반면 대구는 딱 1개 당협이 탈락했다. 여론조사나 평판조사를 하면 당연히 텃밭인 대구보다 수도권이 수치가 낮게 나오는데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당협위원장은 “당장 내년 지방선거가 문제다. 탈락한 당협위원장들이 당을 위해 뛰겠나. 오히려 상대 후보를 위해 뛰지 않으면 다행이다. 결집해서 싸워도 이기기 힘든 판국에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원외 당협 40%를 날리면 다 같이 죽자는 이야기 아닌가. 전형적인 교각살우(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라고 말했다.
탈락한 당협위원장들은 당무감사 자체가 공정하지 못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건영 한국당 충남 아산을 당협위원장은 “내가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보를 지내 불이익을 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우리 당협이 다른 당협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원외 당협들이 모두 오십보백보 아닌가. 무슨 기준으로 탈락한 것인지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동규 대전 유성갑 당협위원장도 “지역에서 전화 여론조사를 했는데 질문 내용이 ‘진동규를 지지하느냐’였다고 한다. 저의 이력을 전혀 설명하지 않고 진동규 위원장도 아니고, 진동규 씨도 아니고 진동규를 지지하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이런 식의 여론조사가 어디 있느냐. 제가 태극기 집회 나간 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것 같다”면서 “평판 조사도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물어봤다고 하는데 주로 선거에서 저와 경쟁했던 사람들이 포함됐다. 그 사람들이 저에 대해 좋게 말했겠느냐”고 주장했다.
진 위원장은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이 핸드폰으로 당협위원장 하는 사람들 걸러낸다고 했다. 저는 사무실도 있고 직원도 2명 있다. 할당된 책임당원, 청년당원, 일반당원 다 채웠다. 지역구에 살지 않는 위원장들도 많은데 저는 유성을에 살다가 유성갑 당협위원장 맡고 유성갑으로 이사까지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는데 무슨 기준인지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당무감사 결과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보니 이번에 탈락한 당협위원장들이 반홍(반홍준표) 연대로 결집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유기준 의원은 당무감사 결과 발표 다음 날 탈락 대상자 원외 당협위원장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홍준표 대표를 비판했다. 유 의원은 “당력을 모아 대여투쟁에 집중해도 모자랄 시기에 ‘살라미식’ 찍어내기가 시작됐다. 앞으로 그 작업은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살라미는 조금씩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다. 살라미식 전술은 목표를 향해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한국당 당사 앞에서 당무감사 결과를 비판하는 대규모 집회도 예고한 상태다. 부산과 울산에서는 탈락 대상지역 7곳 중 4곳의 당협위원장이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어 당무감사 결과를 비판했다. 탈락 대상자로 선정된 한 당협위원장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계획은 없다”면서 “탈락한 다른 당협위원장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아직 집단 탈당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고 대응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자 홍준표로 불렸던 류여해 최고위원도 당무감사 발표 이후 연일 SNS에 홍 대표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며 반발하고 있다.
탈락한 당협위원장들이 공정성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 한국당 측은 “당무감사를 실시한 사람들은 모두 외부 인사였다. 누구를 찍어내기 위해 점수를 조작한다든지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홍문표 사무총장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무감사 공정성 시비는) 점수가 미달되는 분들이 자구책으로 자가발전을 하는 것”이라며 “얼마든지 채점결과와 방식을 다 공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탈락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지만 집단탈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류여해 최고위원은 탈당 여부를 묻자 “제가 탈당을 왜 하겠느냐. 당협위원장 탈락해도 여전히 최고위원이다. 당에 계속 남아 홍 대표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주중대사를 지낸 권영세 전 의원도 “대응할 필요가 없다. 재심 신청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차피 다음 총선 전에 홍 대표 임기가 끝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홍 대표는 지난 7월 당 대표로 당선됐다. 다음 총선은 2020년 4월이고 홍 대표의 임기는 2019년 7월까지다.
지난 10월 20일 ‘탈당 권유’ 징계를 받고 강력하게 반발했던 서청원 의원 측도 이번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시 서 의원은 징계가 부당하다며 홍 대표의 사퇴까지 요구했었다. 아직까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서 의원 측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면서 “앞으로도 우리는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한 당협위원장은 “탈락 대상자들끼리 의견을 모으고 있는데 쉽지 않다. 괜히 어필했다가 밉보이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될 대로 되라 하는 사람도 있고, 이 기회에 정치 접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다 이해관계가 달라 집단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당장 집단탈당은 안하더라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발목잡기로 홍 대표 체제에 타격을 주려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홍 대표가 교체대상으로 지목한 서병수 부산시장은 최근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선거에서 표가 나뉘면 한국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관계자는 “친박, 비박으로 나뉘어 싸우다 당이 망했는데 이제는 친홍, 비홍으로 갈라지고 있다”면서 “홍 대표가 반대 세력을 달랠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